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은 자기 책임" 해외선 시설물 대신 자연 그대로

서현우 2024. 1. 9. 07: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등산안전시설물 논란] (2) 현황&외국의 경우
한국은 탐방로 안전시설 수요 높아...“시민 안전 위해 설치 불가피”
도봉산에 설치된 안전난간을 따라 한 등산객이 내려서고 있다. 한국 산에는 굳이 없어도 되는 곳까지 안전난간이 과하게 설치돼 있다는 의견이 있다.

'북한산 백운대, 용궐산 하늘길, 월악산 영봉, 문경 천주산, 사량도 지리산….'

이들의 공통점은 정상으로 가는 길에 많은 등산안전시설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무로 만든 계단, 데크, 철난간이나 사다리 등이다. 사실 산행지로 이름난 산들 중에서 이런 시설물이 하나도 설치돼 있지 않은 산은 극히 드물다.

안전시설물들은 분명 등산객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시설물들이 대부분 바위에 구멍을 뚫고, 철심을 박아 세운 탓에 영구적인 환경 훼손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대부분 험준한 암릉 지형을 덮듯이 설치하기 때문에 자연경관을 해치기도 한다. 유독 한국에서만 이러한 시설물이 많다는 시선도 있다.

산꾼들도 의견이 갈린다. 자연은 그대로 두고 자기능력으로 산을 올라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연 평균 산악사고 구조가 1만여 건에 달하는 상황에 안전시설물이 꼭 필요하다고 보기도 한다. 등산안전시설물에 대한 현황과 현장의 목소리, 해외사례를 살펴본다.

소백산 제1연화봉의 1999년
소백산 제1연화봉의 2023년

국립공원 탐방로 10%가 시설물로 이뤄져

자연보존을 최우선 원칙으로 하는 국립공원에도 많은 시설물들이 설치돼 있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체 국립공원에 총 4,041개의 탐방로 시설물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총 615구간에 교량 792개, 난간 1,212개, 계단 982개, 목재데크 1,055개다. 또한 지난 2016년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15개 국립공원의 전체 탐방로 1,236km 중 목재데크, 철제 사다리, 돌계단 등이 설치된 탐방로는 96.7km로 전체 등산로 중 약 10%에 인공적인 시설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이미 한 차례 이런 시설물 설치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16년 발표한 '북한산국립공원 탐방로 관리에 대한 의견서'에 따르면 급경사지에 설치된 데크는 전체의 32%에 불과했고, 전체 조사지의 53.8%가 목재데크 밖으로 탐방로가 증가해 탐방로 훼손 확산방지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전체 25개 목재데크 조사지역 중 암반지역이 15개소인데 이 중 13개소에 새로운 탐방로가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반면 국립공원공단 관계자 A씨는 "국립공원 내 시설물 설치는 최소한이 원칙"이라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곳도 많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백산 주능선이다.

"나무데크나 계단을 설치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안전입니다. 추락 위험을 방지합니다. 두 번째는 토사유출방지입니다. 최근에는 야자매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탐방객의 답압으로 반질반질한 등산로에 폭우가 오면 그대로 노면의 흙이 쓸려 내려갈 수 있죠. 세 번째는 주변 식생 복원입니다."

A씨에 따르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백산을 방문한 탐방객들은 정상 일원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에 탐방로를 기준으로 양옆 고지대의 식생 대부분이 죽고 흙이 드러난 상태로 훼손됐다. 하지만 나무데크를 설치해서 탐방객의 동선을 고착화한 결과 현재 소백산 정상부 식생은 거의 완벽히 복원된 상태라는 설명이다.

국립공원의 탐방로 시설물 설치에 대한 여론은 어떨까? 이는 국립공원의 특수성, 해당 구간의 지형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안전시설을 더 설치하자는 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된다. 2017년 내장산국립공원을 대상으로 한 '국립공원 시설물에 대한 탐방객의 인식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화장실, 주차장, 탐방로 시설 등 전체 시설물의 중요도 평균은 4.10이나 성취도(만족도) 평균은 3.43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 말은 국립공원 시설물이 중요성에 비해 만족스러운 만큼 설비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안전시설의 위험지역 난간 설치' 및 '안전시설 주의안내판 설치' 항목에서 이 격차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데크나 난간을 더 많이 설치하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평균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다.

도봉산 Y 계곡 암릉 구간을 난간을 잡고 오른다.

일반 공사와 달리 운송비 막대

일반 산림 등산로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아무래도 국립공원은 공단이 관리하지만 이곳은 일반 지자체 산림과가 관리하므로 여론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다시 말해 민원이 시설물 설치의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 산림녹지과 B씨가 관련 절차에 대해 설명해줬다.

"먼저 지자체 산은 국공유지보다 사유지인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민원이 제기되면 소유주에게 동의를 얻어야 해요. 이게 여간 까다로운 게 산도 여러 사람이 조각조각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분들 전부 다 동의를 받아야 해요. 그 다음 산림기사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에게 설계 용역을 맡겨서 어떤 형태의 안전시설물이 좋을지 결정하고, 그 다음 공사에 들어가는 구조죠."

