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1초’ 향한 집념… ‘미래’ 를 알기 위해서였다[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4. 1. 5. 09: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1초의 탄생
채드 오젤 지음│김동규 옮김, 김범준 감수│21세기북스
인류 공통의 관심사 ‘시간측정’
혼란한 세상에 질서 부여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것
시간은 과학·기술 발전 집약체
사회적 이해·우선 순위도 반영
지식 넘어 철학적 사유 이끌어
게티이미지뱅크

새해, 안부를 전하고 덕담을 나눈다. 문득 세월 참 무정하고, 시간 참 무심하다 싶다. 연초는 그렇다. 가는 세월, 흐르는 시간에 새삼 집중하게 되니까. 대략 30일로 이뤄진 ‘한 달’이 열두 번 반복했다. 1년이, 365일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다시 주어진 하루, 24시간. 그런데 왜 1년은 365일이고, 하루는 24시간인가. 너무 당연해서 평범하게 느껴지는 이 질문을 계속 파고 들어가다 보면 1시간은 왜, 1분은 왜, 1초는 왜? 하는 궁금증에 봉착한다. 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언제부터 ‘흐름’을 인식하고, 그것을 재게 됐나. 무엇보다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시간’이란, 얼마나 정확한 것일까.

‘1초의 탄생’은 이에 답하는 책이다. 물리학자인 저자는 고대 유적지로 우리를 초대하더니, 해가 길고 짧은 날을 아는 것이 생존의 문제였던 옛사람들 속으로, 또 달과 별의 위치에 천착하던 천문학의 시대로, 그리고 물과 모래를 활용한 시계가 등장하던 때를 오가며 ‘시간’ 여행의 안내자를 자청한다.

시간의 측정은 대항해 시대를 통과하며 더욱 대중화됐고, 지금의 원자시계로 대표되는, 즉 현대인들이 합의하고 공유하고 있는 ‘1초’라는 단위가 탄생하게 된다. 책에 따르면 그것은 “세슘-133 원자에서 방출되는 전기파가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시간”이며 ‘표준 시간’의 성립, 사회적 합의 과정의 결과물이다. 책에는 그 길었던, 그리고 집요하고 치열했던 시간 탐구의 여정이 오롯이 담겼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시간 측정의 역사와 함께한 천문학, 수학, 물리학, 양자역학 등 과학 발전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책은 ‘시간’을 중심으로 한 인류 문명의 발자취다.

시간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일은 인류 공통의 관심사였다. 책은 그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로 영국의 뉴그레인지 유적을 소개한다. 여전히 누가 지었는지, 어떤 용도였는지 베일에 싸인 이 신석기 시대 건축물이 그 자체로 시계였다는 것. 저자는 뉴그레인지 석실분 중앙 묘실의 구조가 하지와 동지를 알려주는 장치였다고 말한다. 이는 1960년대 한 아일랜드 발굴팀에 의해 증명됐는데, 이 중앙 묘실에 1년 중 단 하루만 자연광이 들어오고, 그게 바로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이다.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북동-남서 방향으로 배치된 스톤헨지 삼석탑 역시 하지의 일출과 동지의 일몰을 바라보도록 설계됐다. 이에 대해 책은 신석기 농경사회에서 태양의 움직임으로 동지나 하지를 예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고, 그것은 당시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였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시간 측정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초점이 있다. 혼란한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하여 인류에겐 언제나 더 정밀하고, 더 정확한 ‘1초’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기원전 2000년 마야인들이 금성의 움직임으로 전쟁의 기운을 점친 것도, 유럽의 수학자들이 더 넓은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달의 위치를 계산하는 모델을 만든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인다.

완벽한 ‘1초’를 향한 인류의 집념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렇다고 책이 과학과 기술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에 몰입하게 하는 이 책의 최고 강점인데, 독자들은 인류의 모든 과학적 노력이 집약된 결과물이 시계라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시간이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을, 시간 측정을 위해 고안된 장치나 개념에 한 사회의 이해와 우선순위가 녹아 있는지를 깨우치는 것이다. 이는 정치와 종교, 철학을 아우르는 문제로, 달의 위상을 높게 두는 이슬람력(태음력), 계절의 변화에 집중한 로마의 율리우스력(태양력), 그리고 이 둘의 균형을 추구한 히브리력(태음태양력)등 다양한 역법이 조금씩 불완전하고 불편하게 공존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각 문명의 복잡한 역법 체계의 사회적 측면, 1500년이나 사용된 율리우스력이 1582년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변경되는 신학적 배경에 대해서도 짚어낸다. 이어 미국의 철도 시간 확립 과정과 표준 시간 정립과의 관계, 현대 시간대 체계를 가속했던 정치적 협상까지 차근차근, 생생하게 풀어내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자르고 나누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 인류의 발명인지, 우리 삶을 지배하는 ‘몇 시 몇 분 몇 초’가 얼마나 오랜 세월의 분투가 깃든 작품인지를 알게 된다. 동시에 책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세계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와 시공간의 속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바탕을 만들어 주며 말이다.

시간의 혁명적인 발전, 발견의 순간에 낯익은 이름들이 존재하기에 책을 읽기 한결 수월하다. 그것이 이 책의 묘미 중 하나이기도 한데,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으로 시간 측정에 전환점을 만들어 준 아이작 뉴턴, 갈릴레오와 아인슈타인, 화성의 궤도를 구한 케플러, 목성과 토성의 교차 장면을 관측한 튀코 등이다. 책은 천재들뿐 아니라 ‘장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도 시간의 역사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제임스 쿡의 항해에 필요한 시계를 제작해 준 존 해리슨과 같은 천재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물리 및 수학 공식을 개발해 낸 이들이다. 저자의 꼼꼼한 소환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우리의 과학적 상식과 정보, 지식이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게 된다.

20세기 전반, 시간 측정은 양자역학으로 인해 그 정밀도가 오늘날의 수준에 이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그것은, 영원할까. 저자는 10억 년이 지나야 겨우 1초 정도의 오차가 생긴다는 ‘세슘 원자 시계’도 가장 좋은 시계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론적으로는 가시광선이나 빛의 진동 주파수를 통해 이보다 100배 더 정확한 시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게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말이다. 492쪽, 2만8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