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쌀소주에 입힌 참깨향…깔끔한 맛에 마음은 ‘연연’

박준하 기자 2024. 1. 1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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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답사기] (69) 경기 광주 ‘온증류소’
日서 발효공학 배우며 많은 주종 익혀
IT회사 은퇴후 증류소 차려 제품 선봬
국내 최초로 국산 참깨 활용한 ‘연연’
맴도는 고소한 향기·깔끔한 맛 일품
지역산 친환경쌀 사용 ‘형형’도 인기오크통 숙성한 신제품 출시할 예정
경기 광주 온증류소에서 정성을 다해 증류한 술. 왼쪽부터 참깨를 활용한 소주 ‘연연 25도’, 쌀소주 ‘형형 58도’ ‘형형 40도’. 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우리술시장이 나날이 커지면서 우리농산물을 다양하게 활용한 술이 많아지고 있다. 1400개에 달하는 양조장 가운데 눈에 띄기 위해서다. 경기 광주 온증류소는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내산 참깨를 활용한 소주 ‘연연(25도)’과 쌀소주 ‘형형(40·58도)’을 만들어 주목받고 있다. 오규섭 대표(56)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 대표는 전통주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의 꿈은 술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집안에선 의대를 가길 바랐다. 그는 의대 대신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선택, 일본 명문 대학인 오사카대학교에서 발효공학분야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유학 경험은 오 대표가 주류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오사카대학 발효공학과는 원래 양조공학과로 시작했을 만큼 주류 연구에 역사가 깊은 학교다. 하지만 졸업 이후 프로그래밍에 빠져 오랜 기간 IT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결국 은퇴하고 나서야 네이버·SK텔레콤 등 여러 대기업에서 임원을 지낸 조영환 공동 창업자(56)와 증류소를 차렸다. 온증류소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연구실엔 늘 술이 가득했어요. 교수님들 대다수가 술 빚는 집 자식들이었어요. 유학생 중에서 저만큼 술을 다양하게 마신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증류소를 낼 때도 이때 경험이 컸어요. 한국에 없는 술, 주류 강국인 일본과 경쟁이 되는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막걸리·약주·소주를 모두 내고 싶었던 오 대표는 시간이 갈수록 증류주로 마음을 굳혔다. 재고관리가 편하고 세가지 주종 가운데 한가지만 잘해내도 성공한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증류소 규모를 고려했을 때 대량생산이 어려워 가격대가 높은 프리미엄 소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온증류소에선 현재 두종류의 술을 만든다. 술 만들 때는 광주에서 나는 무농약 친환경쌀인 ‘참살이’를 사용한다. 쌀소주 ‘형형’은 도수 40·58도로 이뤄졌다. 술을 막 뽑았을 때는 바닐라향이 도드라진다. 이후 삼켰을 때 쌀의 그윽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숙성 기간이 길지 않은 편인데도 도수를 잊을 만큼 부드러운 소주다. ‘형형’은 고두밥을 지으려고 쌀알을 펼쳐놓은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형형한 별 무리를 닮은 데서 지은 이름이다.

독특한 건 ‘연연’이다. 쌀소주라는 점에선 ‘형형’과 비슷하지만, ‘연연’은 마지막에 참깨향을 입힌다. 증류 과정 중 마지막에 참깨를 넣은 ‘진바스켓(진이라는 증류주를 만들 때 쓰는 통)’을 거치면 쌀소주가 참깨향이라는 옷을 입는다. 이는 영국에서 많이 마시는 허브를 넣은 증류주인 진 만드는 법과 비슷하다. 참깨로 술을 만들면 기름이 많아 술 빚기가 어렵지만, 이렇게 향을 입히면 참깨의 고소한 향은 살리면서 술은 깔끔하게 나온다. ‘연연’은 술에 깨 향기 그림자만 연연하게 남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규섭 대표가 독일산 코테사 증류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평소에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술을 좋아해요. 온증류소의 소주도 마셨을 때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죠.”

이밖에도 오 대표는 독일 명품 증류기인 코테사의 상압 다단식 동증류기를 사용한다. 상압 다단식 증류기를 사용하면 향이 풍부할뿐더러 술이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술에 들어가는 발효제는 쌀로 수제 입국을 손수 띄워 향의 깊이를 남달리 했다. 병마개도 일본에서 수입한 돌려서 따는 ‘핑거세이버’를 사용해 손 다칠 위험을 줄였다. 증류소 이름처럼 술 한병에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또 이달 온증류소는 저도주도 출시할 계획이며, 향후 프렌치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오크통 소주도 내놓을 예정이다.

오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대답이 뜻밖이다. 먼저 한국에 있는 중식당에서 고량주와 겨뤄보고 싶다는 것. ‘형형 58도’를 출시한 것도 그런 목표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수출을 목표로 하는 건 좋은데,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중식당에서도 안 팔리는 술을 어떻게 수출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중식당에서 우리술이 팔린다면 시장성은 상상 이상입니다. 언젠가 ‘연연’과 ‘형형’이 그 자리를 차지하길 바랍니다.”

광주=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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