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응급실 180분···의료 AI로 숨은 '뇌경색' 잡았다[메디컬인사이드]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2024. 1.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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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훈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
뇌졸중 골든타임 ‘4.5시간’ 빠를수록 후유장애 적어
고대구로병원, AI 보조 MRI 판독 솔루션 현장 도입
“AI, 의사인력난 허덕이는 필수의료 붕괴 해법 될 것”
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제 입으로 감사 인사도 못할 뻔 했지 뭡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지체 없이 병원에 오신 게 제일 잘 하신 일입니다. 퇴원 이후에도 재발 위험에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병동에 입원해 있던 서경제(63·가명) 씨와 보호자가 회진을 돌던 한정훈 교수의 손을 잡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최근 들어 오른쪽 팔다리에 저린감을 느끼기 시작한 서씨.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탓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나흘 전 아내와 TV를 보며 대화하던 중 갑자기 발음이 어눌해졌고 오른 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밤이 늦었으니 다음날 병원에 가겠다며 버티던 서씨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새벽 1시가 다 되어서야 119를 통해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뇌졸중이 의심되거든요. 뇌졸중을 전문으로 보시는 선생님이 오고 계시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비롯한 일련의 검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입원 여부를 고심하는 사이 응급 콜을 받은 한 교수가 도착했다.

서씨의 뇌 MRI 검사 결과가 나란히 떠 있는 두 개의 모니터를 부지런히 살피던 한 교수의 시선이 멈췄다. 왼쪽 모니터 속 영상 만으로는 병변이 뚜렷하지 않았다. 뇌졸중 전문의가 아니라면 무심코 넘기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오른쪽 모니터 속 영상에는 빨간색 점이 선명하게 표시됐다. 고대구로병원이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의 인공지능(AI) 바우처 지원사업으로 도입해 현장에서 활용 중인 MRI 기반 뇌경색 진단 솔루션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한 교수는 “뇌간에 있는 연수 부위에 크기가 매우 작은 병변이 생기면 자칫 영상 결함(artifact)으로 치부하기 쉽다” 며 “환자에게 발현된 증상이 조금만 약했더라도 별다른 조치 없이 퇴원시켰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 3초에 1명씩 생긴다···환자 급증하는 뇌졸중, 73%가 영구장애 겪어

뇌졸중은 세계적으로 3초에 1명씩 환자가 발생하는 흔한 병이다. 국내에서도 매년 13만~15만 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뇌졸중으로 진료 받은 환자는 2018년 59만 1946명에서 2022년 63만 4177명으로 5년새 7.1% 늘었다. 70세 이상이 36만 2586명(57.1%)으로 과반을 차지하지만 60대도 17만 4109명(27.5%)이라 환자가 적지 않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해주는 혈관이 막혀 뇌조직이 괴사하는 뇌경색(허혈성 뇌졸중)과 뇌혈관이 터져 발생하는 뇌출혈로 나뉜다. 환자의 73%가 발병 후 영구장애가 남을 정도로 후유증 부담도 크다.

특히 뇌경색에서 골든타임은 후유장애와 직접 연관된다. 뇌경색의 골든타임은 정맥 내 혈전용해제 투약이 가능한 시간인 ‘증상 발생 후 4.5 시간 이내’. 병원을 방문해 검사와 약물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증상 발생 후 최소 3시간 이내 방문해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혈전용해제를 투약한 이후 큰 대뇌혈관이 막혀 있는 경우 동맥내 혈전제거술을 시행한다.

한 교수는 “동맥내 혈전제거술은 증상 발생 6시간 이내 받는 게 권장된다. 뇌경색 병변에 따라 증상 발생 24시간까지 시행하기도 한다”며 “뇌경색 발생 후 정맥내 혈전용해제를 투약하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발병 후 3개월째 혼자 생활할 수 있는 확률이 2배, 동맥내 혈전제거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면 발병 후 3개월째 좋은 예후를 가질 확률이 2.5 배나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 분초 다투는 뇌졸중 진단·치료에 AI 솔루션 도입···“골든타임 사수”

고대구로병원에서 동맥내 혈전제거술 같은 뇌신경 중재치료시술이 가능한 신경과 전문의는 한 교수를 포함해 3명이다. 서울 권역을 통틀어도 100명에 한참 못 미치다 보니 사흘이 멀다하고 ‘온콜(on-call·전화 대기)’ 당직을 선다. 초급성기 대응이 뇌졸중 환자의 삶을 좌우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의심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뇌졸중 전문의가 상주하는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방문해야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정훈 고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가 MRI 기반 뇌경색 진단 솔루션 활용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제공=고대구로병원

고대구로병원은 신경과와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재활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가 유기적 협력체계를 갖추고 한해 500명이 넘는 뇌경색 환자를 진료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 제이엘케이(322510)와 손잡고 전문가 수준의 AI 판독 결과가 원본 영상과 함께 제시되는 원스톱 솔루션을 개발해 임상 현장에 도입했다. 작년 10월 AI 의료 솔루션 최초로 건강보험 수가를 부여 받은 ‘JBS-01K’는 확산강조 MR 영상에서 뇌경색 의심 병변을 검출할 뿐 아니라 병변의 크기, 위치, 패턴을 분석해 뇌경색 발병 원인인 큰 혈관 뇌경색·심장색전증·작은 혈관 뇌경색에 대한 확률 값을 각각 전문가 수준으로 제시한다.

한 교수는 “영상을 찍고도 병변을 놓치거나 치료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허비되어서야 되겠느냐”며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 과정을 보조하는 AI 기술을 잘 활용하면 뇌졸중을 포함한 필수의료 붕괴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AI 있어도 병원 안 오면 소용 없어요” 뇌졸중 전문가 경고

6개월 남짓 AI 솔루션을 직접 활용해보니 응급 영상을 판독할 전문의가 부족한 야간, 주말은 물론이고 고질적인 의사 인력난에 허덕이는 지방의료원, 중소병원 등에서도 유용한 대체제가 될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물론 어디까지나 증상 발생 직후 환자가 병원을 방문했다는 전제에서다.

뇌졸중 의심 증상이 한 가지라도 나타나면 즉시 119 신고 후 뇌졸중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사진 제공=대한뇌졸중학회

대한뇌졸중학회는 뇌졸중 증상을 판달할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로 ‘이웃손발시선’을 제시한다. 이웃손발시선은 △이~하고 웃지 못하는 경우 △두 손을 앞으로 뻗지 못하거나 한쪽 팔, 다리에 힘이 더 없는 경우 △발음이 어눌해지거나 실어증 증상이 있는 경우 △시선이 한쪽으로 쏠리는 경우의 약자다. 그는 “뇌졸중 발생 후 3시간 이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는 10년째 30%에 못 미친다”며 “뇌졸중 의심 증상이 한 가지라도 나타나면 즉시 119 신고 후 뇌졸중센터를 방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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