대부분의 지자체는 개발보다는 보호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B씨는 "갈수록 등산하는 인구들이 고령화되고 있다. 또 '너희 산에서 낙상 사고를 당해서 허리를 다쳤다. 탐방로 정비를 해달라' 식으로 민원을 넣으면 지자체 입장에선 시민 안전을 위해 데크나 계단을 설치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등산로 조성공사 공고.

예산도 상당히 많이 소요된다. 조달청 나라장터에는 적게는 1,000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등산로 정비사업 용역이 매달 수십 건씩 확인된다. 덩달아 이는 지엽적인 공사며 지자체에서 대대적으로 국비나 도비, 시비를 모아서 공사하는 경우에는 사업규모가 수십, 수백억 원에 달하기도 한다.

B씨는 "일반 공사와 달리 운송비가 막대하다"며 "헬기 한 번 임차하는 데 약 1,000만 원대가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시공업체가 버는 이윤은 전체 사업비의 13~15% 선이라고 한다.

다만 2023년 들어서는 시설물에 대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는 후문도 있다. 바로 맨발걷기 열풍 때문. 이를 위해 토사유출방지를 위해 설치한 야자매트를 걷어달라고 요청하는 민원도 꽤 있다고 한다. 시설물을 설치해 달라는 민원과 철거하라는 민원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한 지자체의 등산로 조성 사업 개요.

미국, 일본은 시설물 거의 설치 안 해

그 균형은 결국 현장에 달려 있다. 데크나 계단을 설치해야 할 만큼 위험하거나 환경훼손, 토사유출이 심한 곳에 제한적으로 설치하면 된다. 다만 문제는 기준이다. 전문가들은 해당하는 산악 환경이 '얼마나' 위험해야 데크를 설치할 것인지 평가하는 기준이 한국이 유독 낮다고 보고 있다. 조우 상지대 조경산림학과 교수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설물이 안전과 생태환경 보호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너무 많다"며 "미국 등 해외 국립공원처럼 자연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 선진국의 경우 안전시설물을 가급적 설치하지 않으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 등산전문가 우치노 가오리는 "일반적으로 한국의 등산로는 일본보다 더 인공물로 개발되어 있다고 본다"며 "험한 암벽이 있다면 일본은 사다리나 쇠사슬 정도인데 한국은 계단과 난간이 설치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정표도 그렇다. 물론 일본 내에서도 등산객이 많은 유명한 산지는 한국처럼 남은 산행 거리와 이름이 잘 정비돼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는 이정표가 오래됐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아서 지도를 상비하고 독도법도 숙지해야 한다. 또한 한국에선 리지 등반로로 구분될 만큼 험한 구간도 일반적인 등산로와 똑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64년 미국 최초의 야생보호법이 제정된 이래로 자연은 자연 그대로 놔둔 채 산행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낙석주의 표지판도, 목책이나 안전난간도 찾아보기 힘들다.

야생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에 설치된 시설물도 환경훼손이나 탐방객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면 규제를 더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요세미티국립공원의 하프돔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 루트다. 하프돔 정상 트레일의 마지막 구간은 강철 케이블을 붙잡고 길이 180m, 높이 120m를 오르도록 돼 있다. 이 시설물은 1919년에 설치됐는데 2008년엔 하루에 1,200명이 오르는 등 탐방압력이 높아지자 주변 식생의 파괴, 토양 손실, 혼잡으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 등을 이유로 2012년부터 하루 최대 300명만 오를 수 있도록 정책을 변경한 바 있다.

미국이 이처럼 안전시설물을 설치하지 않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야생보호법에 야생으로 지정된 지역의 원시성을 보존하고 개발하면 안 된다고 명시됐단 것이며, 다른 하나는 등산 중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온전히 개인이 책임진다는 법적, 문화적인 토대다. 1987년 그랜드티톤국립공원에서 하산 중 추락한 사고에 대해 유족이 공원 측 책임을 물어 고소하자 법원은 "등반계에서는 등반에 위험이 내재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연 속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자유의 중요성은 인정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판결했다. '자발적 위험 부담의 법리'다. 이 법리로 인해 미국에선 등산 중 사고가 소송으로 거의 이어지지 않는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2022년 여름 샤모니 등반 가이드 크리스토프 프로피가 알프스 몽블랑을 오르는 길에 설치된 등반 보조용 안전난간을 제거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장에 설치된 철기둥 두 개를 뽑으며 "이런 철기둥은 준비되지 않은 초보자가 산을 오르게 만들어 더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고 했다.

몽블랑 등산로 중간에 설치된 철기둥을 뽑고 있는 크로스토프 프로피. 사진 밥티스트 사비냐.

과유불급 시설물

시설물이 산행을 훨씬 쾌적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서울 인근의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 관악산 등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외국인들은 잘 정비된 등산로에 연신 감탄한다. 본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리주의적인 보존론적 입장에선 안전시설물은 환경을 훼손하는 존재다. "산은 체력단련장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시설물을 지양해야 한다고 보는 산꾼들도 있다. 등반에 있어서도 암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볼트 설치를 최소화하는 트래드클라이밍을 좇는 트렌드가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를 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등산로에 지나치게 시설물을 많이 설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지적에는 한 번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