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먹는 건 물리잖아”…내 입맛에 꼭 맞는 맥주 종류는? [기술자]
평소 애주가를 자처하시는 분들께 어떤 맥주를 선호하느냐고 물어보면 종종 이런 답변이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나라 주류 기업들이 대중성을 갖추고자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고, 튀지 않는 맥주만 만들어낸다는 의미인데요. 쉽게 말해 마시는 재미가 없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습니다. ‘카스’와 ‘한맥’, ‘테라’와 ‘켈리’, ‘클라우드’와 ‘크러시’ 모두 큰 틀에서 보면 ‘라거(Lager)’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지난주 <기술자> 코너에서 라거에 관한 이야기를 했으니, 오늘은 그 밖의 맥주 종류와 시장 분위기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맥주는 보리를 싹 틔운 맥아(麥芽)와 홉(Hop)을 물로 추출해 맥아즙을 만든 뒤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숙성과 여과를 거쳐 만들어냅니다. 맥아와 홉, 효모, 그리고 물. 이렇게 4가지가 맥주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재료입니다.
맥아는 보리를 물에 담가 부분적으로 발아시킨 뒤 열풍으로 건조한 것을 말합니다. 제조 과정에서 곡물의 전분이 당으로 변환되는데요. 당 성분이 추후 효모에 의해 발효되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집니다. 그냥 보리를 쓰기 어려운 게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보리가 아닌 다른 원료는 또 왜 사용하는 건지 궁금하실 텐데요. 공장이나 양조장 등에서 생산단가를 낮추고자 보리 외에 옥수수나 쌀 등을 일부 활용하기도 합니다. 맥주라고 알고 마셨는데 100% 보리로 만든 술은 아닐 수 있단 얘기입니다.
홉이란 것도 있다고 앞에서 언급했는데요. 홉은 장미목 삼과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맥주의 거품을 유지하면서 특유의 쌉쌀하고 쓴맛을 내고자 8세기 후반부터 활용하고 있는데요. 천연 방부제 성분이 포함돼 있어 맥주의 보존성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홉은 오늘날 맥주집을 의미하는 ‘호프집’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대관령 등에서 일부 재배되기는 하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한 까닭에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체로 미국이나 영국, 뉴질랜드, 체코산 등이 흔하게 활용됩니다.
에일은 라거와 달리 상면발효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상온에서 10~14일간 발효가 이뤄지며 효모가 거품처럼 맥주 위쪽에 뜨는 제조 공법입니다. 효모와 부유 단백질 등이 남아 있어 맥주 색이 전반적으로 탁하고, 알코올 도수도 라거보다 높은 편입니다.
제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에일은 과일이나 꽃향 등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에일은 ‘호가든’, ‘밀구름’, ‘기네스’ ‘크롬바커 바이젠’ 등입니다. GS25가 선보였던 ‘광화문’, ‘제주위트에일’도 에일에 속합니다.
에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발짝 더 들어가 볼까요?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 줄여서 IPA란 것도 있습니다. “아니, 에일이면 에일이지 ‘인디아(India)’가 왜 맥주 앞에 붙은 거지”하고 궁금하실 텐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나라 이름이 맞습니다.
19세기 영국 제국주의 시절 영국에서 인도까지 맥주를 배편으로 보내면 술이 상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요. 맥주의 품질을 유지하고자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앞서 소개해드린 천연 방부제 홉을 잔뜩 넣은 맥주를 만들게 됐습니다. 이 맥주가 바로 IPA입니다.
현대의 IPA 또한 역사 속 IPA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도수가 강한 게 특징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향이 아주 그윽하면서 쌉싸름한 홉의 향이 조화롭게 이뤄지기에 한 번 매력에 빠져들면 탈출구가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숯불구이나 스테이크 등과 잘 어울린다고 추천합니다.
시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IPA는 구스 아일랜드 IPA, 파운더스 센테니얼 IPA, 스톤 IPA, 인디카 등이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대통령실 경내에서 열린 ‘대한민국 중소기업인대회’에서 만찬주로 선정된 GS25의 ‘경복궁’도 바로 IPA입니다.
영국의 에일 흑맥주인 ‘포터(Porter)’ 중 맛과 도수가 강화된 스타일의 맥주를 ‘스타우트(Stout)’라고 하는데요. 기네스가 속하는 이 스타우트 계열은 맥아를 태우듯이 볶아서 제조합니다. 이렇기에 커피나 다크 초콜릿, 캐러멜을 연상시키는 향과 맛이 특징입니다.
영화 ‘킹스맨’을 보셨다면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며 술집을 한바탕 뒤집어놓는 장면, 기억하시는지요?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난 이 멋진 기네스를 마셔야겠어”라는 명대사를 날리는데요. 실제로도 흑맥주는 영국에서 큰 사랑을 받습니다.
전형적인 스타우트와 포터는 알코올 도수가 6도 안팎으로 크게 높은 편은 아닙니다. 묵직한 거품과 드라이한 쓴맛도 있어 마니아층이 즐기지만, 다른 맥주보다 진입 장벽이 높다는 평가를 듣기도 합니다. 굳이 영국산이 아니라도 미국 등지에서 생산된 것들도 준수합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는 맥주 시장이 위축된 분위기입니다. 세부적인 이유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위스키 등 증류주 시장의 규모가 몇 년 새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경우 지난 2022년 국내에 출시된 맥주 신제품이 무려 120여종에 이릅니다. 그러나 우후죽순 신제품이 쏟아진 것과 달리 ‘히트작’이 없었고, 이 때문에 수제맥주 시장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게 시작점이었습니다.
비슷한 양상은 미국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요. 시장조사업체 MRI-시먼스가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지난 6개월 내 술을 마신 이들 중 87%가 증류주를 마셨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맥주를 마신 이들은 56%에 그쳤고요.
중장기적으로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맥주 원료인 홉의 가격이 크게 올라 맥줏값이 더 오를 수 있단 우려도 나옵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된 한 논문에 따르면 유럽 전 지역에서 2021년부터 2050년까지 홉 생산량이 12~35% 감소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맥주가 빠진 빈자리는 그럼 누가 채우고 있을까요? 요즘 20대와 30대가 없어서 못 살 정도로 난리라는 술, 바로 위스키죠. 다음주 <기술자> 코너에서는 바로 이 위스키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및 자료>
ㅇ술 잡학사전, 클레어 버더(Clare Burder), 문예출판사, 2018
ㅇ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ㅇ비어 마스터 클래스, 오비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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