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사태 대해부] 반복되는 ‘페미 사상검증’에 우리 사회가 무력한 이유
무엇보다 객관적 물증이 아닌 주관적 심증과 감정 논리에 의해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하고, 기업과 정치권·언론 등이 이를 마치 사실 관계가 확인된마냥 공론장에 입장시켜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이번 사태를 포함해 유사 사례에서 ‘페미몰이’가 이뤄지는 과정을 보면 어디에도 과학적인 논증은 없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보자.
△주먹 쥔 손을 펴는 과정을 프레임 단위로 재생하며 캡처해 집게손 모양이 되는 걸 찾아내기 △영상 제작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져 ‘페미 발언’을 찾아낸 뒤 “페미니까 ‘남혐 표식’을 심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 △하청사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의도적으로 남성혐오 행위에 동참했다고 규탄하기 등이다.
이를 종합하면 ‘페미니스트 여성 직원을 색출해서 손가락 논란과 엮어 보내버리기’에 가깝지 증거에 기반한 인과관계 증명이라 보기는 힘들다. 단적인 예로, 페미니스트 직원이면 무조건 남혐 표식을 심는가? 그 손 모양이 ‘의도적으로 들어갔다’는 증거는 어디 있나? 애초에 집게손을 남혐으로 단정짓는 것부터 온당한가? 그 무엇도 제대로 답변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무언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는 불평등을 이미 감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하고 불안정할까. 왜 내 미래의 앞길은 보이지 않을까’ 했을 때 여러 진단이 가능한데, 지금 한국 사회가 선택한 방식은 아주 손쉬운 해결책이다. 세상이 나 빼고 모두 행복하고 나만 불행한 이유가 ‘페미니스트 음모론’ 때문이라고 선택한 것이다. 세상 곳곳에 페미니스트가 숨어서 무언가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나의 현실이 이렇게 불행하다는 음모론이 특정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이 어떻게 세를 키워온 것인가.
“전혀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 커뮤니티 안에서는 그렇게 보인다’며 확증편향이 됐다. 언론이나 특정 정치권에서 받아쓰기 하는 과정을 통해서 점점 현실성과 실질성을 가지고 믿을 만한 것이 되는 거다. 페미니즘에 대한 음모론이 세계를 바라보는 해석 틀이 되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페미니스트는 성평등 사회를 위한 미래적 비전이라는 하나의 대안적인 규범이 아니라 굉장히 낙인과 오욕, 수치의 이름, 마녀사냥의 타겟팅이 될 수 있는 이름이 되어버렸다. 서구권에선 선거 때마다 나오는 것이 ‘무임 승차하는 이주민들, 잠재적 테러리스트인 아랍계 사람들’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선 페미니스트가 된 거다. 영미권에선 외국인이나 이주민이 이 사회의 불행에 대한 희생양으로 지목된다면 우리는 그것이 ‘이기적인 젊은 여성, 과격한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 마녀사냥이 그렇게 일상화되고 있다.
“한국사회 특유의 양극화 현상, 극심한 경쟁 사회가 야기하는 병폐들, 주거 불안정 등 사회 구조적으로 복합적 문제가 산재해 있는데 이를 적극 해결하고 진단하기보다는 가장 쉬운 해결책으로 일종의 마녀사냥, 타깃 된 사회적 소수자 그룹이나 분란자 그룹만 사회에서 제거하거나 축출하거나 개화시키면 예전의 좋았던 상태로 복원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려되는 건 이렇게 안티 페미니스트적 백래시는 굉장히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데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공기업이 이에 대해 체계적인 대응 매뉴얼을 못 갖추고 있다는 것. 그래서 늘 똑같이 반복된다. 그러니 남초 커뮤니티에서 보기엔 자신들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사회적 시그널로 읽힌다. 반복해서 일어나는 페미 음모론, 마녀사냥에 대한 대응 매뉴얼이 공기업과 대기업 차원에서 공유되는 것, 즉각적이고 집단적 소비자 항의가 들어올 때 내용을 어느 정도 충분히 검토할 시간과 전문가들의 조언이 분명히 필요하다고 보이는 시점이다.”
-대응 매뉴얼은 왜 계속 만들어지지 않는 건가.
“우리 사회에서 기존 질서가 가진 관행, 부조리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진다든가 전통을 훼손시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예전엔 종북의 이름, 빨갱이의 이름으로 이것이 있었다면 이제는 페미니스트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 아버지 세대와 그 아버지 세대가 누리던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라든지 이런걸 한꺼번에 너무 빨리 뒤집어 엎어버림으로써 사회에 분란과 불행을 일으키고 남성들을 고통받게 하는 것으로 여긴다.
