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얼마나 자주, 어떻게 쓸 것인가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2024. 1.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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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잘 읽히는 우리 글에는 ‘나’가 반복되지 않음을 유념해야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번역문] 이제는 새로운 독자들이 이 책을 찾아올 때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작가 알베르 카뮈가 쓴 추천사의 일부다. 이 글에 매료돼 추천된 책을 읽었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도 그런 독자였다. 그가 권한 〈섬〉은 장 그르니에의 수필집이다. ‘나’가 들어간 부분을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네 군데 중 한 곳에서는 ‘나’를 지우면 어떨까. ‘~ 나의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를 ‘~나의 방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로 바꾸는 대안이 있다. 글쓰기에 관심을 두었다면 글에 ‘나’를 자주 쓰지 않았나 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말은 기본적으로 ‘나’를 생략한 채 문장을 이어가고 그런 우리말로부터 글이 크게 벗어날 경우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최근 쓴 수필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나’가 한 군데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원문] 나이 스물을 넘기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가지고 갈 책이 없었다. 수많은 일본어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글로 쓴 책은 없을 것 같았다. 또 잊을 수 없는 고향을 떠나면 조국과 멀어질 것 같은 아쉬움도 있었다.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을 갖고 가기로 했다. 갖고 떠난 단 한 권의 책이다. 그립고 허전한 시간이 생기면 한두 편씩 읽었다. 방학이 되어, 고향에 다녀갈 때는 다른 일본어책과 함께 전당포에 맡겨 두곤 했다. 몇 권의 전문 서적이 늘어나면서 『님의 침묵』은 외로이 일본어책들 가운데 끼어 있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언제 어디서 자취를 감추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출처: 김형석, 새해 되면 105세, 인생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가, 중앙일보, 2023.12.22.

‘나는’을 생략하지 않은 글은 다음처럼 된다. 부자연스러움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나는 문단]나는 나이 스물을 넘기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가지고 갈 책이 없었다. (중략) 나는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을 갖고 가기로 했다. 갖고 떠난 단 한 권의 책이다. 나는 그립고 허전한 시간이 생기면 한두 편씩 읽었다. 나는 방학이 되어, 고향에 다녀갈 때는 다른 일본어책과 함께 전당포에 맡겨 두곤 했다. (하략)

카뮈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의 글은 우리말로 옮겨져서도 독자들을 강력하게 끌어당긴다. 그렇지만 서구 언어는 ‘나’를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반면 우리말은 ‘나’를 전제로 흘러감을 고려할 때, 원문의 ‘나’를 한두 군데 생략한 대안이 더 술술 읽힌다. 이 차이는 추천사 중 다음 대목에서 더 두드러진다. 위 인용문보다 더 짧은 분량에 ‘나’가 더 자주 반복됐다.

[번역문] 내가 〈섬〉을 발견하던 무렵쯤에는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이 진정으로 나의 결심이 된 것은 그 책을 읽고 난 뒤였다. 다른 책들도 이 같은 결심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그 역할을 끝낸 다음에는 나는 그 책들을 잊어버렸다. 그와는 달리 이 책은 끊임없이 나의 내부에 살아 있었고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나’를 솎아내면서 추가 퇴고도 할 수 있다. ‘무렵쯤’은 중첩 표현이다. ‘무렵’으로 충분하다. 추천한 책이 ‘그 책’과 ‘이 책’으로 이중으로 지칭됐다. ‘이 책’으로 통일하면 좋겠다. 다음 [대안]을 [번역문]과 비교해보자.

[대안] 〈섬〉을 발견한 무렵,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한 것 같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이 진지한 결심으로 굳어진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뒤였다. 다른 책들도 그 결심에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일단 그 역할을 끝낸 다음에는 잊히고 말았다. 그와 달리 이 책은 끊임없이 내 안에 살아 있었고, 이십 년이 넘도록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다.

