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당뇨 딸 키우던 일가족 비극 남 일 아냐...인슐린펌프 비싼 가격과 어려운 사용법 해결해야”

김명지 기자 2024. 1. 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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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당뇨병 관리체계의 선진화 방안’ 토론회
환자·가족, 경제·정신적 어려움 호소 “끝없는 터널…중증 질환으로 인정해야”
복지부 “문제 인지,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슐린이 필요한 중증 당뇨병 관리체계의 선진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김명지 기자

충남 태안의 한 부부가 제1형 당뇨(소아당뇨)병을 앓는 8살 딸을 살해하고 자신들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부부는 딸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1형 당뇨 환자 관리가 얼마나 어려운 지 관심이 커졌다. 소아당뇨는 내 몸이 인슐린을 전혀 분비하지 못하는 병이다. 의료 기술 발달로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주입기만 있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지만, 국내에서 정작 이런 기기를 제대로 알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의료계와 환자 단체는 입을 모았다.

◇ 정부, 제1형 당뇨병 인슐린 펌프 지원 확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슐린이 필요한 중증 당뇨병 관리체계의 선진화 방안’ 토론회에서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김재현 교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1형 당뇨병 환자 가운데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10.7%에 그쳤고, 연속혈당기와 연동되는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는 인구는 0.4%에 그쳤다.

제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아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질환이다. 비만 등으로 생기는 만성 질환인 제2형 당뇨병과는 아예 다르다.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해 흔히 ‘소아당뇨’라고 부르는데, 성인 당뇨병이 악화되거나 수술 등으로 인슐린이 전혀 분비되지 않는 경우도 여기 포함된다.

소아당뇨 환자는 고혈당 또는 저혈당 쇼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수시로 혈당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양의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 팔뚝에 패치를 붙이면 혈당을 측정해서 실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연속혈당측정기가 도입되기 전에는 매일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하고, 그에 맞춰 필요한 인슐린을 계산해 주입해야 했다.

과거엔 이 과정이 복잡해 지쳐서 포기하고 숨지는 경우도 많았다. 연속혈당측정기가 시판딘 것은 지난 2018년이다. 요즘엔 연속혈당측정기에 인슐린 주입기를 결합한 정밀 인슐린 자동주입기(인슐린펌프)까지 개발됐다. 패치에서 측정한 혈당을 자동으로 계산해서 필요한 만큼의 인슐린을 몸에 주입해 준다.

문제는 비싼 가격과 접근성이다. 국내 판매되는 인슐린 펌프 가운데 가장 저렴한 기본형은 260만원, 가장 비싼 제품은 550만원 정도다. 기기를 구입하더라도, 거기 쓰이는 혈당시험지, 채혈침, 주입바늘 등이 필요하다. 건보를 적용해도 이런 소모품에 쓰는 비용이 하루에 2500원, 한 달에 약 7만5000원이다.

정부는 올해 2월 말부터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제1형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 자동주입기 본인부담률을 기존 30%에서 10% 낮추고, 소모품 비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이번 조치로 5년에 최소 380만 원 이상 들던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45만 원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봤다. 기기에 쓰이던 치료비가 최소 88% 줄어든다는 얘기다.

정부가 19세 미만 제1형 당뇨 환자에 대한 인슐린펌프 지원을 대폭 확대한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제공

◇ “인슐린 펌프 작동법 어렵지만, 수가 없어 병원 교육 꺼려”

의료계와 환자단체는 정부 정책에 따른 부담 완화를 반기면서도 추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제1형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 펌프를 적극 사용할 수 있도록 초진 환자에게 지급되는 교육수가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는 방법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4시간 가량의 교육이 필요하고, 이런 교육을 의료진이 성의껏 제공할 수 있도록 비용을 책정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슐린 펌프 기기를 지급하고, 혼자 해보라면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기기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슐린 펌프 가격 지원만 하는 것은 환자를 수술할 재료비는 주면서, 의료진에 수술비는 안 주는 것과 같다”고 말했고, “교육 수가가 생기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1형당뇨 환자들이 2차 병원에서 관리를 받을 수 있는 체계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제1형 당뇨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전담해왔고, 그러다 보니 태안 가족처럼 의료 취약지에 있는 환자들은 사각지대에 몰렸다. 이 가족은 인근에 치료할 병원이 없어서 120㎞ 떨어진 병원을 다녀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형 당뇨 환자에 대한 교육 수가 등을 책정하고, 관리를 해 주면 상급종합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장은 태안 일가족 사건을 언급한 후 “저 역시도 자녀가 제1형 당뇨병으로 처음 진단받았을 때 극단적 선택이 떠올랐을 정도로 막막했다”고 말했다. 병원이 당뇨병 환자 교육에 드는 인력과 비용을 모두 부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정화 병원당뇨병교육간호사회 부회장은 “인슐린 장비를 쓰려면 인슐린에 대한 기본 이해는 물론이고,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같은 영양에 대한 교육부터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관리에 드는 비용이 ‘요양급여’가 아닌 ‘요양비’로 지원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요양급여는 병원에 지급하고, 요양비는 환자가 지출한 의료비를 사후에 청구해 환급받는 방식이다. 정부가 건보로 지원한다고 해도, 지원을 받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들이 만만찮을 것이란 뜻이다.

김 교수는 “인슐린 펌프는 위험도가 높은 ‘4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되는데, 환자가 바깥에서 기기를 구입하도록 하는 시스템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혈당관리기기에 대한 치료·관리 수가 체계가 마련돼 있고, 일본의 인슐린 펌프 사용자 수는 한국의 70배 이상이다.

정성훈 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당뇨 질환 관리에 대해서 정부는 지속 관심을 갖고 조치하고 있다”며 “당뇨 질환이 갖는 관리의 어려움이 있으니 이를 보험 제도 뿐 아니라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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