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인권위 직원들에게 ‘불출마’ 화풀이하나 [현장에서]
인권위 직원들, 무례와 폭언에 무감각해지나
지금 인권위 회의장이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
‘따위’란 대상을 낮잡거나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나부랭이’가 있다.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은 11일 오전 새해 첫 상임위원회(상임위)에서 '침해조사국장 따위가…'라는 표현을 썼다. 이틀 전 열린 전원위에서 안성율 침해조사국장이 소위 의결정족수 조항에 관한 자신의 의견이 적힌 문서를 위원들 자리에 갖다놨다는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날 상임위에는 늘 그렇듯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뿐 아니라 사무총장, 각 국·과장은 물론 심의예정 안건과 관련된 직원들과 기자 등 방청객 60여명이 앉아있었다. 국회에 보고되는 회의록까지 작성되는 이런 공개적인 석상에서 대한민국 국가기구의 차관급 공직자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지만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국장 중 한 명을 질책하며 '따위'라는 말을 쓴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용원 상임위원 옆과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국장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체의 동요나 술렁임도 없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또 ‘사무처 따위가…'라고 말했다. 송두환 위원장이 인권위 사무처 조직 중 하나인 행정법무담당관실에 회의운영 규정을 물어보고 법적 검토를 지시한다고 하자 튀어나온 말이었다.
상식적으로 여기서 ‘따위’는 개인 또는 특정 집단 전체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폭언이다. 차관급인 상임위원과 그보다 하급 공무원인 사무처 국·과장 및 직원들은 주인과 종의 관계인가.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해당 발언자에게 문제제기하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받아야 마땅하다. 사과를 거부한다면 바깥에 공론화해서라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다.
상임위가 끝난 뒤 인권위의 한 간부에게 이에 관한 의견을 묻자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그보다 심한 말도 많았던 것 같은데요?”
이날은 김용원 상임위원이 4월 총선 출마를 할 경우 공직사퇴를 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하루 전 그는 언론을 통해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신 인권위 운영의 편향성 극복과 정상화라는 과제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날을 맞아 김 상임위원은 자신의 숙원인 금배지 도전을 포기한 데 따른 화풀이라도 하듯 더욱 독한 ‘빌런(악당) 놀이’를 즐기는 느낌이었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여기에 추임새를 적절하게 넣어주었다. 아래의 장면은 연극적이기까지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이 송두환 위원장에게) “사과를 하실 거예요 안 하실 거예요?”
(송두환 위원장이 김용원 상임위원에게) “지금 그게 이 회의장에서 인권위 상임위원이 할 태도입니까?”
(이충상 상임위원이 갑자기 끼어들며) “예. 태도입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완전히 똑같은 생각입니다.”
김 상임위원은 상임위가 시작하자마자 지난해 12월18일에 이 상임위원과 함께 보이콧을 선언하고 불참했던 12월21일과 28일 상임위에서 왜 위원장이 개회선언을 했냐고 따졌다. 의사 및 의결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의결을 진행하지 않았지만 개회선언과 폐회선언을 한 것은 위법이자 불법이라고 했다. 본인들이 상임위에 출석하지 않아 안건 처리를 못한 것에 대한 유감 표명은 전혀 없었고, 상임위원으로서 책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없었다. 오직 “자신들이 빠졌는데 왜 개회선언을 했냐”면서 1시간 반을 흘려보냈다. 그것이 그에게는 ‘인권위 운영의 편향성 극복과 정상화’라는 과제였다.
이런 자리에서 '따위'라는 말로 호명되는 국장과 사무처 직원들의 선택은 침묵뿐이었다. 지난번 몇 차례 전원위와 상임위에서 발언했던 박진 사무총장은 두 상임위원으로부터 ‘주제넘은 난동’이라는 말을 들으며 즉각 퇴장하라는 호통을 들었고, 이에 응하지 않자 이후 이들의 회의 불참 빌미 중 하나로 활용됐다.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의 날카로운 고성이 울려 퍼지는 상임위 회의장 맨 끝자리에서 생각했다. 혹시 인권위 직원들은 두 상임위원의 무례와 언어폭력에 무심해지고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진정에 귀 기울이고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이들이 자신의 인권과 존엄성에는 무감각해진 게 아닐까. 설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인권위 회의장이야말로 인권의 사각지대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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