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도 노숙인 돈 갈취한 '옥포항 사건' 피의자…수급비의 역설

신심범 기자 2024. 1. 1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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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노숙인 세계' 갈등 촉매, 기초생활수급비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지금처럼 자리 잡기 전 일입니다. 2004년 부산역에서 급식소를 운영할 때인데, 당시 ‘질서 유지’를 자처하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밥을 기다리는 노숙인들 줄을 세워주고, 돌발 상황을 막아주겠다는 겁니다.”

A 씨는 20년 전 목도한 ‘악마’를 떠올리며 말을 시작했다. A 씨는 20년 이상 무료급식 봉사에 헌신한 교회 집사다. 그에 따르면 2004년은 부산역에 노숙인 무료급식소가 처음 들어선 해로, 모든 것이 대체로 어수선했다. 시립 급식소 ‘부산희망드림센터’(2021년) 같은 번듯한 시설이 마련된 현재와는 사정이 달랐다. “그 사람들은 돈도 받지 않고 질서를 관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실 필요 없다’고 돌려보내려 하면 화를 내며 몸을 밀치는 식으로 과격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한동안은 그들이 부산역에서 일을 했었어요.”

2004년 부산역 광장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무료급식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국제신문 DB


머잖아 그들의 검은 속내가 드러났다. 그들은 급식소의 노숙인이나 장애인에게 질서 관리자라는 ‘완장’을 내세우며 기초생활수급비를 가로채 왔다. 술을 사주며 환심을 사 얼굴을 트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데 필요한 행정 서류 작업도 도와주며 수급 혜택을 보게 했다. 그 뒤엔 힘과 폭력을 동원하거나 ‘내게 갚을 빚이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그들의 수급비 카드를 강탈했다. “노숙인 대부분은 약한 사람들입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그래요. 저들은 애초부터 약한 이들을 등쳐먹을 심산으로 급식소를 찾아온 거였죠. 노숙인들 명의로 대포차 대포카드를 뽑는가 하면, 노숙인은 찾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을 이용해 돈을 받고 원양어선에 태워버리는 일도 저질렀습니다. 애당초 그들은 노숙인도 아니었고, 그저 다수의 힘 없는 이들을 이용해 돈 빼먹을 궁리만 했던 양아치인 겁니다, 쯧.” A 씨는 혀를 찼다.

이처럼 노숙인은 갖가지 이유로 타인에게 자신의 수급비를 강탈당한다. 부산 한 사회복지계 관계자는 “노숙인은 변제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돈을 빌려준 사람이 노숙인의 기초생활수급비 카드 등을 받아와 쓰는 일이 생기곤 한다. 매달 돈이 꽂히는 거의 유일한 수입원으로, 노숙인 본인이 통장을 들고 있으면 돈을 갚기도 전에 대부분을 써버린다는 이유다. 카드를 받는 과정에서 욕설은 물론 폭력도 동원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노숙인의 최소한도 생활을 도와야 할 수급비가 외려 이들을 새로운 위협과 갈등으로 몰아넣는 역설이 생겨나는 셈이다.

▮과거에도 노숙인 위협해 돈 뜯어내

거제 옥포항 변사사고(국제신문 지난해 11월 13일 자 온라인 등 보도)으로 최근 구속 송치된 B(49) 씨. 그는 노숙 생활 중 알게 된 동료 노숙인 C(56), D(57) 씨의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무비 등을 수년간 갈취해 쓴 혐의로 기소를 앞뒀다. B 씨는 두 사람에게 평소 자주 술을 사줬는데, 나중에는 이들에게 폭력과 위협을 가하며 술값을 갚으라고 강요하며 700만 원가량을 뜯었다. B 씨는 아예 두 사람의 수급비 카드를 빼앗아 본인이 관리했고, 이들이 일해 번 돈 또한 자신에게 부치게 시켰다. 두 사람의 ‘보스’처럼 행동한 B 씨는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으며 행동 하나하나를 지시하다시피 했다. 그는 평소 자신을 칠성파 등 조직폭력배와 관련한 사람인 듯 무용담을 늘어놓기 좋아했다. B 씨, 또는 그의 조폭 지인들이 혹여 보복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은 그의 지시에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A 씨는 B 씨를 안다. B 씨도 과거 무료급식소의 ‘질서 유지인’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본 건 2012년 전후로, 급식소가 부산역에서 부산도시철도 부산진역으로 이전(2005년)한 뒤였다. 당시 무료급식소는 여러 해에 걸쳐 운영 경력을 쌓은 덕에 관리상의 어려움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B 씨는 자신이 이곳의 질서를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A 씨는 “그는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고, 봉사자들에게도 이따금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서 급식소를 함께 운영하는 구성단체 사람들에게 그를 내쫓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B 씨는 당시 노숙인의 신용카드를 강제로 빼앗은 사실이 들통나 징역을 살았다. 그는 2014년 2월 사기·공갈·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2013년 1월 24일 오후 3시 무료급식소 숙소 용도 컨테이너로 50대 노숙인을 불러내 “컨테이너 문을 잠가라, 개○○ 내가 니 봐주니까 간이 배 밖에 나왔나”며 30분간 욕설했다. 그 뒤 노숙인이 보관하고 있던 제3자 명의의 통장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해당 노숙인이 이를 거부하며 밖으로 나서려 하자 B 씨는 “맞아야 정신 차리겠나, (문) 열지 말라 좋은 말 할 때”라며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려 하는 등 위협했다. 겁먹은 노숙인은 그에게 통장과 현금 20만 원을 건넸다. 가로챈 카드로 B 씨는 21만 원어치 술을 사 먹었다. 열 차례 통장에 든 현금을 뽑아 총 538만여 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그의 유죄를 인정한 부산지법 형사8단독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무서워했다고 죽음까지 몰려갔다는 건 과도”

옥포항 사건과 관련해 B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다양하다. C, D 씨를 위협해 수급비 등을 갈취해 쓴 점 외에도, 그는 지난해 10월 11일 오후 2시 옥포항 수변공원에서 C(56) 씨가 바닷가에 빠졌는데도 이를 방조하는 등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과실치사)를 받는다. 수사를 맡은 창원해경은 한 달여 만인 지난달 26일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애초 창원해경은 B 씨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적용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 C 씨가 오랜 시간 B 씨의 지시대로만 생활하는 등 심리적 지배-피지배 관계가 형성된 점이 그의 죽음에 영향을 줬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B 씨는 전날부터 이어진 음주로 심기가 불편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B 씨의 인상에 마음이 졸인 C 씨는 그의 기분을 풀어줄 요량으로 물에 뛰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는 자신에게 과도하게 많은 혐의가 붙었다고 항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B 씨 지인이자 부산지역 노숙인 활동가 출신인 E 씨는 “세 사람은 원래부터 서로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술값 대부분은 B 씨가 냈고, 때로는 나머지 두 사람이 B 씨를 불러내 술을 먹는 등 일방적으로 지시를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다. 사망한 C 씨는 B 씨에게 큰 돈을 빌린 상태기도 했다”며 “B 씨가 평소 과격한 모습을 보였고, 그런 면모에 두 사람이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인 건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겠으나 그런 점이 죽음으로까지 몰아갔다고 보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다. B 씨 또한 경찰에 ‘C 씨에게 받아야 할 돈이 있어 그의 죽음을 바랄 이유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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