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얼음이 맛없는 이유 [김지호의 위스키디아]

김지호 기자 2024. 1. 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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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주위에 위스키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입맛은 제각각이고 위스키 종류는 수천 가지. 본인의 취향만 알아도 선택지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주정뱅이들과 떠들었던 위스키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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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볼이나 칵테일에서 얼음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얼음 크기나 모양에 따라 제조된 음료의 맛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텐더들은 음료 온도부터 얼음이 희석되는 농도까지 계산해서 최종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이 중에서 한 가지만 잘못돼도 맛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술맛을 버리게 됩니다.

◇천천히 녹는 얼음의 비밀

몰트 바에서 사용하는 얼음(왼쪽)과 집에서 직접 얼린 얼음 모습. /김지호 기자

집에서 얼린 얼음은 유난히 뿌옇고 빨리 녹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혹시 불순물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반면 몰트 바에서 제공하는 얼음은 투명하고 단단해서 쉽사리 녹지도 않습니다. 이는 기분 탓이 아닙니다. 얼음이라고 다 똑같지 않습니다. 어떻게 얼리느냐에 따라 녹는 속도와 강도가 달라집니다.

몰트 바 얼음과 가정용 얼음은 얼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바의 경우 천천히 얼립니다. 가정에서 얼리는 얼음보다 높은 온도에서 얼린다는 뜻이지요. 가정용 냉장고의 경우 -18℃에서 급속으로 얼리는 반면, 바에서는 물이 어는점(0℃)에 최대한 가까운 온도로 48시간 이상 오래 얼립니다.

급속으로 만들어지는 얼음은 분자구조가 불안정하고 기포와 틈이 발생해 약하고 빨리 녹습니다. 일반적으로 얼음은 표면부터 얼기 때문에 공기가 가운데로 몰려 기포의 흔적이 남습니다. 얼음이 불투명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천천히 얼리는 얼음의 경우 공기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이탈 시간이 충분하므로 투명하고 깨끗한 얼음이 만들어집니다. 즉 바에서 판매하는 것 같은 얼음을 집에서 만들고 싶다면 얼리는 온도를 조절해야 합니다.

둥글게 카빙된 얼음이 음료에 닿는 면적이 좁아서 천천히 녹습니다. /icepro

얼음은 모양에 따라 녹는 속도도 달라집니다. 음료와 얼음이 닿는 표면적이 넓을수록 얼음은 빨리 녹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각진 얼음보다는 최대한 모서리 없이 둥글게 카빙된 얼음이 음료에 닿는 면적이 좁아서 천천히 녹습니다. 크고 단단한 얼음일수록 음료 본연의 맛이 유지될 수 있는 셈입니다. 대화 몇 마디에 밍밍해진 음료처럼 비참한 상황은 없을 것입니다.

가끔 얼음의 중요성을 놓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얼음의 존재가 익숙해졌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얼음이 이렇게 흔하지는 않았습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된 얼음, 그 시작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얼음왕 튜더의 탄생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은 알프스에 쌓인 눈에 우유나 꿀을 섞어 마셨고, 로마제국 네로황제는 만년설에 포도주를 차갑게 해서 마셨습니다. 그가 눈을 공수해 오는 군인들에게 “로마에 도착하기 전 눈이 녹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기원전 400년경 페르시아인들은 ‘야크찰’이라 불리는 얼음집을 만들고 식품이나 음료 등을 보관했습니다. 오스만제국 궁중에서는 귀족이나 술탄 정도 되는 사람들이 얼음을 먹었고, 17세기에는 이탈리아 부유층이 즐겨 먹는 아이스크림의 시초인 셔벗으로 발전합니다. 18세기까지 얼음은 귀족들만 즐길 수 있던 사치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얼음왕’이라 불리는 프레더릭 튜더가 나타나면서 세상은 바뀝니다.

1925년, 미국 북동부 메인주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인부들 모습. /KEYSTONE VIEW COMPANY

1806년, 23세의 프레더릭 튜더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연못에서 거대한 얼음을 잘라다 배에 싣고, 찜통더위로 가득한 카리브해에 진입합니다. 평생 얼음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얼음을 팔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얼음 창고가 있을 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튜더는 여름에 얼음을 동동 띄운 음료의 매력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릴 셈이던 것이죠. 의도는 좋았습니다. 그는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섬에 있는 바텐더들에게 얼음을 나눠주기로 결심합니다. 더운 날 시원한 음료를 한 번이라도 마셔 본 사람은 두 번 다시 따뜻한 음료를 마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카리브해까지 거리는 2400km. 아무리 빨라도 배로 3주는 걸렸을 것입니다. 첫 번째 수송선의 얼음은 대부분 녹아 없어지면서 본전도 못 찾고 끝납니다. 게다가 난생처음 얼음을 받아본 현지인들의 무관심도 실패에 한몫합니다. 이후 쿠바로 보낸 수송선도 연이어 실패로 끝나면서 1812년까지 파산과 채무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감옥 생활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튜더의 뚝심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튜더는 효율적인 방식을 찾으려 끊임없이 도전했고 쿠바에 정기적으로 얼음을 납품하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톱밥으로 얼음의 단열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된 항해술로 운송 시간을 단축합니다. 그 후 1830년 인도 캘커타에 얼음을 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돈방석에 앉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캘커타까지의 거리는 26000km로 배로 4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인도로 가는 그의 첫 수송선에는 얼음 약 180톤이 실렸습니다. 항해 중에 80톤이 녹았지만, 나머지 100톤만 팔아도 충분한 수익이 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튜더와 인도 간의 긴밀한 거래는 20년 동안 지속됩니다.

튜더는 1856년까지 유럽과 인도 등 전 세계 43국에 얼음 창고를 깔고 연간 500만 톤이넘는 천연빙을 팔아 ‘얼음왕’으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얼음 장사는 19세기 후반을 정점으로 꺾이기 시작합니다. 냉장고가 발명되었기 때문이죠.

◇냉장 기술의 발달

최초의 인공 얼음은 스코틀랜드의 의사이자 화학자인 윌리엄 컬런(William Cullen) 교수가 시연했습니다. 그는 1748년 땀이 마르면 피부가 열을 빼앗기면서 시원해진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냉각 효과를 본 것이지요. 하지만 이는 당시 실험에 그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가정용 냉장고는 1913년 미국인 프레드 울프(Fred W. Wolf)가 탄생시키고 1918년에 캘비네이터사 제품이 보급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집니다. 하지만 초창기 냉장고 가격은 500에서 1000달러 사이. 일반 가정에서 쓰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1925년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생산한 ‘모니터 톱’ 냉장고가 실질적인 대중화를 이끌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인부들 모습. 1957년 /국가기록원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1950년대 후반까지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서빙고동’과 ‘동빙고동’은 조선 시대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국내에서는 1965년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첫 국산 냉장고를 개발했습니다.

우리가 손쉽게 마시는 음료 속 얼음에는 한 청년의 황당한 아이디어와 수많은 우연이 농축된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더 이상 목숨 걸고 알프스 봉우리에서 만년설을 찾을 필요도 없고 호수에서 얼음을 깨 올 일도 없습니다. 한때 왕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 이제는 전 세계인의 필수품이 된 것이지요. 덕분에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칵테일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요. 다음 잔은 얼음왕을 위해 건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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