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가족돌봄아동 문제 조명···‘기특한 아이는 없다’

손봉석 기자 2024. 1. 1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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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2일 오후 10시 KBS1 ‘추적 60분’은 1351회 ‘가족돌봄아동-기특한 아이는 없다’편이 방송된다.

1984년, 정부가 ‘소년소녀가장세대 보호대책’을 수립하면서 최초로 ‘소년소녀가장’을 행정적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하지만, 보호를 받아야 할 아동에게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게 한다는 이유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소년소녀가장제’ 폐지를 권고했고 ‘소년소녀가장’ 지원 정책이 가정위탁 제도로 전환되면서 지원 대상이 대폭 축소됐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서 ‘소년소녀가장’이라는 말은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 그렇다면 현실 속 ‘소년소녀가장’도 사라졌을까? 이번 주 ‘추적 60분’은 ‘가족돌봄아동’이라 불리는 ‘소년소녀가장’들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3년 전, 14살 동건이는 아버지의 사고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상태는 심각했다. 겨드랑이 아래로 하반신 마비가 진행됐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던 상황. 하체가 마비된 아버지의 간병과 부자의 생계는 고스란히 어린 동건이의 몫이 되었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아침에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지 3년이 흘렀다.

“제가 주말에 수행(평가)을 해야 되는데 아빠가 배변을 못 가리잖아요, 그래서 그거 한 번 치우는 데 한 1시간쯤 걸리는데, 하루에 세 번을 못 가려서 한 3시간 날리고 또 힘도 다 쓰고 그래서 학교 수행평가도 망치고 공부도 지금 소홀히 하고 있고” (김동건 17 가족돌봄아동)

곧 고3이 되는 동건이에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간병과 학업을 병행하는 동건이에게 성적관리는 쉽지 않다. 책이 좋아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다는 동건이의 꿈은 어쩐지 더 막막하게 느껴진다. 동건이가 어른이 되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저는 어머니를 6년째 돌보고 있는 가족돌봄청년 김현주라고 합니다, 제가 실용음악과 입시를 준비했었는데 딱 20살 된 해 3월에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지셔서 그때 엄청 불안했죠, 불안하고 무섭고 또 아빠는 일 나가셔야 하니까 아빠도 곁에 없고 보호자가 없고 한순간에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돼 있고”(김현주 26 가족돌봄청년)

첫 인터뷰에서 현주 씨는 자신을 ‘가족돌봄청년’이라 소개했다. 실용음악과 입학을 목표로 준비하던 입시생 시절.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현주씨는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현주 씨는 그렇게 엄마의 엄마가 됐다.

어머니의 재활에 도움이 될까 싶어 작업치료과에 들어가 취업에 성공했지만, 어머니의 암 진단으로 그마저도 포기해야만 했다. 현주 씨의 모든 결정엔 어머니가 최우선이다. 현주 씨의 미래에 ‘자신’은 없다. 언제쯤 이 돌봄 굴레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볼 수 있을까. 남들에겐 당연한 일상이 현주 씨에겐 꿈이 됐다.

전문가들은 ‘가족돌봄아동’의 정의가 모호하고 이들의 돌봄 노동이 당연시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발굴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작진이 만난 ‘가족돌봄아동’들은 자신이 ‘가족돌봄아동’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자기 자신도 모르죠. 자신이 가족 돌봄 아동,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잘 몰라요. 주변에서 지켜보는 분들도 잘 모르는 거죠 그냥 너무 대견하거나, 또는 너무 불우한 아이 (라고만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저 아이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가 할 일이다, 그건 사회의 책임이다’라는 인식이 생겨나야지만 (가족돌봄아동을) 적극적으로 제보하고 찾아내고 연결해 주게 되고 (나아가) 당사자도 나설 수 있는 이런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생각해요”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가족돌봄아동 발굴이)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당장 저희 사회복지공무원들부터도 영케어러라고 하는 것 자체를 어느 정도까지 돌봄을 하고, 돌보는 사람이 몇 살이고, 몇 시간 정도를 돌봐야 영케어러로 봐야 하는지 아직도 의문점을 갖고 있고요. 그러면 이 친구가 가족을 돌보느라고 기본적인 생활이나 자기 계발을 안 하고 있으면 영케어러로 봐야 하는지 이런 세세한 부분들을 정하는 것이 사실상 너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홍송림 광주광역시 서구청 복지정책팀장)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에 명칭을 바꿨지만, 명칭만 사라졌을 뿐, ‘가족돌봄아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히 누려야 할 삶을 자신도 모르게 박탈당한 채 가족의 생계를 떠안고 있다. 더 이상 이들이 고립되지 않게 ‘가족돌봄아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 그에 맞는 지원과 정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들을 원치 않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12일 오후 10시 방송이 될 ‘추적 60분’은 ‘가족돌봄아동 –기특한 아이는 없다’편이 방송된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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