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사람이 말 건넨다, 그래서 더 따뜻한 풍경

하송이 기자 2024. 1. 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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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사람이 더해진 풍경은, 더 이상 풍경(風景)에 머물지 않고 정경(情景)이 된다.

"대학 때 벤샨이라는 작가가 미국 전역을 돌며 그린 그림을 보고 한국적인 신(scene)을 그려보자고 생각했어요. 사람들 이야기와 사연을 듣고 풍경을 버무리는 거죠. 최근에도 경주에 다녀왔는데 이전과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없어지기 전에 그림으로 많이 남겨놔야겠다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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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종보 작가 개인전 ‘한국정경’

- 전국 곳곳서 만난 산·강·바다에
- 사람이야기·지역사 녹인 작품
- 21일까지 아스티갤러리 전시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풍경 속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제각각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사람이 더해진 풍경은, 더 이상 풍경(風景)에 머물지 않고 정경(情景)이 된다. 부산의 중진 작가 설종보는 정경을 그리는 작가다. 전국 곳곳을 답사하며 만나고 기록한 산과 강, 바다에 사람의 이야기와 지역의 역사를 녹인다. 이야기가 담긴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풍경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동화 같은 매력을 뿜는다.

설종보 작가의 ‘만어-경석’. 아스티갤러리 제공


설종보 작가의 전시 ‘한국정경’이 부산 동구 아스티호텔 3층 아스티갤러리에서 오는 21일까지 이어진다.

“대학 때 벤샨이라는 작가가 미국 전역을 돌며 그린 그림을 보고 한국적인 신(scene)을 그려보자고 생각했어요. 사람들 이야기와 사연을 듣고 풍경을 버무리는 거죠. 최근에도 경주에 다녀왔는데 이전과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없어지기 전에 그림으로 많이 남겨놔야겠다 싶었지요.”

설종보 작가가 아스티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명옥헌’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송이 기자


부산에서 시작한 그의 작업은 2000년대 들어 전국으로 확대됐다. “‘택리지’처럼 우리나라 전경을 다 그려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으로 구역을 나눴다.

많은 사람이 잘 아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곳, 남들이 잘 모르는 곳을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영화도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 다르게 다가오듯, 갈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는 동네에 귀를 기울이려 한 장소를 여러 번 답사하기도 하고, 여러 각도로 캔버스에 담기도 한다. 전남 담양의 정자 ‘명옥헌’을 담은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담양 정자 기행을 한 적이 있어요. 소쇄원 등 담양에는 선비들이 정자를 많이 지었는데, 그중에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서 푯말도 제대로 없는 곳도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곳을 좋아하다 보니 명옥헌에 마음이 많이 가더라고요. 이전에도 여러 번 화폭에 담긴 했는데, 전체를 다 그린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작품 속에서는 명옥헌과 더불어 분홍빛이 영롱한 배롱나무, 굽이굽이 숲길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정겹게 어우러진다. 정자에 앉아 쉬는 사람, 아이 손잡고 산책하는 사람, 벤치에 앉은 사람, 숨바꼭질하는 사람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이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그의 모든 작품을 꿰뚫는 키워드다. 제주를 담은 작품에서는 ‘관광지 제주’가 아니라, 주민이 사는 삶의 터전으로서 제주를 담는 식이다. 밀양 만어사 경석(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돌)을 담은 작품에서는 대자연 앞에서 흔들리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의 작업은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나기에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의 정경은 현재 모습이기도 하지만 사라진 과거이기도 하다. 사라진 옛 태종대 등대, 산복도로 모습 등 ‘그땐 이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야기다. “이전에 답사하고 그렸던 곳이 지금은 70% 이상 바뀐 것 같아요. 건물이 없어졌거나 카페나 아파트로 변했더라구요. 원동 매화마을에 7, 8년 전 답사 갔을 땐 ‘들어와서 밥 먹고 가라’고 할 정도로 정겨웠는데 지금은 다 국숫집으로 바뀌었더군요. 그렇게 무언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요,”

설 작가는 2, 3년은 더 한국 정경을 그리는 데 매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오는 21일 아스티갤러리의 개인전이 마무리되면 다시 작업에 들어가 오는 6월께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과거에는 원도심이 문화의 중심이었는데 요즘엔 해운대 쪽으로 많이 넘어가 아쉬웠어요. 이번 전시는 동구에서 열리니 서부산 시민도 많이 찾아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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