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우면 싸가지도 없다" '청소광'의 외침... 청소로 '성취' 찾는다

장수현 2024. 1. 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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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증가로 젊은 층도 살림 관심
청소 후 SNS 공유…"취미 활동 느낌"
"청소로 자기효능감 높일 수 있어"
가수 브라이언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청소광 브라이언' 4화 영상 캡처.

번거로운 집안일로 치부됐던 청소의 위상이 최근 달라졌다. 쓸고 닦는 데서 그치지 않고 벽 곰팡이 제거부터 페인트 칠, 벽지 교체, 실리콘 처리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화장실이나 주방처럼 고난도 영역도 문제없이 넘나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분위기마저 지배했다. 1인 가구 증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 등의 여파지만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이들의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 관련 시장도 커지는 추세다.


청소, 혼자 어디까지 해봤니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청소광 브라이언'을 보고 청소를 했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후기 글들. 주로 영상에 소개된 청소 방법을 따라 했다는 내용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자취생 김고은(25)씨는 최근 물때가 있는 화장실 벽에 유통기한이 지난 선크림을 발랐다. 그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청소광'에서 배운 방법이다. 김씨는 "청소하는 게 힘들 줄 알았는데 엄청 간편하게 청소해 호텔처럼 깨끗해졌다"며 "화장실을 사용할 때마다 기분도 좋아졌다"고 했다. 그는 '집에 좋은 향이 나면 기분이 달라진다'는 '청소광'의 조언대로 집 곳곳에 향초와 디퓨저를 배치했다.

혼자 사는 최모(34)씨는 지난해 말 원룸으로 이사하면서 직접 페인트 칠을 했다. 유튜브로 '셀프 페인트 칠' 등의 영상을 찾아 공부한 뒤, 인터넷으로 페인트와 붓, 마스킹테이프와 비닐 등 도구를 샀다. 장장 일주일의 대공사 끝에 새집 같은 원룸으로 탈바꿈했다. 최씨는 "도배 전문 업체를 부르면 수십만 원이 들었을 텐데 혼자 하니 힘들어도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며 "온라인 정보가 많기 때문에 도배나 인테리어 시공 등을 혼자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인 가구 서윤주(30)씨도 자취방에 쌓인 옷과 소품들을 유튜브에서 본 수납법으로 정리했다. 스웨터나 터틀넥 등 두꺼운 상의를 옷걸이를 활용해 접어서 걸고, 작은 박스들을 서랍에 넣어 작은 소품들을 구분했다. 서씨는 "항상 옷이나 책, 잡동사니들로 방이 좁았는데 용도별로 구분해서 수납했더니 사용하기도 편하고, 방도 넓어졌다"며 "청소는 돈을 들이지 않고 삶을 바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추천했다.

전문가의 손길이 절실했던 화장실이나 주방 청소도 간편하다. 직장인 김모(26)씨는 최근 유튜브를 보고 화장실 타일 사이에 낀 곰팡이를 모두 제거했다. 그는 타일 사이에 있는 실리콘 위에 풀로 휴지를 붙인 뒤 락스를 충분히 뿌려 뒀다가 떼면 마법처럼 사라진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세제를 뿌리고 아무리 닦아도 잘 안 지워졌는데, 아주 간단하게 곰팡이가 사라졌다"며 "곰팡이가 사라지니 화장실 냄새도 사라지고, 공기도 맑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주부 이모(40)씨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주방 후드를 과탄산소다에 담가 두었더니 금세 깨끗해졌다"며 "설거지 후에 남는 물자국 제거하는 방법이나 쌀통에 벌레가 생기지 않는 방법 등도 SNS로 배웠다"고 전했다.


SNS로 배워서 공유한다...1인 가구 증가 영향도

가수 브라이언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의 '청소광 브라이언' 11화에 등장하는 청소용품을 정리해놓은 목록.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청소에 진심인 이들이 늘어난 것은 SNS의 영향이 크다. 가수 브라이언이 지저분한 집을 찾아가 청소를 도와주는 영상으로 유명한 유튜브 '청소광 브라이언'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0월부터 해당 채널에 올라온 총 14개 영상의 누적 조회 수는 1,900만 회에 달한다. 구독자 수는 73만 명을 넘는다. 평소 청소가 취미라는 브라이언은 "더러우면 싸가지가 없다"는 과격한 구호를 내세우며 청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누리꾼들은 "마치 부모님의 등짝 때리기 같은 효과처럼 청소를 하게 만든다" "청소 후 달라진 공간을 보니 따라 하고 싶어진다" "청소를 잘하는 게 엄청난 능력처럼 보인다" 등 열광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혼자 하기엔 귀찮지만, 청소 후기를 SNS로 공유하면서 서로 의지를 북돋기도 한다. 개인 블로그에 청소 후기를 남기는 주부 이진경(40)씨는 "남이 청소하는 걸 보니까 나도 '으쌰으쌰' 하게 되더라"라며 "이번에 미뤄온 벽 곰팡이 닦기, 벽지 교체, 페인트칠, 실리콘 처리까지 다 했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소 후기를 올린 직장인 차경아(51)씨도 "SNS로 청소 후기를 남기면서 다른 이들로부터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며 "예전엔 청소가 자질구레한 일처럼 느껴졌는데,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공유하면서 취미처럼 느껴진다"고 밝혔다.

열성적인 청소 인구가 늘어난 건 1인 가구 증가와도 연관이 깊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총 993만5,600가구로 전체(2,391만4,851가구)의 41.55%에 달한다. 혼자 살며 직접 살림하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가사노동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증가했다.

윤선현 베리굿 정리컨설팅 대표는 "예전에는 큰 평수의 아파트에서 각 구성원들의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가구를 어떻게 배치하고, 짐을 어떻게 정리할지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젊은 층들이 작은 공간을 나만의 안락한 쉼터로 활용하는 방법이나,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 불만이라면 방 청소부터

청소의 효과도 상당하다. 불면증이 있는 이모(21)씨는 청소 영상을 보고 세 달 만에 침실 청소를 했다. 이씨는 "바닥에 달라붙은 먼지까지 치우면서 고생했는데, 침실을 치우고 나니 잠이 잘 왔다"며 "침실 청소에 성공하니까 다른 공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청소를 하면 삶의 통제력이 회복된다는 2015년 미국 코네티컷대 연구결과도 있다. 인지행동 연구로 유명한 조던 피터슨 캐나다 토론토대 심리학과 교수는 저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현실이 불만스럽다면 방 청소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통제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성공하면 점차 더 많은 있을 할 수 있는 자기효능감이 생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진로나 생계 등의 고민으로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젊은 층에게 쉽고 빠르게 성취감을 주는 게 청소"라며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효능감을 쌓아가면 부정적 상태에서 벗어날 힘을 기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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