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객했다고, 남자들과 싸웠다고 가둬…‘여성수용시설’ 인권침해 첫 확인

고경태 기자 2024. 1. 1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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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 70~80년대 여성수용시설 진실규명
1995년 경기여자기술학원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창문의 쇠창살과 출입문을 밖에서 잠가 빠져나오지 못해 원생 37명이 숨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도망치다 잡힌 원생을 수위가 운동장에서 때렸다. 맞을 때마다 비명이 끔찍했다. 경비복을 입은 수위가 몽둥이를 소지하고 마치 교도소처럼 초소에 올라 망을 보았다. 경비가 큰 개를 데리고 다니며 ‘도망치면 죽는다’거나 ‘개가 물어 죽인다’고 협박하였다.”(홍OO)

“서울동부여자기술원의 징계방에 들어갔었다. 징계방은 창문이 작아 없다시피 하고 화장실도 없었다. 나에게 똥통을 주고 용변을 거기에 보라고 했다. 똥통에서 냄새가 지독했는데 밥도 그 옆에서 먹으라고 했다. 감옥보다 더 했다.”(최OO)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이곳은 1970~80년대 설치된 ‘여성수용시설’이다. “윤락(성매매) 방지 및 요보호여자 선도를 목적”으로 설치된 시설에 강제로 수용돼 폭력에 방치된 여성 피해자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인권침해 확인을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9일 오후 열린 제70차 전체위원회에서 ‘서울동부여자기술원 등 여성수용시설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이같이 의결하고 “국가(보건복지부,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평택시)는 이 사건 진실규명 대상자에게 사과와 함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신청인 김아무개씨 등 피해자 11명이 1975~1985년경까지 공무원들의 자의적 판단으로 ‘요보호여자’로 간주돼 다양한 여성수용시설에 강제 수용됐고, 감금된 채 폭행을 당하고 적절한 식량과 의료서비스 등을 받지 못하는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판단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김씨 등은 16살 때쯤 포주에 팔려갔다가 감금돼 있다가, 식당에서 호객 행위를 하다, 거리에서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납치돼, 미군과 결혼준비 중 보건소로 끌려갔다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길에서 추근대던 남자들과 말다툼하다 경찰 단속으로 이런 시설에 수용됐다고 한다.

여성수용시설은 기숙사 출입문을 일과 시간 외에는 잠그고 창문마다 쇠창살을 달았다. 경기여자기술학원의 창문. ‘SBS 그것이알고싶다’의 1993년 4월11일 방송 화면. 진실화해위 제공

정부는 5.16 군사정변 직후 ‘사회악 일소’의 하나로 1961년 11월 윤락행위등 방지법을 제정했다. 윤락행위등 방지법은 윤락여성과 성행으로 보아 윤락행위를 하게 될 현저한 우려가 있는 여자를 ‘요보호여자’라고 정의하고, 단속 대상으로 규정했다. 아울러 이들을 선도 보호하기 위한 보호지도소와 갱생자립을 위한 직업보도시설을 설치한다고 규정했다. 이후 보호지도소와 직업보도시설이 함께 있는 여성수용시설이 전국에 설치됐다.

1962년에만 전국 시·도에 설치된 여성수용시설 17곳에 885명이 수용됐다. 여성수용시설에서는 수용된 여성을 대상으로 미용·양재·봉재·자수 등의 기술을 가르쳤고, 예산 전액을 국가가 지원했다.

이중 신청인들이 수용된 시설은 서울특별시립동부여자기술원, 양주군여자기술학원, 동두천시여자기술학원, 평택군여자기술양성원, 의정부부녀복지원, 협성여자기술양성원 등 총 6곳이다. 1962년부터 1987년까지 직업보도시설의 입소 현황을 보면, 매해 전국에 20~30곳이 설치돼 최소 2798명에서 최대 1만3366명까지 수용했다.

윤락행위등 방지법은 1961년 제정된 이래 한차례 개정도 없이 1995년까지 이어졌다. 1980년대 후반부터 여성수용시설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여 인권침해가 발생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1995년 1월 윤락행위등 방지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1998년 모든 여성수용시설은 폐쇄됐다.

