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 감독으로 월드컵 제패… 베켄바워, 하늘 구장에 오르다

이준호 기자 2024. 1. 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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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별이 졌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1974 서독월드컵에 서독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 리베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1984년 서독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고 1986 멕시코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1990 이탈리아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마리우 자갈루(브라질)에 이어 사상 2번째로 선수, 감독으로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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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 ~ 2024…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별세
1974년 서독월드컵 우승 주역
1990년 감독땐 伊월드컵 우승
공격에 적극 가담 리베로 원조
‘발롱도르’ 2회… 카이저로 불려
“獨은 물론 전세계의 축구 전설”

또 하나의 별이 졌다. 프란츠 베켄바워 바이에른 뮌헨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9일(한국시간) 독일 dpa통신,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전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유족은 “평화롭게 운명했다”고 전했으며,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45년 9월 11일 태어난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축구사에 길이 남을 발자취를 남겼다. 리베로라는 혁신적인 개념의 창시자이고 선수, 감독으로 월드컵을 제패했으며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1974 서독월드컵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프란츠 베켄바워(독일). AP 연합뉴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축구선수 최고의 영예인 발롱도르를 2차례 수상했고, ‘카이저(황제)’로 불렸다. 그리고 ‘원조 리베로’다. 리베로는 수비수 중 가장 뒤쪽을 방어하면서도 공격에 적극 가담하는 포지션을 뜻한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1974 서독월드컵에 서독대표팀의 주장으로 출전, 리베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서독대표로 1977년까지 103경기에 출장, 14골을 터트렸다. 1972년엔 서독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정상으로 견인했다. 그리고 1977년 미국프로축구 코스모스 뉴욕에서 브라질의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뛰었고, 1982년에는 독일로 복귀해 함부르크 SV에 분데스리가 우승컵을 안겼다.

지도자로 변신한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1984년 서독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고 1986 멕시코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1990 이탈리아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마리우 자갈루(브라질)에 이어 사상 2번째로 선수, 감독으로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2003년 월드컵 트로피를 함께 안고 포즈를 취한 베켄바워와 펠레(브라질). AP 연합뉴스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1994년 분데스리가의 명문구단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으로 부임, 행정가로 변신했다. 2002년까지 회장, 이후 명예회장을 맡아 뮌헨의 흑자 구조를 설계했다. 2006 독일월드컵을 유치에 앞장섰고 조직위원장을 지냈다.

하지만 독일월드컵 유치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으로 독일축구협회(DFB), 스위스 검찰의 수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재판을 받기는 했으나 2020년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되지 않았다.

축구계와 팬들은 베켄바워 명예회장을 추모하고 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베켄바워 명예회장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의 축구 전설”이라면서 “그는 위대한 인간이었고, 영원히 그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준호 선임기자 jh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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