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인권위 직원들에게 ‘불출마’ 화풀이하나 [현장에서]

고경태 기자 2024. 1. 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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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상임위에서 ‘침해조사국장 따위…’ 발언
인권위 직원들, 무례와 폭언에 무감각해지나
지금 인권위 회의장이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
8일 오후 인권위 전원위원회를 앞두고 전원회의실에 김용원 상임위원이 입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따위’란 대상을 낮잡거나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나부랭이’가 있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은 11일 오전 새해 첫 상임위원회(상임위)에서 '침해조사국장 따위가…'라는 표현을 썼다. 이틀 전 열린 전원위에서 안성율 침해조사국장이 소위 의결정족수 조항에 관한 자신의 의견이 적힌 문서를 위원들 자리에 갖다놨다는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날 상임위에는 늘 그렇듯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뿐 아니라 사무총장, 각 국·과장은 물론 심의예정 안건과 관련된 직원들과 기자 등 방청객 60여명이 앉아있었다. 국회에 보고되는 회의록까지 작성되는 이런 공개적인 석상에서 대한민국 국가기구의 차관급 공직자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지만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국장 중 한 명을 질책하며 '따위'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용원 상임위원 옆과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국장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체의 동요나 술렁임도 없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또 ‘사무처 따위가…'라고 말했다. 송두환 위원장이 인권위 사무처 조직 중 하나인 행정법무담당관실에 회의운영 규정을 물어보고 법적 검토를 지시한다고 하자 튀어나온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여기서 ‘따위’는 개인 또는 특정 집단 전체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폭언이다. 차관급인 상임위원과 그보다 하급 공무원인 사무처 국·과장 및 직원들은 주인과 종의 관계인가.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해당 발언자에게 문제제기하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받아야 마땅하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바깥에 공론화해서라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다.

1월8일 오후 인권위 전원위원회를 앞두고 전원회의실에 앉아있는 김용원 상임위원 뒤로 이충상 상임위원이 입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상임위가 끝난 뒤 인권위의 한 간부에게 이에 관한 의견을 묻자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보다 심한 말도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이날은 김용원 상임위원이 4월 총선 출마를 할 경우 공직사퇴를 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하루 전 그는 언론을 통해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신 인권위 운영의 편향성 극복과 정상화라는 과제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날을 맞아 김 상임위원은 자신의 숙원인 금배지 도전을 포기한 데 따른 화풀이라도 하듯 더욱 독한 ‘빌런(악당) 놀이’를 즐기는 느낌이었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여기에 추임새를 적절하게 넣어주었다. 아래의 장면은 연극적이기까지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이 송두환 위원장에게) “사과를 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예요?”

(송두환 위원장이 김용원 상임위원에게) “지금 그게 이 회의장에서 인권위 상임위원이 할 태도입니까?”

(이충상 상임위원이 갑자기 끼어들며) “예. 태도입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완전히 똑같은 생각입니다.”

김 상임위원은 상임위가 시작하자마자 지난해 12월18일에 이 상임위원과 함께 보이콧을 선언하고 불참했던 12월21일과 28일 상임위에서 왜 위원장이 개회선언을 했냐고 따졌다. 의사 및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의결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개회선언과 폐회선언을 한 것은 위법이자 불법이라고 했다. 본인들이 상임위에 출석하지 않아 안건 처리를 못한 것에 대한 유감 표명은 전혀 없었고, 상임위원으로서 책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었다. 오직 “자신들이 빠졌는데 왜 개회선언을 했냐”면서 1시간 반을 흘려보냈다. 그것이 그에게는 ‘인권위 운영의 편향성 극복과 정상화’라는 과제였다.

이런 자리에서 '따위'라는 말로 호명되는 국장과 사무처 직원들의 선택은 침묵뿐이었다. 지난번 몇 차례 전원위와 상임위에서 발언했던 박진 사무총장은 두 상임위원으로부터 ‘주제넘은 난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즉각 퇴장하라는 호통을 들었고, 이에 응하지 않자 이후 이들의 회의 불참 빌미 중 하나로 활용됐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의 날카로운 고성이 울려 퍼지는 상임위 회의장 맨 끝자리에서 생각했다. 혹시 인권위 직원들은 두 상임위원의 무례와 언어폭력에 무심해지고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진정에 귀 기울이고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이들이 자신의 인권과 존엄성에는 무감각해진 게 아닐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인권위 회의장이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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