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앤 베이스의 기틀을 확립한 ‘연금술사’

2024. 1.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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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음악의 하위 장르 ‘드럼 앤 베이스’는 잊혀질 법 할 때쯤이면 꾸준히 소환되곤 했다.

그러니까 영국의 댄스플로어를 지배했던 90년대 전성기를 거쳐 2000년대 덥스텝이 등장할 무렵 새로 급부상했고 2010년대 베드룸 팝 프로듀서들이 애호하면서 다시금 언급되다가 2020년대에는 K-팝 히트 곡들에 활용되면서 한 번 더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0년대 후반 무렵 한국에 드럼 앤 베이스 파티들이 성행했고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 사이 하이 콘트라스트, LTJ 부켐, 로니 사이즈 등이 줄줄이 내한하기도 했지만 국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친숙한 장르가 된 것은 2020년대 K-팝에 적극 활용되면서부터였다.

160~190BPM이라는 공격적인 템포의 브레익비트에 덥 베이스라인, 그리고 테크노와 하우스의 강렬한 멜로디가 결합된 형태로 구성된 드럼 앤 베이스는 처음 레게 기반인 정글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정글에서 자메이카 색을 빼고 사운드 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드럼 앤 베이스 스타일이 정착됐고 이후 수십개의 하위장르로 확장된다. 그러니까 브레익비트와 베이스라인의 핵심을 유지하되 아티스트들 제 각각의 다양한 해석이 추가됐다.

1990년대 초반 영국 레이브 씬의 일부로 시작된 드럼 앤 베이스는 브레익비트와 하드코어 매니아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하우스 보다는 힙합과 훵크의 브레익에 집중했고, 기존에 존재했던 정글에서 자메이카의 영향에 덜 의존하려 했다. 이런 과정 끝에 영국 게토에서 시작된 드럼 앤 베이스는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약 30년의 세월에 거쳐 테크노와 록, 팝에도 영향을 미칠 만큼 널리 통용됐다.

지난해 10월 대구 달서구 테마파크 이월드에서 열린 ‘이월드 뮤직 페스티벌(이뮤페)’을 찾은 시민들이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에 맞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드럼 앤 베이스 씬에는 다양한 장인이 존재하지만 이 장르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선구자라 하면 단연 골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온 골디는 자신의 레이블 ‘메탈헤즈’를 꾸려 나가는 와중 드럼 앤 베이스의 문화적 영향과 스타일에 있어 엄청난 성장을 주도해왔다.  

1965년 영국 월솔에서 태어난 골디는 처음 브레이크 댄스 크루에서 활동하다가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주목받았다. 그래피티 프로젝트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했고 뉴욕과 마이애미에서 ‘그릴(금 이빨 주얼리)’을 판매하기도 했는데, 1988년 영국으로 돌아와서도 이 사업을 유지했는데 그의 활동명 ‘골디’ 또한 여기서 유래됐다.

영국으로 돌아온 골디는 레이브에 매료됐고 1990년 무렵부터 정글, 드럼 앤 베이스, 브레익비트 하드코어 씬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동료들과 함께 여러 기술과 아이디어를 한계까지 몰아붙여내면서 소리들을 테스트해갔던 골디는 싱글 ‘Terminator’를 통해 복잡하고 빠르며 미래 지향적인 사운드로 드럼 앤 베이스 컬쳐의 시작을 촉발했다.

1995년 골디의 데뷔 앨범 <Timeless>는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UK 차트 7위에 입성한 앨범은 드럼 앤 베이스의 특성은 물론 오케스트라와 소울 보컬의 투입을 비롯한 비범한 시도들을 심어 놓았다. 

특히 21분 길이의 하드코어 교향곡 ‘Timeless’를 통해 드럼 앤 베이스는 비로소 어떤 무게감을 가지게 된다. 이 혁명적인 결과물은 드럼 앤 베이스 씬의 첫번째 플래티넘 앨범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Inner City Life’의 경우 UK 싱글 차트 39위에 랭크되면서 별개로 흥행했다. 

드럼 앤 베이스를 대중화하는 발판이었음은 물론 음향적 완벽함, 획기적인 미래주의를 모두 갖춰낸 걸작이었다. 이후 25주년 기념반이 발매됐는데 지금에 와서 들어도 여전히 놀랍고 새로운 영감을 준다.

