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막대기 하나로 알아낸 지구의 크기

홍성욱 한국천문연 선임연구원,박동현 기자 2024. 1.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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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금이야 지구가 둥글단 증거가 많이 밝혀졌지만 예전에는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단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 과거엔 지구가 편평했다고 믿었다?

저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별과 우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매년 비행기를 타고 해외 학회에 가서 여러 과학자를 만나고 있어요. 학회는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전 세계의 과학자가 한자리에 모여 각자 새로 밝혀낸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행사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과학자들은 학회에서 서로의 연구를 공유하며 친해지고 연구를 협업하기도 해요.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은 오늘날에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유럽이나 미국까지 가 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일주에 성공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지구를 제대로 한 바퀴 돌아본 적이 없었고요. 심지어 지구가 편평하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18세기 초 조선에서 만들어진 ‘천하도’라는 지도를 한번 보세요. 이 천하도에 그려진 세상의 모습은 넓고 편평한 원반 모양입니다. 이를 통해 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편평하다고 생각했으리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천하도는 그 당시 알려진 세상 전체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지도에 그려져 있는 땅과 바다의 모양, 지도에 표시된 나라의 이름과 위치도 모두 실제와는 달라요.

천하도는 이 세상 전체를 직접 탐험하지 못한 채 전설이나 다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만 세상의 모습을 상상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담긴 지도입니다.

천하도: 조선 후기 원형으로 제작된 세계 지도. 조선 후기에 다양하게 제작되면서 민간의 대중들에게 널리 유포되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나무 막대기 하나로 밝힌 지구의 크기?

옛날 사람 모두가 지구는 편평하다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24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집트에서 잘 보이는 별이 훨씬 북쪽에 있는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냈어요. 그리고 이런 일은 땅이 공 모양으로 휘어져야만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월식이 일어날 때 지구가 달에 드리우는 그림자가 둥근 모양인 걸로 보아 지구가 공 모양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대표적인 증거인 월식 현상. 달에 비친 지구 그림자가 둥근 모습라는 사실을 통해 지구가 공 모양임을 알 수 있다. Tomruen 제공

약 100년 후 학자들은 공 모양을 가진 지구의 크기를 아주 정밀하게 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철학자 에라스토테네스는 당시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갖고 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이집트 남쪽 끝의 아스완이라는 도시에 관한 신기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도시에는 깊은 우물이 있는데 1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인 하짓날 정오에 이 우물 안쪽을 들여다보면 그 우물에는 전혀 햇빛이 들지 않고 깜깜하게 보인다는 것이었어요.햇빛이 비치는 방향과 우물이 뚫린 방향이 완전히 같아서 햇빛이 우물을 보는 사람으로 완전히 가려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복원모습과 에라스토테네스(오른쪽 아래). 위키미디어 제공

에라스토테네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지내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하짓날 정오에 햇빛이 어떻게 비치는지 궁금해졌어요. 그는 당시 땅의 크기를 정밀하게 재던 전문가에게 그림자를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술자는 땅 위에 곧은 막대기를 하나 세우고 그림자의 길이를 쟀어요. 하짓날 정오의 알렉산드리아에 비치는 햇빛이 막대기와 이루는 각도는 약 7였습니다.

에라스토테네스는 이 사실을 통해 지구의 중심에서부터 알렉산드리아와 아스완에 각각 선을 그으면 두 선이 이루는 각도도 역시 7이 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 각도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아스완까지의 거리를 안다면 지구의 둘레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라스토테네스가 계산한 지구의 크기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값과 고작 2%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현재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건 옛날부터 아리스토텔레스나 에라스토테네스 같은 학자들이 지구의 모양과 크기를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홍성욱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필자소개 
홍성욱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우주론과 외계생명 등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로,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인 우주거대구조를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인공지능을 이용해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이론천문센터의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1월 1일호, [천문학자] 다 같이 돌자, 지구 한 바퀴

 

[홍성욱 한국천문연 선임연구원,박동현 기자 none@donga.com,idea10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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