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 위태로움 예민하게 새기다 [주말을 여는 시]

하린 시인 2024. 1. 1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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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김제욱 시인의 광시곡의 밤
스스로 학대하는 젊음의 특성
미완과 무한한 가능성의 공존
예술가에게 찾아오는 참담함
조바심의 늪을 피할 기다림

광시곡의 밤

구름 한 장 담은 백지와
한없는 길을 돌돌 말아 내는 만년필로
방안이 어두웠다 밝아진다.
집과 집 사이
방안 천장까지 비가 뭉쳤다.
뾰족하고 높다란 탑이 없더라도
종을 울려 저녁을 선포할 시간이 왔다.
우는 사람을 잠재우고
웃음을 저만치 멈춰놓는다.
시간의 무늬를 따라
구름이 정확히 회전한다.
대낮의 열기도 가만히 숨죽이고
방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젖은 심장에 낚싯줄 달아
출렁이는 바닥 아래로 내려 보내면,
심해어들이 환멸 깊은 곳에서
죽어가는 자의 가죽을 뚫고
방안 가득 솟아오른다.
갱도를 빠져나온
번쩍이는 그림자의 놀라운 깊이는
작은 유리창에 붙은 별이 잘 안다.

긴 장마가 물러간 후
벽에 핀 누룩곰팡이를
꽃이라 부르며 지운다.

「라디오무덤」, 현대시. 2016.

김제욱
•2009년 현대시 데뷔
•2016년 시집 라디오무덤 출간
•한서대 융합교양학부 교수

젊은 예술가에게 자학은 필연처럼 일어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자학自虐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와 감정을 말한다. 이런 자학이 젊은 시인의 시에서는 흔한 증상으로 발견된다. 젊음 특유의 불안과 위태로움이 자학이라는 감정을 뒤집어쓰고 발현하기 때문인데, 세련된 감각을 가진 시인들은 그것을 비유적ㆍ상징적 요소로 활용한다.

김제욱 시인이 자학을 위해서 활용한 요소는 광시곡이라는 음악이다. 광시곡은 원래 서사적, 영웅적, 민족적인 색채를 지니는 환상곡 풍의 기악곡으로 즉흥적으로 뜨겁게 치솟다가도 잔잔하게 심연을 후벼 파는 특성을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광시곡의 '광시狂詩'가 풍기는 어감 때문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물어뜯는 예술가의 몸부림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광적인 감정을 반영한 시'의 이미지가 「광시곡의 밤」에도 어김없이 깔려 있다.

우리 주변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출발한 젊은 시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시적 증상은 그야말로 처절한 절규나 마찬가지다. 그 절규와 함께 「광시곡의 밤」은 탄생했을 것이다. 이 시에 나오는 화자는 끊임없이 암울한 "길을 돌돌 말아 내는 만년필로" "구름 한 장 담은 백지" 위에 자신의 위태로움을 예민하게 새겨 넣는 존재다.

[사진=한국문연 제공]

시적 공간인 방안은 낮과 밤의 변화에 따라 "어두웠다 밝아지는" 것을 반복하지만 "집과 집 사이" "천장까지 비가" 뭉치는 몽상을 피할 수는 없다. 왜 화자에게만 끊임없이 먹구름이 몰려오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찰나만 찾아오는가.

밤은 "대낮의 열기도 가만히 숨죽이게" 하고 "방안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데, "우는 사람을 잠재우고/웃음을 저만치 멈춰놓게" 하는데, 왜 화자에게 밤은 "뾰족하고 높다란 탑이 없더라도/종을 울려 저녁을 선포할 시간"으로밖에 인식되지 않는가.

명확한 대답이란 있을 수 없다. 병적이고 파괴적인 자학적 기분만이 독자들의 감상적 영역을 표류한다. 그러니 독자들은 "젖은 심장에 낚싯줄 달아/출렁이는 바닥 아래로 내려 보내"는 화자의 기분과 그런 기분을 먹고 자란 "심해어들이 환멸 깊은 곳에서/죽어가는 자의 가죽을 뚫고/방안 가득 솟아"오르는 몽상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자는 위악적인 파국을 뚫고 솟아오른 '심해어'를 암울함 속에서만 헤엄쳐 다니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젊음 자체가 미완성이고 끊임없이 뒤틀린 본능에 압도되더라도, 찢기고 흩어진 자리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껴안도록 틈을 열어놓는다.

"갱도를 빠져나온/번쩍이는 그림자의 놀라운 깊이"를 발견하고, "작은 유리창에 붙은 별"이 갖는 희망적 메시지를 감지한다. 이젠 화자도 "긴 장마가 물러간 후/벽에 핀 누룩곰팡이를/꽃이라 부르는" 자기 위안을 가질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쩌면 자학은 주목받지 못한 젊은 예술가에게 찾아오는 필연적인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그런 통과의례가 한번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여러번 반복 재생되기에 무척 힘이 든다. 따라서 주목받지 못한 예술가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담한 자기 투쟁인 동시에 자기 갱생이다.

자학을 뚫고 거침없이 파죽지세로 치닫는 단 하나의 고결한 예술 정신을 만날 때까지 그들은 암울하게 진행형으로, 과도기로 살아 갈 것이다.

김제욱 시인의 「광시곡의 밤」은 그들의 상황을 잘 대변해 주는 하나의 표상인 동시에 의지이다. 그러니 우리는 아직 제대로 날개를 펴지 못한 예술가들에게 조바심을 칠 필요가 없다. 필연적인 몸짓을 너그럽게 바라보며 차분하게 기다려줘야 한다. 폭력적인 어떤 조바심은 젊은 예술가를 궁지로 몰아세우며 '요절'의 늪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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