사법부는 이미 이런 강제 보호수용이 위법하다고 판결내린 바 있다. 1994년 서울고등법원은 경찰에 적발돼 시립여자기술원에 보호수용된 임아무개씨가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강제수용 보호처분 효력정지 신청 사건에서 “윤락여성에 대한 보호수용은 영장에 의한 구속이나 재판에 의한 형벌이 아닌 행정기관의 복지처분에 불과하다”며 “기술원측이 법률이나 시행령이 아닌 자체 운영규정에 근거해 윤락녀들에 대한 입·퇴소를 결정하고 면회를 제한하는 것은 위법행위로 보여진다”고 강제수용을 위법이라고 결정했다.

서울특별시립여자기술원(구 서울동부여자기술원) 모습. 여성수용시설들은 원생들의 탈출을 방지하기 위해 높은 담을 설치하고, 담 위에 가시 철조망을 달았으며 일부 시설은 초소를 두기도 하였다. ‘SBS 그것이알고싶다’ 1993년 4월11일 방송 화면. 진실화해위 제공

1998년 대법원도 원고 이아무개씨가 1992년 9월경 경찰로부터 사건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이후 요보호여자에 해당된다면서 경찰서 보호실에 유치되었다가 시립여자기술원에 신병이 인계된 일과 관련한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김씨 등이 수용됐던 서울동부여자기술원 등 각 여성 수용시설들은 내부 규정에 따라 6개월에서 1년간으로 수용기간을 정했지만, 대부분의 여성수용시설은 결혼 등의 사유가 있지 않는 한 자의적 중도 퇴소가 불가능했다. 원생들의 도망을 막기 위해 높은 담과 가시 철조망, 기숙사 등지의 창문에 쇠창살을 달고, 일과시간 이후에는 외부에서 출입문을 잠그고, 초소까지 설치할 정도로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했다. 이로 인해 1995년 경기여자기술학원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원생들이 창문의 쇠창살과 출입문을 밖에서 잠가 빠져나오지 못해 원생 37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의 직업보도시설에서는 매년 최소 41명에서 최대 609명 등 도주자가 끊이지 않았는데, 의정부부녀복지원은 수용인원 65명중 47명이 탈출하기도 했다. 서울동부여자기술원은 도주에 60일, 도둑질에 30일, 허위진술자 30일, 폭행 50일, 중대한 모의 60일, 흡연 20일, 난동 60일, 불복종 30일, 기타 규율 위반 10일 등의 기준으로 수용 기간을 연장했다.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게 나았던 셈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당시 지역별 여성수용시설 현황은 다음과 같다.

<서울> 서울특별시립부녀보호소(1961), 서울특별시립부녀보호지도(1963~1974), 행복원(1969), 서울특별시립여자기술원(1972), 서울특별시립동부부녀보호지도소(1974), 서울특별시립동부여자기술원(1975), 서울특별시립여자기술원(1985~1994), 은성직업기술원(1961~1970년대), 구세군여자관(1961-1970년대)

<경기> 국립서울부녀보호지도소(1961), 경기도립부녀보호지도소(1962), 경기여자기술학원(1966~1995), 파주군립부녀직업보도소(1964), 파주여자기술양성원(1969~?), 양주여자기술학원(1972), 양주군 자동차 기술학원(1971), 동두천시여자기술학원(1981), 경기여자기술학원동두천분원(1984?~1993), 평택여자기술양성원(1974~1983), 의정부부녀복지원(1981~1988)

<인천> 협성여자기술교도원(1962), 협성여자기술양성원(1968~1998)

<부산> 갱생원(1954), 부산 자매원(1958), 부산 부녀복지관(1979~?), 구세군신애관(1963~?), 부산부녀직업보도소(1962~1978)

<대구> 동회료(1962), 가톨릭여자기술학원(1962), 가톨릭여자기술원(1989~1995)

<경북> 천생기술학원(1971~1982)

<전북> 전주시립부녀직업보도소(1962~1974), 착한목자수녀회(?~1976), 전북성애원(1964~?)

<전남> 광주계명여사(1962), 광주계명여성복지관(1983~?), 목포시립부녀직업보도소(1968~1980), 여수부녀자직업보도소(1969~?)

<충북> 부녀보호지도소(1963~?)

<강원> 춘천시립종합여자기술학원(1964~1994?), 원주시 부녀직업보도소(1963~1975)

<충남> 부녀보호지도소(1962), 여자기술원(1980~?), 일맥자매원(1984~?)

<제주> 제주부녀보호지도소(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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