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술 뜨자, 절로 “워매, 뭐다냐?”…산중 매운탕집 국물맛의 비밀

정대하 기자 2024. 1. 1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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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광주 황룡강 푸른가든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광주의 맛집 목록을 따로 저장해 둘 정도로 미식가인 광주광역시청 공무원 ㅂ씨는 친한 지인에게만 ‘보물’을 소개한다. ‘그거 좀 귀띔해달라’고 몇번을 매달렸으나 묵직한 그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한나절 가까이 공을 들인 끝에 한곳을 소개받았다. 산중에 있는 매운탕 식당이었다. 옥호와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며 그가 덧붙였다. “섭섭해하지 마시요잉. 거그 소문나불믄 곤란헌께 그랬소.”

그가 ‘푸른가든’을 알게된 건 20여년 전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직후라고 했다. 20년 단골인 셈이다. 지난 연말 찾아간 임곡동 주변 마을엔 아직도 시골 고향같은 정취가 느껴졌다.

임곡동 앞 황룡강은 구불구불 실핏줄처럼 흘러 영산강으로 합류한다. 강을 따라 차를 몰고 용진산 쪽으로 들어갔더니 ‘사호동’ 경로당이 보였다. 실개천을 따라 올라가면 막다른 집이 푸른가든이다. 적색 벽돌로 지은 슬래브 건물에 푸른가든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점심시간 전인데도, 식당 주차장은 벌써 차들로 빼곡했다.

11월29일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 푸른가든 식당에 손님들이 들어서고 있다. 정대하 기자

어릴 적 강과 하천을 훑고 다니며 피리와 빠가사리께나 잡고 다녔던 터라 매운탕 맛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큰 기대는 솔직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투가리에 담긴 메기탕은 맛이 진하면서도 시원했다. 국물에 스민 된장과 다진 양념의 조합이 오묘했다. 배추 시래기(실가리)도 입에 착 달라붙었고, 메기의 살도 잘 부스러지지 않았다. “워매, 뭐다냐?” 광주의 웬만한 맛집들은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이자 착각이었다.

매운탕은 싱싱한 재료와 된장이 맛의 핵심이다. 푸른가든 바깥 주인 신인수(68) 사장은 젊은 시절 “맨손으로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나왔던 어신(漁神)”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로 섬 어부들이 저수지나 하천에서 잡은 메기와 빠가사리 등을 일주일 간격으로 공수받고 있다. 신안군은 매년 13개 섬 가운데 한 곳의 주민들에게 내수면 어업을 허가해준다. 바닷고기에 익숙한 섬 사람들은 민물고기를 섬 밖으로 낸다.

낚시로 낚아 올리면 가슴지느러미를 마찰시켜 ‘빠각빠각’ 소리를 낸다는 빠가사리는 표준말론 동자개로 불린다. 메기는 기름기가 많고 자칫하면 흙냄새가 나 호불호가 갈린다. 메기나 빠가사리가 냉동고에 들어가면 탕을 끓여도 흙냄새가 난다. 그래서 냉동한 물고기는 쓰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생물을 깔끔하게 손질해 기름지지 않게 한다. 안주인 양해림(65) 사장은 “냉장고에 안 넣고 바로 손질해서 탕을 끓인다. 싱싱한 것을 쓰니까 잡내가 없다”고 했다.

광주시 광산구 임곡동 푸른가든 주인 양해림씨. 정대하 기자

빠가사리나 메기 모두 몸이 실해야 한다. “쬐깐한(조그만) 것은 탕을 끓이면 투가리에 대가리만 굴러다”니기 때문이란다. 된장은 1년마다 콩 한 가마를 사 직접 담근다. 매운탕에 쓰는 된장은 2년 이상 발효된 것을 순차적으로 사용한다. 고추와 마늘, 생강을 갈아 넣은 ‘다대기’가 맛의 중심을 잡는다. 육수를 사용하지 않고 지하수 맹물로 탕을 끓이는 것도 양 사장의 비법이다. “우리 집 물이 좋아요. 수질검사를 해도 48개 항목에서 음용할 수 있다고 나와요. 이 물로 차를 끓여도 맛있고, 동치미를 해도 맛있어요.”

실가리도 직접 만든다. 다른 지역에선 무청 말린 것을 ‘시래기’(실가리)라 하고, 배추 잎 말린 것은 우거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전라도에선 둘 다 실가리다. 푸른가든은 식당 옆 밭에서 경종 배추를 직접 기른다. 경종 배추는 19세기 중반부터 조선에서 재배했던 토종 배추다. 토종 배추 잎을 말려 뜨거운 물에 데친다.

푸른가든 공동 운영자 남편 신인수씨. 정대하 기자

밑반찬은 7가지로 단순하면서도 정갈하다. 고춧잎 무침과 고추장아찌의 맛이 칼칼하다. 꼴뚜기 젓갈과 콩자반도 입맛을 돋운다. 빠가탕은 1만5천원, 메기탕은 1만2천원으로 가격도 착한 편이다. “1인분은 못 팔아요. 고기가 잘면 맛이 없지라. 4인분을 시키면 메기 2인분, 빠가 2인분을 섞어 요리하지요.”

쏘가리는 ‘민물고기의 왕’으로 불린다. 빠가사리나 메기보다 윗급이다. 살 맛이 돼지고기처럼 좋다고 수돈(水豚)이라 불린다. 쏘가리탕은 1인분에 2만5천원, 쏘가리회는 시가대로 받는다. “쏘가리는 요즘 잘 안나와요. 황룡강 수달들이 다 잡아먹어븐께. 그래서 단골들은 ‘쏘가리 나오면 전화 좀 해달라’고 해요.”

양 사장이 내는 음식 중 가장 비싼 품목은 자라탕(15만원)이다. 하지만 황룡강 주변에서 나오는 자라가 귀해 여름 한 철 10번 정도 ‘마니아’들한테만 연락한다.

푸른가든은 처음 8년은 월곡동에 있었다. 이후 지금 자리로 옮겨와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산중에 연 매운탕집엔 오랜 단골들이 꾸준히 찾는다. 30년 넘게 이 식당 단골인 김완수(69·광주시 광산구)씨는 한달에 2~3차례 찾는다. “여사장님 음식 솜씨가 끝내줘브러요. 매운탕 국물이 장난 아니랑께요. 다른 집선 요로코럼 찐한 국물이 안 나와요.” 산중 매운탕집엔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예약은 필수다.

아쉬운 점은 초행자들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도로명 주소(광산구 원사호길 118-20)를 입력하고 가다가도 “정말 이 길이 맞나?”하고 의심할 수 있다. 사호동 557번지를 쳐도 된다. 시내버스 90번 종점 마을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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