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 전부터 폰…“눈알 젤리” 중얼중얼, 친구 감정은 못 읽는 교실

심우삼 기자 2024. 1.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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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인류① 알파세대가 잃은 것, 사회성
타인 감정 읽는 데 서툴어 관계 주고받지 못해
‘폰 과의존→사회성 악화→과의존 심화’ 악순환
게티이미지뱅크
도파민은 주로 새로운 것을 탐색하거나 성취하는 과정에서 ‘기쁨’의 감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게임이나 쇼핑을 할 때, 음란물을 볼 때도 보상 작용처럼 도파민이 분비된다. 비슷한 자극이 반복되면 뇌는 도파민을 적게 생산하거나, 도파민에 반응하는 수용체 수를 줄인다. 동일한 쾌감을 얻기 위해 더 많은 자극을 찾는 ‘중독’으로 가는 길이다.

세상 모든 자극의 집합소인 스마트폰과 도파민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스마트폰은 위험하지 않다’고 방심하는 사이 우리는 도파민을 얻고, 대신 많은 것을 잃었다. 스마트폰 중독 실태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알고리즘의 비밀, 치유책을 4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지난해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은(가명·8)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또래 친구들과 놀 줄 모르고 혼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요구하지만, 선생님의 지시엔 무반응이다 보니 선생님과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리에 앉아 허밍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런 지은이를 신나게 하는 ‘친구’는 스마트폰이었다. 지은이는 유튜브가 좋았다. 자기 또래의 ‘키즈 유튜버’들이 과자를 먹고 리뷰를 올리는 먹방(음식 먹는 방송)이 지은이의 최애 영상이다. 하루 평균 3시간,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이나 방학엔 8시간씩 유튜브와 함께했다.

‘눈알 젤리, 지구 젤리 먹으면 입속에 팍 터져요. 파란 지구 젤리 먹으면 화장실에서 파란 똥이….’ 지은이는 유튜브를 보지 않을 때도 영상 속 대사를 중얼거렸다. 키즈 유튜버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이를 촬영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폭력적인 영상도 (나쁜 걸 모르니까) 그대로 따라 하더라고요. 못 하게 스마트폰을 뺏으면 소리를 지르면서 저를 때려요.” 부모가 유튜브를 못 보게 막자 지은이는 부모 휴대전화를 몰래 가지고 나와 이불·옷장에 숨어 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만 쥐면 유폐된 듯 보이는 아이를 볼 때마다 엄마는 “스마트폰이 아이의 발달을 저해하고 있다”는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유아동 스마트폰 과의존 척도’로 점검한 결과, 16~28개월께 처음 유튜브를 접한 지은이는 잠재적 위험군에 해당했다. 엄마는 결국 선생님의 권유로 종합심리평가를 받아보기로 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소꿉놀이가 안 된다.” “아이들이 (서로의) 감정 파악을 어려워한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알파세대’가 읽기 어려워하는 건 문자의 맥락(문해력)뿐만이 아니었다. 11월 말부터 한달 동안 ‘한겨레’가 만난 보육·교육 현장 교사들과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교감의 시간을 스마트폰이 앗아가면서 ‘관계의 맥락’ ‘감정의 맥락’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초등학생 스마트폰 인류를 소재로 미드저니(이미지 생성 AI 프로그램)를 통해 생성한 그림.

영유아는 부모나 또래의 표정, 단어, 목소리 톤, 신체적 반응을 통해 단계적으로 성장하는데, 상호 작용이 불가능한 전자기기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서 사회성 발달이 저하됐다는 설명이다.

일선 현장의 교사들은 사회성 저하로 아이들의 ‘새 학기 앓이’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치원 원장 최경희씨는 아이들이 갈등·관계 극복을 귀찮아한다고 말했다. “새 학기가 되면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하고 배려를 나눠야 하는데 무기력한 아이들이 있어요. 영상에 재미 들린 아이들은 친구 사귈 때 겪는 과정과 시행착오·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안 하죠.”

30년 경력의 초등교사 이세경씨는 “마치 고립된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책을 안 가져왔으면 옆의 친구에게 같이 보자고 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도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20년차 이인희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자기감정은 잘 말하면서 상대의 감정은 놓친다”며 “지금은 화해 과정에도 일일이 교사가 중간 다리를 놔줘야 한다”고 했다.

역할 분담이 서투르고, 같은 장소에 있어도 함께 어울리기보단 혼자서 노는 게 익숙하다 보니, 초등학교 1학년생들에게 ‘소꿉놀이’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만만치 않은 놀이가 됐다. 홍순이 교사는 “놀이에도 수준이 있다. 초등학교에 오면 관계를 주고받는 수준의 놀이가 진행돼야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날 때까지 이런 부분이 안 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냥 ‘자기 세상’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외 여러 연구를 보면, 영유아 시기 무분별한 스마트폰 사용은 사회성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김성구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교수(소아청소년과)는 2023년 발표한 ‘미디어 노출이 아동의 사회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서, 2살 이전에 2시간 이상 부모의 통제 없이 단독으로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 사회성 발달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3년 9월 미국의학협회 소아과학지(JAMA Pediatric)에 발표된 연구 역시 일찌감치 디지털 기기 화면에 노출된 아이는 의사소통·문제해결 능력에서 발달 지연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한국교원대 산학협력단이 펴낸 ‘2022 디지털 리터러시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자료 및 콘텐츠 개발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유아 2명 중 1명은 생후 24개월 이전에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를 접한다. 10명 중 1명은 돌 이전에 디지털 기기를 처음 이용한다.

한번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은 ‘스마트폰 과의존→사회성 악화→과의존 심화’의 악순환에 갇히곤 한다.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사회성을 쌓을 시간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현장학습 소풍을 간다 치면 예전엔 버스 안에서 과자 먹으며 친구들과 떠들고 그걸 선생님이 조용히 시키고 그런 풍경이 떠오르잖아요? 근데 요즘 아이들은 소풍 간다고 하면 ‘휴대전화 들고 와도 되냐’고 가장 먼저 물어봐요.” 현장체험 버스는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아이들로 인해 적막만 감돈다고 최민지 교사는 전했다.

학교 안팎에서는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콘텐츠 탓에 아이들의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18년차 교사 양해준씨는 “아이들이 보는 영상은 자극적이고 그에 비해 교실 안은 평화로운 환경이라 자극이 덜하다. 서로 실수하거나 싸우면 상처를 받는데 ‘슬픈 감정’ ‘미안한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며 “상대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무뎌지는 것 같다. 기본적인 감정을 못 읽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보면 일반화할 순 없지만 스마트폰 노출이 많거나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고경주 기자 go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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