글 중 ‘나’라는 동일 주어가 반복될 경우 생략해도 된다는 원칙에 따라 지울 수 있다. 또 필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경우라면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있다. 예컨대 다음 두 문장에서 ‘나’는 일반론을 펴기 위해 활용된 주체이다. ‘나’는 ‘우리’로 바꿔도 된다. 즉, ‘그 대신 우리가 올해 악기를 하나 배웠고 ~~~ 그 자체로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 쌓이게 된다’고 쓸 수도 있다. 영어에서는 이런 경우 흔히 ‘당신(you)’이 동원된다. 앞에 주어를 생략하고 ‘그 대신 올해 악기를 하나 배웠고 ~~~ 그 자체로 자신에게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 쌓이게 된다’고 서술해도 된다.

[원문]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그저 회사에 다니고 돈을 벌고 돈을 쓰기만 했다면 아무래도 허무감이 클 수 있다. 그 대신 내가 올해 악기를 하나 배웠고, 운동을 하나 시작했고, 좋은 책을 읽고 독서 기록을 남겼다면 그 자체로 내게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 쌓이게 된다.

필자가 자신을 주어로 드러내야만 하는 자리에서도 ‘나’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필자’라로 쓰는 것이다. 출판계에는 ‘필자’라는 단어 뒤에 숨는 이 서술 방식을 못마땅해하는 의견도 있다. 이런 기법에는 ‘나’보다 ‘필자’를 통해 서술에 객관성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면 더 그럴듯해 보이는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나는 ‘필자’라는 일종의 대명사에 대해 중립적이다. ‘필자’를 활용함으로써 서술자가 대상과의 거리를 두는 효과도 있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더욱 객관성을 띤 형식을 구사하는 필자도 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장기에 걸쳐 탐사 보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게 한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그렇게 했다. 이들은 워터게이트 탐사보도 후기인 〈대통령의 사람들 모두 All the President’s Men〉에 자신들을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서술했다. 예컨대 ‘그것은 칼과 밥이 처음으로 함께 쓴 기사였다”고 썼다.

내가 일간지에 연재하는 원고의 에디터는 ‘나’보다 ‘필자’를 선호한다. 가끔 ‘나’를 쓰던 필자도 그에 따라 이제 ‘필자’라고 원고를 작성한다. ‘내가’가 ‘필자가’로 퇴고된 초고는 다음과 같다.

[초고] 이어 등장한 번역 방식이 인공지능(AI)을 적용한 ‘신경망 기반 자동번역’이다. 과거에 비하면 향상됐지만 이 자동번역도 넘지 못한 벽이 있다. 그중 하나가 ‘위노그라드 스키마 챌린지’다. 간단히 말하면, ‘문장 속의 대명사를 정확하게 옮기는가’이다. 다음 문장의 ‘they’는 시의원들이다.
[원문] The city councilmen refused the demonstrators a permit because they feared violence.
이를 내가 2017년에 AI 번역기한테 작업시킨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구글] 시의회 의원들은 폭력을 두려워 시위자들에게 허가를 거부했다.
[파파고] 시의원들은 시위자들이 폭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허가를 거부했다.

이 건에서는 구글이 조금 나았지만, 다른 문장은 네이버가 상대적으로 더 잘 옮겼다. 결론적으로 두 번역기 모두 위노그라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객관화의 다른 기법도 있다. 생략된 주어 ‘나’로써 ‘내 생각’을 펼 수도 있지만, 그 생각이 타당하다면 구사할 수 있다. 비생물을 주어로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의문문을 활용하는 것이다.

[원문] 자신감 넘치는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보그>의 애나 윈투어를 모델로 삼았다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생각났습니다. (중략) 인터뷰를 마치며 문득, 탐미적인 글에 스며 있는 허무의 흔적은 화려한 세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한겨레, 악마는 화려한 자존심을 입는다, 2013.03.01.

‘자신감 넘치는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 생각났습니다’는 ‘자신감 넘치는 그의 이야기는 ~~~를 떠올리게 한다’로 바꿀 수 있다. 들은 사람이 여럿이고 공감대가 형성됐다면 ‘자신감 넘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를 떠올린다’고 써도 된다. 마지막 문장은 ‘탐미적인 글에 스며 있는 허무의 흔적은 화려한 세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아닐까’라고 바꿀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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