영화 ‘외계+인’ 등장하는 신비한 바위 어디일까

최현태 2024. 1. 1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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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포천 한탄강에 불쑥 솟아 오른 용머리 ‘화적연’/겸재 정선 ‘해악전신첩’에 화적연 남겨/영화 ‘외계+인’ 1부 밀본 본거지 입구 장면에 등장/한탄강 하늘다리 ‘아찔’/수많은 영화 촬영 무대 비둘기낭 폭포 신비 가득

화적연.
유유히 굽이치며 흐르는 한탄강. 매서운 강추위는 곳곳에 빙판을 만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강물은 흐른다. 오랜 세월 현무암을 깎고 또 깎아 곳곳에 기기묘묘한 작품을 만든 강물은 가파르게 휘어 도는 영평 계곡에 이르러 영험한 조각 하나 빚어 놓았다. 물속에서 힘차게 솟아오른 푸른 용의 머리. 겸재 정선도 반한 신비한 화적연 앞에 서니 갑진년 새해를 살아갈 힘찬 용기가 푸른 용처럼 가슴에 요동친다.
영화 외계+인 1부 포스터.
영화 외계+인 2부 포스터.
◆비밀의 시간을 여는 문 화적연

인간의 몸속에 외계인 죄수를 가둔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주목받은 공상과학(SF) 영화 ‘외계+인’ 2부가 드디어 10일 개봉하면서 2022년에 나온 이 영화 1부를 다시 찾아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복습’ 열풍이 대단하다. 외계인 죄수를 관리하며 지구에 사는 가드(김우빈)와 로봇 썬더, 형사 문도석(소지섭) 몸에 갇혔다 기억을 되찾고 지구의 모든 외계인 죄수 탈옥을 감행하는 설계자, 외계인 죄수 탈옥을 막기 위해 시간의 문을 열어 설계자 등을 끌고 630년 전 고려로 빨려 들어간 천둥(권총) 쏘는 처자 이안(김태리), 고려에 사는 얼치기 도사이자 현상금 사냥꾼 무륵(류준열)이 시간의 문을 여는 ‘에너지 칼’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펼치는 영화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SF 영화 마니아들이 2부 결말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1부에서 무륵이 두 마리 고양이 우왕, 좌왕과 함께 신검을 찾아 밀본의 본거지로 숨어드는 장면에서 매우 신기하게 생긴 바위가 잠깐 스쳐 지나간다.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금세 알아차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바위는 바로 경기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의 화적연이다. 

영화에 등장한 화적연 장면.
영화에 등장한 화적연 장면.
화적연 기암괴석.
입구로 들어서자 한탄강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구간에 우뚝 선 한눈에도 신기하게 생긴 거대한 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긴 몸통 왼쪽 끝에 머리를 잔뜩 치켜세운 형상은 마치 방금 물속에서 솟구쳐 오른 용의 머리를 닮았다. 머리 정면 쪽에서 보면 달팽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강물 위 13m 높이로 불쑥 솟은 화강암 바위 화적연(禾積淵)은 사실 한자로 ‘볏가리소’란 뜻. 볏짚단을 쌓아 놓은 모습을 닮아 이런 이름을 얻었다.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한 늙은 농부가 8년 동안 가물이 들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자 하늘을 원망하면서 물가에 앉아 탄식했다. 농부가 “이 많은 물을 두고 곡식을 말려 죽여야 한단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거늘 용도 잠만 자는가 보다”라고 하소연을 쏟아내자 갑자기 물이 왈칵 뒤집히면서 용의 머리가 불쑥 나왔다. 이에 농부는 기절초풍했고 용이 꼬리를 치며 하늘로 올라가더니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는 얘기다. 
화적연 여의주.
화적연.
 
화적연.
강원도 추가령 구조곡에서 발원해 철원, 연천을 거쳐 전곡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한탄강은 수십만년 전 화산활동 때 계곡을 메웠던 현무암 지대를 깎으면서 철원에선 직탕폭포, 송대소, 고석정을 만들었고 포천으로 넘어오면서 화적연을 가장 처음 조각했다. 포천의 옛 지명은 영평.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서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는 최단 거리 노선인 경흥로가 바로 포천을 지나갔다. 큰 고개 없이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선비들은 금강산 유람을 가는 길에 반드시 포천을 거쳐서 갔고 자연스럽게 한탄강의 이름난 명승을 유람했다. 이 중 경치가 빼어난 곳을 ‘영평팔경’으로 불렀는데 화적연, 금수정, 창옥병, 낙귀정지, 청학동, 선유담, 와룡암, 백로주이며 그중 화적연을 으뜸으로 꼽았다. 실제 사실적인 표현기법을 창안해 새로운 화법의 시대를 연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은 금강산 가는 길에 명승을 그린 ‘해악전신첩’에 화적연을 남겼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정선의 화적연 그림은 현재 모습과는 많이 다른데 머리 부분이 훨씬 길쭉하게 과장됐다. 바위가 깎이면서 모습이 바뀐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화적연 정면.
겸재 정선이 그린 화적연.
조선 후기 영의정을 지낸 미수 허목도 금강산 유람기에 ‘화적연기’를 남겼고, 조선 후기 학자 삼연 김창흡은 시문집 삼연집에서 화적연의 멋진 풍광을 칭송했다. 특히 그는 ‘높은 바위 거기 솟구친 매가 깃드는 절벽이요/휘도는 물굽이 그리 검으니/용이 엎드린 못이로다’라며 화적연을 용의 형상에 비유한 점이 눈길을 끈다. 항일 의병장 면암 최익현도 화적연을 감탄하면 많은 글과 시를 남겼다.
하늘다리 입구.
하늘다리.
◆한탄강 아찔하게 즐기는 하늘다리