1998년에 발표한 <Saturnz Return>은 한시간 길이의 오프닝 트랙 ‘Mother’를 비롯해 보다 극단적이고 화려한 형태로 완성됐다. 데이빗 보위와 노엘 갤러거, KRS-원 등이 피쳐링한 앨범은 엇갈린 평가를 받았는데, “야심적이지만 지나치게 길다”라는 의견과 “금니를 가진 핑크 플로이드”라는 의견이 공존했다. 

당시 드럼 앤 베이스에 영향 받아 <Earthling>을 완성했던 데이빗 보위, 샘플링 뮤직의 아버지이자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였던 말콤 맥라렌, 그리고 슈퍼 프로듀서 트레버 혼 등이 참여한 <Saturnz Return>은 드럼 앤 베이스 역사상 다시는 없을 블럭버스터로서 기록됐다.

이후 골디는 음악 외적인 활동에 눈을 돌린다. <007 언리미티드>와 <스내치> 같은 작품에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고 <Everybody Loves Sunshine>에서는 자신의 앨범에서 함께 했던 데이빗 보위와 등장하기도 했다. 

TV 퀴즈쇼를 비롯 유명인사들이 오케스트라 지휘법을 배우는 BBC 리얼리티 쇼 <마에스트로>에 출연했으며, 직접 젊고 재능 있는 음악가를 선택해 지도하는 리얼리티 쇼 <Goldie’s Band: By Royal Appointment>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피티 및 디자인 활동 또한 지속적으로 해 나갔고 몇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2010년, 골디의 23세 아들이 라이벌 갱단원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일이 발생했고 이후에는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으면서 그와 관련된 활동을 이어갔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으면서 2016년에는 대영제국 훈장 회원으로 임명됐다. 골디는 훈장을 가리키며 자신에게 이런 종류의 ‘은 제품’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말했다. 

여러 풍파를 겪은 이후 2017년 세 번째 정규 앨범 <The Journey Man>을 내놓는다. 이전 앨범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2CD 분량의 대작으로 완성됐고 골디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 일러두기도 한다.

참고로 골디는 2002년 (현재는 없어진) 리츠칼튼 호텔에서 내한공연을 가졌다. 

여기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는데 공연 막바지 즈음 어느 외국인이 골디를 향해 그를 조롱하는 듯한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흔들어 댔고 결국 골디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 외국인과 말다툼 끝에 주먹다짐이 벌어지게 된다. 

골디 정도의 뮤지션이 내한 공연에서 무대 아래로 내려와 관객과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 드문 경험일 것이다.

골디는 음악과 예술이 진정으로 자신의 인생을 구했다고 말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예술을 통해 구원받기를 원했던 그는 드럼 앤 베이스와 언더그라운드 문화들이 주류 음악산업에 자리잡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바램 대로 언더그라운드 문화였던 드럼 앤 베이스는 전세계 대중음악에 널리 활용되면서 상업적인 장르로서 자리 잡아갔다. 댄스플로어의 진화과정에 있어 과감하게 맨 앞에 서서 벽을 부수며 전진했던 골디는 결코 쉬운 길을 택하려 하지 않았고 여전히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드럼 앤 베이스는 마치 그래피티가 미술에 끼친 것과 같은 일을 전자음악 시장에서 해냈습니다”

☞ 추천 음반

◆ Goldie - Masterpiece(2014 / Ministry Of Sound)

일전에 발매된 골디의 베스트에 이어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에서 발매된 이 모음집은 골디의 주요 곡들은 물론 그에게 영향을 줬던 트랙들까지 한데 엮어내면서 레이브 씬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드럼 앤 베이스의 주요 순간들을 되짚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 The Winstons - Amen, Brother(1969 / Metromedia)

태초에 드럼 앤 베이스라는 것을 존재하게끔 만든 곡이 있다. 미국 워싱턴의 소울 훵크 그룹 윈스턴스의 1969년도 곡 ‘Amen, Brother’ 중 1분 26초부터 7초 내외로 전개되는 드럼 브레익이 바로 그것이며 소위 ‘아멘 브레익’이라고 불린다. 

이는 드럼 앤 베이스를 포함해 가장 많이 샘플링된 곡으로 기록되기도 했는데, 대략 6000여곡에 샘플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골디의 음악들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 한상철 밴드 ‘불싸조’ 기타리스트


다수의 일간지 및 월간지, 인터넷 포털에 음악 및 영화 관련 글들을 기고하고 있다. 파스텔 뮤직에서 해외 업무를 담당했으며, 해외 라이센스 음반 해설지들을 작성해왔다. TBS eFM의 <on pulse="" the=""> 음악 작가, 그리고 SBS 파워 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록밴드 ‘불싸조’에서 기타를 연주한다. samsicke@hanmail.n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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