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솜 이불, 목화솜 패드…꿀잠 유발 ‘사대부 잠자리’

한겨레 2024. 1. 1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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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성의 욕망하는 공예 침구
침구 브랜드 비애이홈의 서울 삼청동 팝업 쇼룸에 전시된 침구. 명주솜 이불과 목화솜 누비 패드, 메밀 베개 등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

하루를 끝내고 이불 속에 파고들 때가 가장 편안하고 좋다. 그렇게 하루 8시간 정도 잠을 잔다. 인생에서 3분의 1은 잠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꼼짝없이 한 곳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자는 것 말고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좋은 잠자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 때도 싱글 침대가 아닌 더블 침대를 넓게 사용했고, 이불도 당시 형편에서는 무리였던 고가의 오리털 소재를 선택하기도 했다. 집은 궁색해도 잠자리를 잘 갖추었더니 서럽거나 남부럽지 않았던 자취생의 서울살이였다. 결혼식도 검소하게 치렀지만 매트리스와 이불 구매에는 큰 투자를 했고 10여년 동안 여전히 잘 사용하고 있으니 기특한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아이도 탐낸 누비 침구

이렇게 한 번 마련하면 쉽게 바꾸지 못하는 것이 침구다. 그래서 다른 이불을 덮어보는 경험을 위해 여행 시 숙소를 선택할 때 이불에 대한 후기를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대개는 오리털 이불에 깔끔하게 세탁된 하얀 면 커버 정도면 만족하는데 지난가을 경남 통영의 한 숙소에서 그야말로 탐나는 누비 침구를 만났다. 요와 이불, 베개로 구성된 누비 이부자리였는데 이틀을 묵고 나오면서 잠자리 때문에 더 머무르고 싶은 숙소는 처음이었다. 목화솜을 두툼하게 넣은 요는 바닥 난방의 온기를 전하면서도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침대 생활에 익숙해진 몸이라 바닥에서 자고 일어나면 뻐근하고 불편할 거란 걱정은 기우였다. 말갛게 하얀 면에 색실로 한 줄 한 줄 곱게 누빈 이불의 감촉은 보송보송하게 기분이 좋았고, 마냥 가볍지 않고 몸을 적당히 눌러주는 무게는 안정감을 주었다.

무명에 색실로 솜을 누빈 정숙희 작가의 누비 침구. 통영 한옥 숙소 ‘잊음’에서 경험할 수 있다.

이곳의 침구는 통영의 전통 공예인 누비를 작업하는 정숙희 작가의 솜씨다. 일전에 정숙희 작가의 누비 패드를 사용하던 지인이 초등학생 아들에게 빼앗겨 다시 주문했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좋기에 아이가 탐내나’ 궁금했는데 솜과 함께 따뜻한 공기를 누벼놓은 듯 보드랍고 편안했다. 이순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통영의 충렬사 앞에 있는 한옥 건물 ‘잊음’이란 숙소는 누비 침구 외에도 조대용 염장(발을 만드는 장인)이 짠 대발, 강동석 작가의 목가구, 김득천 장인의 장석(목가구 결합 부분을 여닫을 수 있게 하는 경첩 등의 금속제 장식)이 장식된 머릿장(머리맡에 놓고 서책을 보관하는 가구) 등 통영을 대표하는 공예품을 직접 사용해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조식으로 나오는 이상희 통영요리연구가의 맛깔난 섞박지와 오징어무침을 곁들인 충무김밥 또한 별미다. 100여년 된 한옥 건물은 박경리 작가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서 나오는 하동집의 배경이 되기도 해 문학적 감흥까지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전통 ‘아(亞)’자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박경희 작가의 누비 침구.

