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총리 17명 중 13명이 옥스퍼드… ‘브렉시트’도 이 학교의 산물

곽아람 기자 2024. 1. 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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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출신 칼럼니스트가 본 英 최고 명문대 옥스퍼드의 민낯

옥스퍼드 초엘리트

사이먼 쿠퍼 지음|김양욱·최형우 옮김|글항아리|288쪽|1만8000원

리시 수낙 영국 총리와 보리스 존슨 전(前) 영국 총리는 ‘그 학교’ 동문이다. 리즈 트러스, 테리사 메이, 데이비드 캐머런 역시 ‘그 학교’ 동문이다. ‘그 학교’ 동문들은 영국에서 또래 집단의 0.5%도 안 되는 수치이지만 영국을 장악하고 있다. 1940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17명의 총리 중 13명이 ‘그 학교’ 출신이다. ‘그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묻는 건 일상이고, 학생들은 사립학교 출신 ‘사교계 인사’(socialite)와 공립학교 출신의 ‘흙수저’(stain) 두 범주로 나뉜다.

영국 ‘파워 엘리트’의 산실이라 불리는 ‘그 학교’는 바로 옥스퍼드. ‘축구 전쟁의 역사’ 등의 저작으로 이름을 알린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54)는 영국을 지배하는 정치 엘리트들의 옥스퍼드 학맥을 비판적으로 파헤친다. 쿠퍼 역시 옥스퍼드 출신으로 현시대 정치 엘리트들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녔지만, 스스로를 ‘해외에서 나고 자라 런던의 공립학교를 졸업한 외부인’이라며 사립학교 출신 ‘금수저’들과 선을 긋는다.

영국 최고의 명문대라 불리지만 1980년대의 옥스퍼드를 배움의 장이라 하긴 힘들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평균 20시간 공부했다. 학생들의 학습은 한 주에 한두 번 지도교수와 1대1 또는 1대2로 진행되는 튜토리얼이 전부였다. 수학과 과학은 오랫동안 상류층에 맞지 않는 전공으로 여겨졌다. 1980년대 초 학부생의 약 3분의 2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옥스퍼드에서 관료 양성을 위한 핵심 전공은 철학·정치·경제였다. 사립학교 출신 상류층들은 고전문학과 역사를 전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전문학은 특권층이 옥스퍼드에 입학하기 가장 쉬운 주요 전공이었다. 고전문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인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극소수의 사립학교 학생들만이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리스 존슨은 예비학교에서부터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저자는 옥스퍼드가 학문의 전당보다 권력의 전당에 가깝다고 말한다. 상류층 학생들은 졸업 후 정계를 주무르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학생들은 수업마다 에세이 과제를 내야 했는데, 주석을 달 필요가 없었다. 이는 축적된 지식이나 명확한 근거 없이도 도발적인 ‘글발’로 교수와 동료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쿠퍼가 1994년 파이낸셜타임스에 지원했을 때, 인터뷰를 보러 온 사람들은 오로지 옥스브리지 출신의 이성애자 백인 남성들이었다. “옥스퍼드에서 흡수한 에세이 문체가 신문사 칼럼니스트로 경력을 쌓는데 이상적인 준비 과정이 됐다. 나는 얕은 지식으로도 글을 쓰고 이야기하며 밥을 벌어 먹고사는 방법을 옥스퍼드에서 너무 잘 배웠다.”

저자는 2016년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보리스 존슨을 비롯한 탈퇴파가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를 비롯한 잔류파를 이긴 이유를 옥스퍼드로부터 찾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과격한 행동 등 말끔한 엘리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존슨이 나서 국민의 손에 영국의 앞날을 맡긴 일은 일견 캐머런으로 대표되는 전형적인 엘리트 집단을 공격한 ‘반(反)엘리트주의 운동’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착시현상이라 해석한다. 존슨의 제멋대로인 행동과 행색은 ‘규칙 따위는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영국 상류계급 특권의식의 결과물이며, 이는 존슨이 캐머런과 함께 활동했던 옥스퍼드 내 상류층 모임 벌링던 클럽의 정신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제이컵 리스모그 브렉시트 담당 장관 등 탈퇴파 주역들이 브렉시트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1990년 12월의 ‘영국의 독립을 위한 옥스퍼드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짚는다. 저자는 정치 경력이 부족했던 존슨에게 브렉시트는 팍스 브리태니카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정치생명을 이어갈 일종의 ‘대의명분’이었다고도 주장한다. 존슨이 자신이 체결한 EU와의 탈퇴 협정 내용도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이후 팬데믹 때의 비과학적 대처 등을 다방면에 걸친 심도 있는 지식을 쌓을 기회 없이 인문학에만 치우쳐 번드르르하게 말하는 법만 가르친 옥스퍼드식 교육의 결과물이라 분석한다.

책을 읽다 보면 ‘패거리 정치’가 지배하는 우리 현실과도 자연스레 겹쳐진다. 현대판 카스트 제도라고 비판받은 옥스퍼드 대학 문화에 대한 분석은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다행히도 옥스퍼드는 변화하고 있다. 글발 좋은 학생보다 성실한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주도록 기말고사 제도를 개편하고, 교수들은 학생들이 일주일에 최소한 40시간은 공부하도록 유도한다.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계층에서 신입생들을 뽑으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2020~2022년 공립학교 출신 입학률은 약 68%로 안정화됐는데, 이는 옥스퍼드 역사상 가장 높은 비율이다. 원제 Ch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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