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수능 나온 일타강사 영어 지문, EBS 수능교재 초안에도 실려

교육부, EBS 등과 사교육 카르텔 점검 회의

재작년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23번 문제(왼쪽 사진)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입시학원 유명 강사의 모의고사 문제.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2020년 저서인 '투 머치 인포메이션'에서 같은 구절이 쓰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유명 입시학원 강사의 사설 모의고사 지문이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문항뿐 아니라 같은 해 EBS 수능 교재의 초안(감수본)에도 실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해당 지문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감수 과정에서 수능에 출제됐다는 이유로 교재 최종본에서는 빠졌다고 한다. 해당 강사가 학원 수강생에게 제공한 문제 속 지문이 수능과 EBS 교재 모두에 실린 정황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선 사교육 카르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9일 교육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재작년 입시업체 강사가 만든 영어 모의고사 지문이 그해 11월 시행된 수능 영어 23번 문항과 같은 해 문제 수집 및 감수 과정에 있던 EBS 수능 연계 교재 감수본에 포함된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지문이 정확히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EBS 교재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출판 전 막바지 단계인 평가원 감수에서 수능과 중복된 지문이라는 이유로 최종본에서 빠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재는 이듬해인 지난해 초 시중에 나왔다. EBS 관계자는 본보 통화에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만 답했다.

논란의 지문은 미국 하버드대 캐스 선스타인 교수의 2020년 저서 '투 머치 인포메이션'(Too Much Information)에서 따왔다. 2023학년도 수능 직후 수험생 커뮤니티에선 영어 23번 문항의 지문이 사설 모의고사 지문과 마지막 한 문장을 빼고 똑같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학원에서 문제를 미리 풀어본 학생에게 유리하다고 문제 삼은 것이다.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에는 이 문항과 관련한 이의신청이 100여 건 접수됐지만, 평가원은 문제 유형이 다르고 출제 오류가 없다는 이유로 심사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부는 수능이 시행된 지 8개월이 경과한 지난해 7월 이 의혹을 수사해달라고 경찰에 의뢰했다.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집중 신고 기간에 해당 강사가 현직 교사 4명과 문항 거래를 한 정황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는데, 문제의 수능 문항도 이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어 보충적으로 수사의뢰를 했다는 게 교육부 설명이다. 교육부는 다만 재작년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교사와 해당 강사의 유착 정황이 확인된 건 아니라고 했다. 유착 의혹을 받는 교사들은 그해 수능 출제위원이 아니었다. 경찰은 감사원 감사가 끝나는 대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이날 EBS와 평가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사교육 카르텔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EBS 수능 연계 교재 집필 과정이나 수능·모의평가 출제 및 이의신청 과정 전반을 점검해 사교육 유착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