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살만 빼면 완벽한 인생”, ‘스나이퍼’ 장성호가 9년차 해설자로 사는 법[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2024. 1. 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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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IA를 대표하는 선수였던 ‘스나이퍼’ 장성호는 은퇴 후 야구 해설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10년 가까이 3할을 쳤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3명쯤 된다. 10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박용택(전 LG)이 선두 주자다. ‘양신’이라는 별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양준혁(전 삼성)은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은 장성호(47·전 KIA)다. 장성호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3할을 쳤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정확히 타율 0.300을 맞췄다.
장성호 특유의 레드킥 동작. 큰 타격폼에도 정교한 타격을 자랑했다. 동아일보 DB
‘스나이퍼’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정교한 왼손 타자였다. 타격 시 오른쪽 발을 크게 들어 올리는 특유의 레그킥을 하면서도 공을 방망이 중심에 제대로 맞혔다. 공을 골라내는 선구안 역시 뛰어났다. 20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통산 1101개의 볼넷을 골라내는 동안 삼진은 879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 말엽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면서 그는 통산 타율 0.296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아쉬워하는 건 통산 타율 3할이 아니라 99개에 멈춘 통산 도루 수다.
선수 생활 내내 그에겐 ‘발이 느리다’는 편견이 있었다.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뛸 수 있을 때 뛰었고, 착실히 도루 숫자를 늘려나갔다. 장성호는 “이왕이면 100개 또는 200개처럼 딱딱 끊어지는 게 좋지 않나. 하지만 99도루는 내게는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아마 장성호가 도루를 100개 가까이 했다는 걸 아는 야구팬이 많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장성호 KBSN 해설자(오른쪽)와 이호근 캐스터가 호흡을 맞추고 있다. 장성호 제공
장성호에 대한 또 다른 편견 하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라는 것이었다. 이는 평소 잘 웃는 그의 모습에서 비롯됐다. 그는 원래 웃는 상인데다가 실제로도 잘 웃었다. 수비 실책을 하고도, 병살타를 치고 난 뒤에도 얼굴에 미소를 짓곤 했다.

하지만 겉보기와 달리 그는 엄청난 승부욕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훈련 및 경기에도 진지하게 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스스로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훈련도 열심히 했고, 동시에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았다”고 말한다.

그가 여느 은퇴 선수들처럼 야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100% 최선을 다했따고 하긴 어렵겠지만 선수 생활 내내 후회 없이 방망이를 돌렸다고 생각한다. 은퇴한 이후에도 배트를 잡고 스윙을 하고 싶진 않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스프링캠프에 가기 전에 몸을 만드는 꿈을 꾸곤 한다. 그는 “나뿐 아니라 프로 선수라면 모두 열심히 훈련한다. 손바닥이 까지고, 근육에 알이 배기는 게 일상이다. 요즘도 훈련하는 꿈을 꾸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일어나곤 한다”고 했다.

장성호가 한화에서 뛰던 2012년 ‘코리안 특급’ 박찬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일보 DB
20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친 그는 현재 KBSN의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퇴 이듬해인 2016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도 벌써 9년차 해설위원이다.

2012년 한 스포츠케이블TV에서 열린 프로야구 선수 당구 대회에 출전한 게 그가 해설자가 된 계기였다. 지금이야 프로당구가 출범하며 당구 중계가 일상화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당구 해설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날도 따로 해설자가 없어 경기에 출전한 야구 선수들이 번갈아 중계석에 앉았다. 평소 위트가 있고, 언변이 좋았던 그는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그곳에서 찾게 됐다. 장성호는 “굉장히 흥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은퇴가 다가올수록 나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던지, 발음을 정확히 하면서 또박또박 읽는 연습을 했다”고 했다. 수시로 해설자들이 바뀌는 가운데 그는 큰 사건, 사고 없이 9년째 중계석을 지키고 있다.

경기 시작에 앞서 자료들을 살려보고 있는 장성호 KBSN 해설위원. 그는 “준비하는 만큼 좋은 해설이 나온다”고 말한다. 장성호 제공
제2의 인생이 된 ‘야구 해설가’는 그에게는 천직이다. 그는 “팬들이 잘 모르거나, 궁금해 사실 만한 부분을 내가 공부를 해서 알려드리는 희열이 있다. 준비한 만큼 좋은 해설이 이뤄질 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야구 해설을 위해 그는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가진다. 정치와 경제, 사회, 영화, 심지어는 날씨까지 야구 해설을 위한 좋은 소재가 된다.

