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어렵다고? 졸업이 더 어렵다”…‘건설사 워크아웃’ 잔혹사

서찬동 선임기자(bozzang@mk.co.kr) 2024. 1. 1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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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이후 워크아웃 건설사 보니
자산 매각·임직원 감원 안간힘 불구
조기졸업 힘들어…10년 걸리기도
결국 법정관리·파산·매각된 사례도
3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있다. 2023.1.3 [김호영기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확정된 가운데 앞으로 본격화될 회사 구조조정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워크아웃’은 말 그대로 기업구조개선의 첫 단추일 뿐이다. 채권단의 지원과 강도 높은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느냐에 탈피 여부가 달렸다.

11일 박상우 국토교통부장관은 “우려하는 건 특정회사 워크아웃이 트리거가 돼 업계 전반에 악영향이 도미노처럼 확산되는 것”이라며 “건설시장 전체가 어려움 빠지지 않게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공적보증을 충분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업계에 따르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워크아웃을 겪은 건설업체들은 대개 5~10년가량 구조조정 기간을 거치고 졸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드물게 1~2년내 조기 졸업한 경우는 모그룹의 금융 지원을 받은 일부 기업만 가능했다.

이수건설의 경우 2년 6개월만에 조기 졸업한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수건설은 주택사업을 주력으로 하던 중 무리한 PF(프로젝트파이낸싱)로 부채비율이 급증했다. 워크아웃 기간 보유 빌딩과 부동산 자산을 우선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어 국내 주택 중심에서 해외·토목사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특히 모그룹인 이수화학의 유동성 지원이 워크아웃을 탈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수화학은 이수건설에 대여금 1022억원을 주식으로 출자전환해 부채 부담을 낮추고, 800억원을 신규로 지원했다.

이처럼 모그룹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주택 전문업체들은 사주의 사재출연으로 ‘결의’를 보이는 것부터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이어 보유 자산과 사업장 매각, 인력 감축, 사업 구조 개편 등 자구노력 과정이 뒤따른다.

주택전문업체 동문건설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연매출 5000억원 안팎의 견실한 중견업체였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PF로 진행하던 경기도 평택의 아파트 사업이 중단됐다.

당시 채권단은 채권행사 유예기간을 2012년까지 3년간으로 정했다. 또 유동성 지원자금 494억원과 당시 진행하던 아파트 사업장에도 공사비 752억원을 지원했다.

이에 동문건설은 자구계획으로 임직원 급여삭감과 사무실 축소 등 비용 절감, 사주인 경재용 회장의 사재 출연 870억원, 골프장과 사업부지 매각, IT 자회사 매각 등을 추진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2년후인 2011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10년 만인 2019년 자력으로 워크아웃을 탈피했다.

이수·동문건설처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고 모두 졸업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 못하고 법정관리를 받거나 매각되는 사례가 오히려 일반적이다.

법정관리는 워크아웃을 자력으로 벗어나지 못한 업체 대상으로 법원이 지정한 제3자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는 것이다. 파산을 막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볼 수 있다.

풍림산업은 주택사업 비중이 80%에 달했던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사이판 리조트 매각과 임직원 감원 등 자구노력에도 2012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채권단이 자금 지급을 중단하며 기업 어음을 결제하지 못한 탓이다. 법정관리를 거쳐 1000명이 넘던 직원도 4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풍림 외에도 우림건설과 벽산건설, 임광토건, 중앙건설, 한일건설 등도 워크아웃 이후 회사 정상화에 실패한 사례들이다.

일부 업체는 알짜 사업장 매각과 감원을 거쳐 워크아웃을 벗어나도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경남기업은 2009년 워크아웃 당시 시공능력 17위의 대형 건설사였다. 채권단과 협의해 임직원을 17% 감축했고, 급여도 10% 삭감했다. 또 김포한강신도시 사업권(1574억원)과 마다가스카르 니켈광산 지분(643억원), 광주수완에너지 지분(1198억원) 등을 매각했다. 이같은 노력으로 차입금을 줄이고 부채비율도 줄여 2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여러 사건에 휘말리며 2015년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2년 후 SM그룹에 매각됐다.

‘신일유토빌’ 브랜드를 가진 신일건업은 이례적인 경우다. 2009년 워크아웃 돌입 한달여 만에 속전속결로 졸업해 당시 ‘워크아웃 졸업 1호’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PF 사업장이 많지 않았고, 진행중이던 남양주 별내지구 사업장은 제2금융권을 통해 600억원 규모의 PF자금을 조달했다. 대전의 주택사업용 택지는 계약해지해 1000억원을 마련했다. 대주주도 70억원 가량을 사재출연했다. 하지만 이전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2011년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결국 2015년 파산했다.

전문가들은 워크아웃 개시가 기업 회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워크아웃을 겪은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워크아웃 중에도 상황에 따라 채권단이 채권 회수에 나설 수 있다”며 “사업장을 매각하면 이후 수익을 내서 흑자전환이 쉽지 않고, 해외 사업 수주도 국내 신용이 낮아 어려움이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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