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로 바꿨어요”… 개식용금지법 통과에 현장은 ‘아수라장’

2024. 1. 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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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개식용 금지법’ 국회 본회의 통과 후폭풍
개농장 대부분 폐업 수순, 남은 개 처리 문제 여전
보신탕 거리 한숨, 전업·폐업 고민하는 가게 다수
육견 업계 “정당한 보상” 정부 “보상 고민 단계”
11일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 폐업한 개농장의 모습. 김용재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지난 9일 ‘개 식용 목적 사육·도살·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육견 농장·유통업계·식당 등 현장은 혼란에 빠져서 아수라장이다.

특별법 통과로 영업을 지속하는 육견 취급 업체는 2027년부터 모두 최대 징역 3년에 처하게 된다. 이제 육견 취급 업계와 정부는 보상 문제를, 식당은 업종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외신과 동물권 단체는 일제히 환영 의사를 보이고 있으나, 일부 시민의 인식 변화도 남은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12일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이하 위원회)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식용견 도축업체는 34곳, 유통업체는 219곳으로 파악된다. 또 식용견 사육농가는 1150여개, 관련 식당은 약 1600여개인 것으로 집계됐다.

11일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 개농장 외관. 김용재 기자
“돼지로 바꿨어요”…폐업한 개농장 주의 한숨

먼저 가장 큰 문제는 전국에 남아있는 개농장 폐업에 대한 보상과 남겨진 개들에 대한 처리 문제다. 특별법에 따르면 정부가 농장에 남은 개들을 보호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으나 90여만 마리에 달하는 개를 관리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수년 전에 동물 단체의 신고로 개농장에서 돼지농장으로 바꿨다는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의 개농장 주인 A씨는 “몇 년 전부터 계속 동물 단체에서 찾아와서 사업을 접지 않으면 폐업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하더라”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사업을 바로 바꿀 수 없어 돼지농장으로 바꿨으나, 이제 힘이 부쳐 사업을 접은 상태”라며 “개식용이 완전 금지되면 이제 모두 나처럼 사업을 접으라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일대에서 만난 주민 B씨는 “실제 이 근방에 예전엔 개농장이 많았으나 지금은 한 곳도 없다”라며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예견된 미래 같다”고 했다.

서울 청량리 경동시장 일대 보신탕 거리 간판. 보신탕 이름을 청테이프로 가리고 판매하고 있다. 김용재 기자
“뭘 어떻게 보상해 준다는 것인가”…보신탕 가게 주인 토로

개고기를 판매하는 식당 역시 고심이 깊다. 특별법에는 폐업·전업이 불가피한 업체가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으나 현장에서는 우려가 컸다.

서울 청량리 경동시장 인근의 보신탕 가게를 50년 동안 운영했다는 C씨는 “나라에서 접으라고 하니 이제는 장사를 접을 것”이라며 “강제로 장사도 못하게 됐는데 보상은 제대로 해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근 가게는 최근 ‘보신탕’ 옆에 ‘염소탕’ 간판을 내거는 등 전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 가게 주인 D씨는 “근방에 보신탕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이 수십 곳이었지만 지금은 제대로 운영하는 곳이 3~4곳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다들 힘들어하고 있다”라며 “나라에서 보상을 준다는데 대체 뭘 어떻게 보상해 준다는 건가”라며 말을 흐렸다.

실제로 이 골목은 한 때는 줄을 설 정도로 인기 있는 ‘보신탕’ 골목으로 유명했으나, 현재는 장사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드물었고 굳게 문을 닫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상인들은 ‘보신탕 거리’를 ‘흑염소 거리’ 또는 ‘삼계탕 거리’로 바꾸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보신탕을 판매하던 가게에서 흑염소탕으로 전업했다는 가게 홍보판. 김용재 기자
“개 한 마리당 200만원 보상” vs “보상안 고심 단계”

육견협회는 영업손실 명목으로 개 한 마리당 200만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위원회에서는 2022년 기준으로 전국에서 키우는 식용견은 52만 마리라고 추산했는데 이를 200만원으로 보상하면 1조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회장은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100만명에 달하는 육견 관련 모든 업자들이 사실상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셈”이라며 “전국에는 약 100만 마리의 이상의 육견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정부가 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개농장에 있는 개들은 대형견이 많아 국내 입양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보상안을 고민하면서 농장에 남아있는 개의 처리 방침을 고민하고 있다.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농장개의 보호를 고민하는 한편, 안락사를 지양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농장에 남은 개들의 경우 공공보호소에서 관리하고 최대한 안락사를 지양할 방침”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보상안은 고심하고 있는 단계다. 2월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지원 액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시는 시내 점주들의 업종 변환 지원을 목표로 개 식용 관련 소상공인 업종전환 및 폐업 지원을 위한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조례’ 시행에 나섰다. 서울시에서는 ▷메뉴 변경 및 영업환경 개선 지원 ▷업종전환 및 재창업 지원 ▷폐업 예정 사업자 지원 ▷무담보·저금리 금융지원 ▷상권 탈바꿈·활성화 지원 등 분야별 지원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신진시장 일대 마지막으로 남은 보신탕 가게. 김용재 기자
“86% 개고기 안 먹어” 응답…일부 시민 ‘반발’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법 통과에 환영을 표했다. 반려견을 키운다는 김 모(27) 씨는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정말 많은데, 이제는 개를 먹는 시대는 완전히 지나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부 박 모(47) 씨 역시 “개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개를 먹는 것은 꺼려진다”라며 “법이 완전히 통과됐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로 시민의식은 완전히 바뀌고 있는 흐름이다. 24년 전인 2000년 한국식품영양학회지에 실린 한 여론조사에서는 86.3%가 개 식용을 찬성했지만, 2023년 닐슨코리아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6%가 ‘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과도한 통제’라며 반대 의견을 갖는 시민도 있다. 보신탕 가게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먹을 것을 정부가 통제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라며 “법으로 금지해도 이 음식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어떻게 완전히 사라질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brunc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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