야구 공부도 열심히 한다. 메이저리그 사이트들을 찾아보고, 야구 인플루언서들의 글도 꼼꼼히 읽는다. 궁금한 게 있으면 동료 해설위원이나 기록원들에게도 수시로 물어본다. 그는 “현대 야구는 시시각각 변한다. 몇 년 전부터 세이버매트릭스(야구 통계학)이 관심을 끌었고, 시프트와 발사각도 등도 유행했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에서 도입한 피치 클락 등이 큰 화제”라며 “야구가 계속 바뀌고 있으니 싫증이 날 틈이 없다. 내게 해설 권태기가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장성호 해설위원이 여자 프로농구 시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프로야구 정규 시즌 때 그는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현장 중계를 하고, 한두 차례 경기 후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야구의 참견’이라는 야구 토론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야구 유튜브도 운영한다. 그는 “매번 출연할 때마다 새롭게 얘기할 거리가 나온다. 야구의 세계가 넓고 깊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했다.

3년전부터는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 U리그 왕중왕전 해설도 시작했다. 프로야구 중계와 시간이 겹치는 걸 피하기 위해 오전 9시 경기를 위주로 중계를 잡는다.

작년 어느 날엔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하고, 야구의 참견 녹화까지 끝난 뒤 새벽 3시에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전 9시 대학야구 중계를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그는 “딱 두 시간 눈 붙이고 중계를 하러 나갔다. 힘은 들었지만 ‘내 위치에서 아마추어 야구를 위해 할 수 있는 하자’는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야구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갈 길도 멀다. 하지만 프로야구 중계에 비해 할 얘기는 훨씬 많다. 가끔씩 누가 봐도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가 나오곤 한다. 대체 어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아마추어 야구가 처한 어려운 현실과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매력들을 더 많이 알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성호 해설위원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인근의 낮은 산을 찾는 걸 좋아한다. 장성호 제공
그의 새해 목표 중 하나는 뱃살을 빼는 것이다. 선수 생활을 그만둔 뒤에도 그는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유지해 왔다. 요즘에 일주일에 4, 5번은 운동을 한다. 한 번 운동을 할 때는 근력 운동 20분, 유산소 운동을 40분 가량 한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을 가볍게 걷는 것도 좋아하고, 아내와 함께 서울의 인왕산과 안산 등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것도 즐긴다. 행주산성 둘레길 등도 종종 간다.

하지만 살찌는 건 막기 힘들다는 게 그의 호소다. 장성호는 “운동을 꾸준히 하니까 몸이 아픈 곳은 없다. 그런데 운동 덕분에 입맛이 좋아지고 먹성이 좋아진 것 같다”며 “한 번 찐 살이 잘 빠지지 않아 고민이다. 결국 음식 조절과 절주가 핵심인 것 같다. 뱃살만 좀 빼면 내 모든 삶이 완벽에 가까워질 것”이라며 웃었다.

장성호 위원이 전라남도 여수 여행 중 찍은 사진. 동아일보 DB
그는 뱃살을 빼고 하체를 강화하기 계단 오르기를 본격적으로 해 볼 작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한창이던 몇 해 전 그는 계단 오르기 효과를 본 적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시 그가 다니던 피트니스센터도 문을 닫았는데 그는 아파트 31층을 걸어서 올랐다. 그는 “지하주차장 3층에서 31층까지 두세 번을 오르내렸다. 시간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등을 쓰면서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수 있었다. 계단 오르기는 짧은 시간 안에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그가 사는 아파트는 36층 건물이다. 지하 6층에서 꼭대기인 36층까지 오르면 42층이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기의 체중을 이용하는 게 가장 좋은 운동이라고 배웠다. 계단 오르기는 내가 갖고있는 신체를 고스란히 쓰는 운동이다. 올해 최소 이틀에 한 번은 계단을 오르며 한다”고 말했다.

장성호 해설위원이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장성호는 현재 자신의 삶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행복을 계속 누리려면 건강해야만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물론 해가 갈수록 더 깊이 있는 해설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 해온 웃음 있는 해설을 놓치고 싶진 않다”며 “재미와 내용을 동시에 주는 해설자가 되려 더 노력하겠다. 그런 고민을 뺀다면 지금처럼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는 것 같다. 지인들에게도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곤 한다”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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