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연대와 공존의 힘으로” 희망 만드는 협업 출판

양선아 기자 2024. 1. 5. 05: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개 출판사 공동기획 ‘너는 나다―십대’
브랜드 효과 창출해 독자에게 좋은 반응
“서로에게 자극…출판 다양성도 높여”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카페 빈틈 엠(M)에서 기획회의를 마친 10개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가 새해 힘찬 도약을 소망하며 각자 만든 책을 들고 “파이팅”을 외쳤다. 철수와영희, 북치는소년, 보리, 갈마바람, 마리북스, 리얼부커스, 자연과생태, 학교도서관저널, 아이들은자연이다, 히포크라테스가 공동 기획한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는 인문·사회·생태·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낸다.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 세트
‘청소년을 위한 인권 수업’ 외 6권
보리 포함 10개 출판사 공동기획 l 각 권 1만5000원

“‘밥과 경제’라고 가제를 지었는데 ‘올드’하다고 해서 ‘묻고 따지고 즐기는 경제학’으로 가려고요. ‘묻따즐’ 괜찮지 않나요? 청소년 대상 경제 입문서인데 돈이라는 것이 어떻게 탄생했고,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의 역사와 구조를 실물경제 현상과 연결해 따져보려고 합니다.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되 고등학교 저학년까지로 난도를 올리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10대들이 보니까 삽화나 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은데 제작비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지난달 22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안에 자리잡은 카페 빈틈 엠(M) 안 회의실. 소형 출판사 리얼부커스를 운영하는 전길원 대표가 기획안을 손에 들고 발표 중이다. 이날 회의는 10개 출판사가 공동 기획한 청소년 교양 시리즈 ‘너는 나다―십대’의 기획안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출판사 대표·편집자 12명이 모여 앉아 다른 이가 가져온 출간 주제와 기획 의도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전 대표의 발표에 박정훈 철수와영희 대표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학생 독자들을 염두에 둔 시리즈인 만큼 처음에 정한 독자 범위로 가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다른 관계자들도 삽화 활용에 대해 의견을 냈다. 회의에서는 책들의 판매 현황은 물론 공동 마케팅 방안, 최근 출판 시장 흐름 등도 공유됐다.

출판사들끼리는 출간 주제를 숨기려 하거나 좋은 저자를 자신의 출판사로 끌어당기기 위해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10개의 출판사가 어떻게 이렇게 한데 모일 수 있었을까. 이경희 보리 편집부장은 “2020년 5월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해 10개의 출판사가 모여 전태일을 응원하는 ‘너는 나다’ 시리즈를 출간했는데, 그때 함께했던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전태일의 ‘풀빵 정신’(전태일은 자신이 허기져 있었는데도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곤 했다)을 담은 청소년 교양도서 시리즈를 함께 내보자고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권의 책이 나왔고, 올해에도 4월(3곳), 7월(4곳), 10월(3곳)에 걸쳐 책이 출간될 계획이다.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처럼 협업 출판을 통해 출판사들끼리 ‘연대와 공존’을 모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협업 출판은 2017년부터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가 합심해 만드는 ‘아무튼’ 시리즈부터 본격화됐다. 2022년엔 부산 소재 출판사 7개사가 공동으로 ‘비치 리딩’(Beach Reading) 시리즈를 냈고, 강원도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등 전국 각지의 출판사들이 지역성을 발휘해 ‘어딘가에는 @있다’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협업 출판이 느는 이유에 대해 출판 전문가들은 출판 환경이 악화되면서 출판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2022년 기준,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출판사 수는 7만5324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전체의 87.7%(6만6043개)에 이르는 출판사가 당시 1년 동안 무실적이었다. 한 해에 1~5종의 책을 발행하는 소규모 출판사도 전체의 9.1%(6891개)나 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자본력과 마케팅력이 있는 큰 출판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버티지만, 소형 출판사는 책을 내 시장 반응이 좋지 않으면 다음 책을 내지 못하고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자본력과 마케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협업, 단행본 낱권을 출간하기보다 협업을 통해 브랜드 효과를 창출하고 사회적 주목도를 높이려는 협업이 늘고 있다는 것.

실제로 ‘너는 나다―십대’ 시리즈에 참여한 출판사들의 판매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기후 정의, 재생에너지 등을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본 ‘인권으로 살펴본 기후 위기 이야기’는 지난해 3쇄까지 찍었고, 청소년의 자아존중감과 회복탄력성에 관련한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도 2쇄를 찍었다. 정은영 마리북스 대표는 “출판사 단독으로 하기엔 부담스러워 못 했던 마케팅이나 광고도 열개 출판사가 함께 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가 컸다”고 평가했다.

‘너는 나다―십대’ 기획은 특히 한번 책을 내고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형·중형·소형 출판사가 고르게 참여해 매달 한번씩 공동 기획회의를 하고 돌아가면서 계속 책을 내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이 다른 기획과 차별화된다. 이러한 협업은 급변하는 시대에 출판사 관계자들이 모임을 통해 새로운 정보는 물론 자극도 받고, 새로운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10개 출판사 관계자들이 공동 기획을 하고 있는 모습.

이경희 보리 편집부장은 “보리에 10년 있으면서 청소년책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는데, 이 안에 있으면 한 해 한권 이상씩은 기획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또 평일·주말 가릴 것 없이 책과 관련해 다양한 것을 실행하고 노력하는 ‘1인 출판사’ 대표들에게 많은 자극도 받는다”고 말했다. 성인책만 출판해온 리얼부커스 전 대표는 이 기획에 참여하면서 청소년책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협업 출판은 또 신생 출판사에 ‘출판학교’로서 몫도 한다. 이민호 북치는소년 대표는 “후발 출판사로서 모임에서 정보를 많이 얻었다”며 “제게 이 모임은 출판학교”라고 평가했다. 이제용 갈마바람 대표도 “소형 출판사라 원고나 기획, 아이디어에 대해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받기 힘든데, 원고나 표지 시안을 공유하고 평가를 들으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협업 출판은 출판 다양성을 높여 독자에게는 더 풍요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너는 나다―십대’만 해도 생태 전문 출판사가 합류해 시리즈 주제의 다양성을 높였다. 조영권 자연과생태 대표는 “자체적으로 판단했을 때 생태 분야에서 청소년 시장은 없다고 봤고 이 기획이 아니라면 청소년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해 ‘도시 오목눈이 성장기’는 판매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우리 출판사가 이 시리즈에 참여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다양하고 넓은 세계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