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팝니다…경동시장으로 간 스타벅스

박미향 기자 2024. 1. 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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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스타벅스 경동 1960’·‘금성전파사’
‘경동 1960’ 내부. 특이한 구조물과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재래시장과 스타벅스, 재래시장과 전시장. 이것들을 묶는다면 이질적인 공간들의 조합이 된다. 시너지효과가 날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지난해 12월 말 발걸음이 닿은 곳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 서울의 동쪽에 있어 ‘경동’이라고 불리게 된 시장이다. 1960년대 초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 일대에서 한약재를 팔러 청량리역 인근에 모인 상인들 때문에 형성된 시장이다. 그 이전에는 가구회사가 운영하던 목재소가 있던 자리다. 회사가 부도나면서 목재소 자리는 공터가 됐다. 그 자리에 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낡아만 갔다. 60살이 넘으면서 주름은 더 깊어지고 추레해져 갔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시장은 생기가 넘쳤다. 이유가 궁금했다. 해답은 3층에 있었다. 계단을 오르자 요상한 글자를 발견했다. 하얀 벽에 연인의 진한 문신처럼 까만 글자가 박혀있었다. ‘경동 1960 STARBUCKS 금성전파사 세로고침센터’. 스타벅스와 금성사(현 엘지전자) 로고도 함께였다. 맞은편 문에 화살표가 보였다. 그 문을 열자 영문도 모르는 복도가 이어졌고 그 끝에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상상도 못 한 넓은 공간이 문 너머에 펼쳐졌다. 초록색 넝쿨이 기둥에 감긴 채 서 있고,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구식 텔레비전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현대와 과거가 묘하게 중첩돼 보였다. 이곳은 2022년 12월 엘지전자가 문 연 전시장 겸 체험 공간 ‘금성전파사’다.

‘금성전파사’ 전시물. 박미향 기자
‘금성전파사’ 전시물. 박미향 기자

금성전파사 한쪽 벽에 작은 원형 창문 6개가 보였다. 열자마자 탄성이 절로 튀어나왔다. 803㎡(243평) 규모의 ‘스타벅스 경동 1960’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레 연상되는 스타벅스 매장과는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이 자리는 본래 극장 터다. 하지만 20여년 전 문 닫은 극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뼈대가 드러난 높은 천장, 계단식 좌석 등이 말이다.

컴컴하고 을씨년스러웠던 극장이 ‘별다방’으로 탈바꿈한 데는 상인연합회의 공이 컸다. 점포 수만 700개가 넘지만, 손님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 절망감이 컸던 경동시장 상인연합회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스타벅스에 입점을 제안한 것이다. 3년 전 일이다.

금성전파사가 들어선 그해에 스타벅스 ‘커뮤니티 스토어’ 5호점 ‘스타벅스 경동 1960’이 문을 열었다. 스타벅스는 극장 구조물을 살린 채 리모델링했다. ‘커뮤니티 스토어’는 스타벅스의 지역 상생 매장이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모든 품목은 개당 300원씩 시장 상생기금으로 적립된다. 금성전파사에서 판매하는 재생 플라스틱 ‘굿즈’ 수익금도 전액 경동시장 활성화 기금으로 쓰인다.

‘금성전파사’와 ‘경동 1960’이 연결된 문. 박미향 기자
‘경동 1960’ 실내. 극장식 구조다. 박미향 기자

상인연합회 김영백 회장은 “이 두 곳이 생기면서 젊은 층이 유입되고 있다. 시장이 점점 활기를 되찾아가 기쁘다. 기금은 대략 1억원 정도 모였는데, 노후화된 간판을 교체하고 주차장 페인트칠을 하는 등 시장 개보수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여개 가게가 모여 있는 청년몰도 활성화되고 있다. 동절기라서 닫았지만, 옥상 야시장도 인기가 많다”고 말한다. 봄이 되면 야시장은 다시 문 열 예정이다. 김 회장은 ‘뷰 맛집’이라고 자랑했다.

한때 ‘노인들의 홍대’로 불렸던 경동시장은 생뚱맞은 공간이 들어서면서 되레 재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붕어빵에 딸기잼을 넣은 것처럼, 인절미에 케첩을 뿌린 것처럼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공간들이 문화적으로 상호보완 작용하며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경동시장 야시장. 동절기는 문을 닫는다. 박미향 기자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한 경동시장. 박미향 기자

또 다른 인기 비결은 없을까.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대형 카페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파주 명물’로 꼽히는 ‘더티 트렁크’가 대표적이다. 2018년 12월 문 연 이 카페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조차 입소문을 타며 문전성시였다. 1300㎡가 넘는 커다란 공간에는 온통 ‘재미’거리가 넘쳐났다. ‘마시는 것’보다는 ‘보는 게’ 더 즐거운 카페가 된 것이다. 더티 트렁크 같은 대형 카페들이 한적한 곳에 하나둘 문 열기 시작했다. 심지어 논 한가운데 차린 카페도 있었다. 카페 마니아들은 작정하고 이 카페들에 가 셔터를 누르고 에스엔에스에 인증샷을 남겼다. 수백개의 ‘좋아요’와 함께 어김없이 ‘여기가 어디냐?’는 댓글이 달렸다. 자칭 ‘동양 최대 카페’라고 자부하는 부산 ‘핫플’ 카페 피아크도 총면적이 1만693㎡이다. 지하 1층 지상 6층 규모다. 지금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다. 무주에 있는 창고형 대형 카페 ‘무주창고’도 찾는 이가 끊이질 않는다. ‘하우스소서’(경북 성주군), 랜드스케이프(경북 청도), 카페 밀마(경기도 화성) 등도 규모가 크다. 대형 카페가 늘기 시작하자 건축가들이 설계한 카페도 생겨났다. 남양주에 있는 ‘아유 스페이스’는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이다.

‘에스엔에스 감성’ 충만한 이들 카페는 랜선상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한다. 공간 자체가 소비의 대상이자 여행지가 된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스토리까지 입혀진다면 금상첨화다. 본래 쌀 창고(‘무주창고’)라든가, 누에 꼬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냈던 잠사공장(무주 카페 ‘전북제사 1970’)이라든가 하는 역사성 말이다. ‘스타벅스 경동 1960’도 60년 넘은 시장과 문 닫은 극장의 낭만이 오롯이 새겨진 카페다. 이제 카페는 공간을 파는 문화콘텐츠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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