화적연에서 한탄강을 따라 차로 20분을 달리면 포천 여행의 핫플레이스 한탄강 하늘다리가 등장한다. 입구로 들어서자 한국인의 소울푸드 떡볶이, 어묵탕은 물론 어린 시절 추억 돋는 핫도그를 파는 푸드트럭들이 발길을 잡아끈다. 큼직한 소시지가 들어간 ‘겉바속촉’ 핫도그 한입 베어 물고 달달한 떡볶이 입에 밀어 넣기 무섭게 어묵국물을 들이켜자 얼었던 속이 따뜻하게 풀린다. 

귓불을 에는 매서운 바람에도 많은 이들이 높이 50m의 하늘다리를 걷는다.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입구 포토존을 지나 다리를 걷기 시작하자 출렁출렁해 멀미가 난다. 시퍼런 강물이 장쾌하게 흐르는 계곡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유리발판 구간이 계속 등장하는 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부니 간담이 서늘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200m 길이 하늘다리는 성인 15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간쯤에 서면 주상절벽을 거느리고 거침없이 흐르는 한탄강 절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하늘다리에서 본 한탄강.
하늘다리에서 본 한탄강.

다리를 끝까지 건너면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높은 한탄강 주상절리길 중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멍우리협곡을 만나는 4코스 멍우리길로 이어진다. 비둘기낭폭포∼하늘다리∼대회산교∼징검다리∼멍우리교∼멍우리2교∼수변생태공원∼화적연 캠핑장을 잇는 8㎞ 코스로 2시간40분이 걸린다. 하늘다리를 건너기 전 강을 따라 4코스와 나란히 펼쳐지는 3코스 벼룻길은 비둘기낭폭포∼멍우리협곡 전망대∼벼룻교∼부소천교로 이어지는 6㎞ 구간으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벼룻길 끝에서 만나는 부소천교에 서면 깎아지른 주상절리 수직절벽이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이 쏟아진다.

비둘기낭 폭포
◆숲속에 숨은 신비한 비둘기낭폭포

비둘기낭폭포는 하늘다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라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 좋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오후 3시인데도 한 줌 햇살을 허락하지 않는 주상절리 절벽 아래 에메랄드빛으로 영롱한 깊은 소가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폭포는 얼어붙었지만 속으로 흐르는 물은 비둘기낭의 소를 한겨울에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불무산에서 발원한 불무천 끝의 현무암 침식 협곡에 형성된 비둘기낭폭포는 주변 지형이 비둘기 둥지처럼 움푹 들어간 주머니 모양이라 이런 이름을 얻었다. 예전부터 멧비둘기가 폭포 주변의 동굴과 주상절리 틈새에 서식해 비둘기낭으로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고 수풀이 우거져 한국전쟁 때 마을주민의 대피시설로 사용됐단다.

비둘기낭 폭포 주상절리.
하늘다리.
하늘다리.

신선이 노닐다 간 듯, 볼수록 신비로운 색과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많은 영화의 무대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최종병기 활’ ‘선덕여왕’ ‘기황후’ ‘추노’ ‘대호’ ‘늑대소년’ ‘괜찮아 사랑이야’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비둘기낭폭포 주변은 주상절리가 잘 발달된 높이 25∼30m 절벽이 에워싸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하식동굴, 협곡, 두부침식 등 하천 침식 지형과 주상절리, 판상절리 등 다양한 지질구조를 관찰할 수 있고 한탄강에 흐른 용암의 단위도 파악할 수 있어 학술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폭포를 따라 침식하천이 형성돼 있는데 현무암 표면으로 흐르는 물의 방향을 따라 밭고랑같이 파인 형태인 그루브도 만난다. 비둘기낭을 나와 한탄강 쪽 전망대에 올라서면 한탄강과 주상절리 절벽, 아찔한 하늘다리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포천=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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