페미니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단시간에 기존 사회의 병폐나 문제점을 철저하게 비판했고 문제제기했고 거기에 따른 제도적 변화를 요청했던 가장 눈에 띄는 사회적 소수자 운동 중 하나였기에 타겟팅이 더 되지 않았나 싶다. 기존 가치를 붕괴시킴으로써 이 사회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 원인자로 지목이 된 것이다. 2018년쯤 이미 20대 여성 50%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할 만큼 엄청난 대중성을 갖추었기에 많은 젊은 남성에게는 하나의 위협적 증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이 그런 부적절한 발언을 하는 이유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 표심 얻으려는 전략적인 행위로 읽힌다. 공인이라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안티 페미니즘적 정서를 훨씬 더 자극하고 있다. 특정 커뮤니티, 그들만의 세상에서 돌던 이야기나 세계관을 일종의 공적 영역에 가져옴으로써 거기에 현실성과 실질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이 세상의 모든 병폐는 다 페미니스트 때문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음지에 있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하는 얘기일 때와 총선 후보나 당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지도자가 영향력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했을 때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말이 맞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우려스럽다.”
-그렇게 하는게 표심으로 이어진다고 정치인들이 믿는 건가.
“옳고 그름보다는 이것이 나에게 선거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 아닌가, 선거 공학적으로 봤을 때 그런 논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스스로를 가시화하는 것이 특정 표심을 얻어가기에 적합하다는 이미지 포지셔닝으로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면 지지받지 못한다고 보는 건지.
“오히려 소위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에 가까운 이야기 했을 때, 민주사회의 상식을 이야기할 때 더 많은 비판과 힐난을 받고 타겟팅 되는 상황이니 부담감을 갖는 것이다. 특정 커뮤니티 목소리를 적극 가시화하는 정치인도 있지만 아예 이런 것에 대해 침묵하거나 말하지 않는, 굳이 위험한 입장을 취하지 않으려는 포지셔닝도 분명히 보인다. 이미 페미니즘이 일반 여성에게만 오욕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권에도 부담스럽고 논란이 되는 언어가 됐다는 의미다. 되도록 멀리 하고 싶은 용어나 입장이 된 것이다.
성평등, 민주사회의 가치로서 페미니즘을 얘기했을 때 그만큼 열광해주고 나에게 표를 줄 사람들이 가시적으로 보일 때면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근데 그런 얘기를 했을 때 돌을 던지는 사람이 많은데 그러겠나. 괜찮다는 사람은 너무 적고 안 괜찮다는 사람이 너무 많을 때 굳이 그 작은 목소리를, 페미니즘을 대표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여기는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목소리를 낼 때 이를 지지해 줄 수 있고 맞다고 공명해줄 수 있는 목소리를 확인할 경로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결을 해나가야 할까.
“페미니즘 논의를 정말 진지하게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혼자 얘기하도록 두지 말아야 한다. 그런 발언에 화답하는, 공인 칼럼을 쓰는 분이라든지 작가라든지 논의를 연결해서 이어가야 한다. 지금은 어떤 이가 혼자 이야기하고 혼자 비난과 악플을 다 받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며 벌벌 떨면서 ‘페미니즘은 입에 올리면 안되겠구나’ 하는 공포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에 침묵하는 것을 안전한 방식으로 여기게 된다.“
-‘업장에서 왜 사회운동하냐’ 등의 논리도 횡행하고 있다.
“정치라는 영역을 마치 입법부에 들어갈 수 있는 몇몇 엘리트만 할 수 있고 일반 시민들은 정치적 발언이나 신념 운동을 하지 않는 비정치적 영역에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이야말로 대의민주주의 안에서 국회에서 발의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대표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수많은 시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서 신념과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힐난이나 조롱, ‘니가 정치인이냐. 왜 거기서 정치를 하냐. 그러면 정치인이 되든가’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지금은 정치적 영역과 비정치적 영역을 나눠놓고 일상에서 언론에서 학계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면 굉장히 나쁘고 편협하고 편향적인 걸로 본다. 이 자체가 정치를 엘리트만의 것으로 여기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시민에게 조장하는 아주 위험한 발언이다.
노동자는 고용주가 만들라는 것만 만들고,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어떤 소유권이나 저작권도 가져선 안 된다는 건 일종의 ‘노동 소외’다.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에게 ‘피고용주는 그럴 권리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끊임없이 구분짓기한다. 고용주나 경영자가 아닌 노동자는 자신의 목소리나 색깔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발언의 권리, 표현의 자유를 가질 권리가 특정 엘리트만의 것이라고 계속 각인시키는 방식이라고 본다.”
-그걸 왜 기득권층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건가.
“지금까지 내재화한 이 세계의 가치가 대부분 기득권의 눈을 통해 보고 읽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득권이 정한 규범과 규칙을 잘 따르는 것이 좋은 시민이라고 길러져 왔다. 나는 재벌이 될 가능성이 없지만 텔레비전을 틀면 이 세상은 재벌의 눈으로 세팅돼 있으니 이를 유일하고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익혀온 것이다.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가장 기득권의 목소리를 대리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맞는 말, 정치적이지 않고 보편적이며 정당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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