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이재명 헬기’는 왜 성남의료원으로 가지 않았나

박정훈 논설실장 2024. 1. 13.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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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의사회가 물었다
“본인도 안 가면서
누구더러 지방의
공공 병원을
이용하란 거냐”
사태의 정곡을
찌른 질문이었다
지난 2일 부산대 벙원을 출발해 서울 용산구 노들섬에 도착한 소방헬기에서 이재명 대표가 내려지고 있다. 이 대표는 대기중이던 구급차로 갈아타고 서울대 병원으로 향했다. /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헬기 이송에 쏟아진 지역 의사회 비판 중에서도 눈길 끈 것이 성남시 의사회의 성명이었다. 성남 의사회는 이 대표에게 “왜 성남시의료원으로 가지 않았냐”고 물었다. 민주당 설명대로 ‘연고지 이송’이 목적이라면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만든 성남의료원이야말로 가장 연고 깊은 병원이란 뜻이었다. 3900억원을 들여 4년 전 개원한 이 병원은 이 대표가 “나의 정체성이자 기반”이라며 애착을 감추지 않았던 곳이다. 최신 장비와 헬기 계류장까지 갖춘 대학 병원급 시설이지만 이 대표는 그곳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다. 성남 의사회는 “본인도 이용하지 않는데 대체 누구더러 이용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정곡을 찌른 질문이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성남의료원은 ‘성남시장 이재명’의 상징이자 그가 정치에 입문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 의료원 설립 조례가 성남시 의회에서 부결되자 의사당에 난입해 항의했고 이 일로 수배까지 됐다. 경찰을 피해 다니던 중 자신이 시장이 되어 짓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공공 의료원 설립을 ‘1호 공약’으로 내걸고 2010년 성남시장에 선출되자 시 예산을 투입해 공사에 착수했다. 성남의료원은 그가 경기지사에 당선된 지 2년 뒤 완공됐다. 그는 “시민이 만든 시의료원이 공공 의료의 역사를 새로 썼다”며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개원 후 실적은 참혹했다. 509개 병상을 갖춘 대형 병원이었지만 입원실의 73%가 비었고, 수술 건수는 하루 5.7건꼴에 불과했다. 매년 400억~500억원씩 적자를 냈고, 의사들이 수십 명씩 떠났다. 의사를 못 구해 정원의 30%를 못 채울 지경이었다. 지역 주민은 물론 내부 직원조차 병원을 신뢰하지 않았다. 의료원 직원 대상 조사에서 ‘가족·지인에게 치료받도록 적극 권장하겠다’는 응답은 8%뿐이었다.

이 대표 가족도 신뢰하지 않는 듯 보였다. 2021년 말 심야에 낙상 사고를 당한 이 대표 아내 김혜경씨가 간 곳은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이었다. 봉합 수술도 성남의료원 아닌 모(某) 성형외과에서 받았다. 이 대표 장남은 분당 자택에서 50여km나 떨어진 고양시 명지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4일간 단식 끝에 이 대표가 입원한 곳도 ‘운동권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이었다. 창립자조차 기피하는 병원이 성공할 리 없었다. 작년 말 성남시는 의료원 직영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 병원에 위탁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재명식 공공 의료가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서울대병원 이송에 대한 비판이 일자 이 대표 측은 가족이 간병하기 편한 곳으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적 지지를 해줄 가족의 간호가 절실했다”고 했다. 이 해명은 설득력 있었다. 환자를 돌보는 가족으로선 멀리 떨어진 부산대병원보다 집 근처 가까운 병원을 선호하는 게 당연했다.

현재 이 대표와 가족이 거주하는 곳은 인천시 계양구 아파트다. 성남시 분당에서 살다가 재작년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인천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대표 자택에서 가까운 인천시 남동구엔 가천대 길병원이 있다. 2014년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권역 외상 센터 1호 병원이자, 복지부 평가에서 해마다 A 등급을 놓치지 않는 중증 응급 의료의 명가(名家)다. 지난해 평가 때도 대부분 항목에서 최고점을 받으며 전국 응급 의료 기관 40곳 중 1위에 올랐다. 인천엔 인하대병원도 있다. 이곳 응급 센터 역시 2017년, 2020년 전국 1위를 기록하는 등 7년 연속 최상위 A 등급을 받았다.

가까운 곳에 있는 최고 수준 병원들을 놔두고 이 대표는 서울 종로구의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서울대병원은 국가가 지정한 권역 외상 센터가 아니다. 성남의료원·길병원·인하대병원처럼 활용 가능한 헬기 계류장도 없어 이 대표를 실은 헬기는 한강 노들섬에 착륙해야 했다. 이대표는 헬기에서 내려 구급차로 옮겨 타면서까지 서울대병원행(行)을 고집했다. 이 대표 측근인 정청래 의원의 설명이 차라리 솔직했다. 그는 “(수술을) 잘하는 곳에서 해야 할 것”이라 했다. 지방 의사 실력이 서울만 못하다는 뜻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국회에서 민주당은 지역 의사법, 공공 의대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표가 ‘지역 공공 의료’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대표는 정부·지자체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 병원을 전국에 70개 지어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의료 서비스의 지역화·공공화를 주장하는 이 대표가 부산의 지역 의료 체계를 거부하고, 성남의 공공 의료 서비스를 기피했다. “본인도 안 가면서 누구더러 이용하라는 거냐”는 성남 의사회의 질문이 이번 사태의 핵심을 정확히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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