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맨발로 겨울 땅을 밟으며

차영은 플로리스트 2024. 1. 1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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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은 플로리스트

숲에서 만다라 작업을 했다. 햇빛이 비치는 아늑한 터에 내가 기댈 수 있는 듬직한 몸을 가진 나무 아래서였다.

나는 가방을 열어 돌과 나뭇잎 솔방울, 그리고 열매들이 가득한 상자를 꺼냈다. 지난 한 해 동안 산에 오를 때마다 모은 숲의 조각들이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은 색이 바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꺼내어 둥근 원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다라는 티베트 밀교에서 깊은 깨달음의 경지를 상징이 담긴 그림이나 모래로 표현하는 관상의 대상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원을 나타내며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만다라를 만드는 과정은 수행을 위한 방편이었으나 현대에는 미술치료 작업으로도 의미 있게 사용되고 있는데 처음으로 심리 치료적 효과를 제안했던 사람이 융이다. 둥근 원 안에 반복적인 패턴으로 그리기도 하고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듯 종이와 물감을 사용할 수도 있고 흙 꽃 과자 모래 구슬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작업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이완과 스트레스 해소를 경험하고 집중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오래전 미술치료에 대한 공부를 하며 만다라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운 뒤 종종 나만의 만다라를 만들곤 했다. 일기를 쓰듯 노트에 그리기도 하지만 꽃 작업을 하고 나면 마른 꽃들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그때마다 색깔별로 꽃잎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사용했다. 그동안 꽃으로부터 받은 에너지에 대한 마지막 작별의 인사이자 감사의 마음을 나의 무의식을 통해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모래로 그리는 만다라처럼 완성된 뒤에는 즉시 공(空)의 상태로 돌아가게 했으므로 주로 사진을 찍어 기록했다.

겨울 숲에서 만든 만다라는 좀 더 특별했다. 자연의 조각들을 원래 있던 제자리로 돌려보내 주며 무엇보다 내 존재가 만다라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진정한 내 자신을 실현해 가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원의 테두리를 꼼꼼히 장식하고 중심을 비워두었다. 모아둔 재료들을 모두 사용한 뒤 마지막으로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 만다라를 완성하기 위해 둥근 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옷으로 덮여있던 맨살이 땅과 접속하자 살아있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를 억압하고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이것은 생존에 대한 안전함과 육체적 건강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뿌리 차크라를 위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동안 나와 동일시 해오던 것들과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들에 대한 통찰을 지나 타인에게 투사해 오던 것들을 흘려보냈다. 만다라를 만들다 보면 스스로 내면을 탐구하고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겨울 숲에서 맨발로 만다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내가 더욱 나답게 살아갈 앞으로의 삶에 대한 메타노이아였다. 인생을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전환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무의식 탐구에 오랜 시간 연구를 한 융은 이러한 활동을 개별화의 과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무의식이 반영된 만다라를 완성해 가는 것을 통해 의식이 확장되고 자기만의 고유한 특성을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소나무의 씨앗은 이미 소나무가 되기 위한 전체를 포함하고 있고 진짜 소나무가 되기 위한 자기실현에만 집중한다. 이렇듯 사람 또한 본연의 가치와 생의 의미를 실현하며 살아가기 위한 것이 개별화의 과정이며 이것은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의식할 때 시작된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만의 만다라를 만들 수 있다.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안을 떠오르는 대로 그리거나 채워나가 보자. 만다라의 진정한 의미는 완성되기까지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을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자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이다.


겨울 숲에 가거든 맨발로 겨울 땅도 밟아 보자. 봄에 탄생할 생명이 덮인 곳에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리 삶의 가능성을 끌어당기고 자기답게 살아갈 용기를 내어보자.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부터 지구의 일부로 충만히 누리며 살게 할 지혜도 배우리라. 겨울 숲에서 만드는 만다라를 통해 배우게 될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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