통영의 누비 공예가 박경희 작가는 ‘아(亞)’자 문양을 섬세하게 새긴 누비로 단아한 기품의 이불을 선보인다. 3년 전 서울에서 오랜 활동을 접고 고향인 통영에 자리 잡은 그의 누비는 공이 많이 드는 문양이 특징인데 전통을 잇는 마음이 깃든 30년 내공의 작업이다. ‘아’자 문양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고 현대적인 그래픽 디자인으로 승화해 모던한 품격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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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용 침구 ‘담백한 디자인’

전남 해남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에도 덮어보고 싶은 이불이 있다. 유선관은 오랜 시간 나의 문화재 교과서가 되어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애틋하게 소개된 곳이다. 100여년 동안 땅끝 해남의 두륜산과 천년 고찰 대흥사를 찾은 객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던 유선관은 2021년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한옥과 자연이 어우러진 운치는 남겨두고 객실 내부엔 침대를 들이고 한지로 도배해 단아하게 단장했다. 이곳을 다녀온 지인은 가장 먼저 침구를 칭찬했다. 메밀베개의 바스락거림은 낯설지만 편안했고 사각거리는 면 커버에 처음 접해본 명주솜을 넣은 이불은 먼 길 떠나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토닥이듯 감쌌다고 했다. 침구 브랜드인 비애이홈이 한국 전통 침장 문화를 현대인의 생활방식에 반영해 제작한 것으로 명주솜·목화솜·메밀껍질 같은 재료 또한 우리 땅에서 난 것을 사용했다. 화학적인 가공을 배제해 자연을 그대로 덮는 셈이다. 염색하지 않은 천연의 색에서도 단정한 포근함이 느껴진다. 명주솜과 목화솜은 3년에 한 번씩 솜을 틀어주면 다시 새것처럼 오래 사용할 수 있는데 요즘은 솜 트는 곳을 찾기 어려워 비애이홈에서 직접 서비스를 진행하는 점도 든든하다.

색이 고운 비단과 무명, 목화솜과 명주솜 등으로 정성껏 지은 규방도감의 명주 이불과 보료.

2005년부터 손수 바느질로 이불을 지은 우영미 작가가 운영하는 규방도감의 이불도 남다르게 아름답다. 무명·광목·모시·명주 등 다양한 전통 소재로 정성껏 짓는 것은 물론이고 현대 생활에 맞게 세탁과 관리가 편하도록 제작한다. 전통 직물의 소재와 문양을 연구하고 작업실 인근 고궁박물관에서 본 궁중용 침구를 통해서 영감을 얻어 선보이는 담백한 디자인은 덕망 높은 사대부 댁에서 사용했음 직하게 정결하다. 무명에 들꽃을 수놓은 고운 솜씨나 비단의 절제된 배색은 현대의 공간에서도 그 미감이 빛을 발한다. 우영미 작가는 말한다.

“전국에서 수소문해 좋은 원단을 찾아 소량씩 구입하고 이 귀한 원단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삶고, 빨아 말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뒤 이불로 짓는 데 이 과정이 참 고됩니다. 명주도 세탁 후 작업하기 때문에 집에서 세탁기에 넣고 빨아도 상하거나 줄지 않아요. 속통은 명주솜을 추천하는데 스스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고 통기성이 뛰어나 냄새가 배지 않고 항균 능력이 있어서 세탁을 자주 할 필요도 없이 오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좋은 소재가 국내에서 소멸될 위기에 처해있지만 이에 대한 가치를 알아주는 분이나 찾는 이가 늘어나면서 다시 국내 생산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처럼 수면의 질이 몸과 마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불·매트리스·베개 등 잠자리 용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러한 관심이 부디 우리의 전통 침구와 이를 이어가고 있는 이불 공예에도 닿기를 새해 소망으로 빌어본다. 한국 전통 침구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책도 발행되길 기대한다. 우리 침구에 대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놀랍고 아쉬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번 글을 준비하며 얻은 가장 큰 소득이자 새로운 소명이다.

글·사진 박효성 리빙 칼럼니스트

잡지를 만들다가 공예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우리 공예가 가깝게 쓰이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가꿔주길 바라고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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