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히 살해된 여성…"죽였지?" 고문에 두 가장의 21년 사라졌다[뉴스속오늘]

류원혜 기자 2024. 1. 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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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한 최인철씨(왼쪽)와 장동익씨가 2020년 1월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사진=뉴스1
34년 전인 1990년 1월 4일. 부산 낙동강변에서 데이트하던 연인이 괴한 2명의 습격을 받았다. 남성은 가까스로 도망쳐 목숨을 건졌지만,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현장에서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다.

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은 1년 10개월 뒤 범인이 검거되면서 풀리는 듯했다. 절친한 사이였던 이들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그런데 경찰이 누명을 씌우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재조사 결과 경찰이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졌다. 21년여간 옥살이를 마치고 모범수로 출소한 두 남성은 재심을 청구했고, 사건 발생 31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낙동강변 데이트하던 연인…시신으로 발견된 여성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사건 당일 새벽 1시30분쯤 부산 사하구의 낙동강변 도로에 주차된 차 안에서 30대 남녀가 추운 날씨를 피해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남성 A씨는 뒷좌석에 누웠고, 여성 B씨는 잠시 차에서 내렸다.

그때 괴한 2명이 갑자기 차 문을 열고 A씨의 얼굴을 돌로 가격했다. 이들은 돌아온 B씨도 차에 태운 뒤 사상구로 이동했고, 공업용 테이프로 A씨의 손목을 뒤로 묶은 채 낙동강에 밀어 넣었다. A씨는 괴한 중 한 명과 물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테이프가 풀렸다.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도망친 A씨는 인근 공장에 숨어 있다가 직원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B씨는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상의는 말려 올라가 있었고, 하의도 절반쯤 벗겨져 있었으며 두개골은 부서진 상태였다.

B씨는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근처에 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범행 현장에서는 B씨 시신 외에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유일한 목격자였던 A씨는 사건 당시 어두워서 범인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A씨가 기억하는 것은 범인 중 한 명은 체격이 컸고, 다른 한 명은 체격이 작았다는 정도였다. 또 이들이 자신의 상의를 벗겨 몸을 결박하려고 해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직접 말해줬다는 것뿐이었다. 경찰은 A씨의 진술 등을 토대로 수사에 나섰지만,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고문에 털어놓은 거짓 자백…살인범 된 두 가장
이듬해였던 1991년 11월 범인들이 검거됐다. 부산에 살던 평범한 두 가장이자 친구 사이였던 최인철씨(당시 30세)와 장동익씨(당시 33세)였다. 한 명은 체격이 컸고, 한 명은 체격이 작았다.

당시 '부산시 자연보호 명예감시관'으로 활동했던 최씨는 차량 통제 지역이었던 낙동강 을숙도를 관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무면허로 운전 교육하던 남성이 최씨를 경찰로 오해해 "봐달라"며 3만원을 건넸고, 최씨가 이를 얼떨결에 받은 것이 화근이 됐다.

경찰은 '공무원을 사칭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뺏겼다'는 신고를 받고 최씨를 붙잡았다. 함께 있던 장씨도 경찰서로 끌고 왔다. 그런데 공무원 사칭으로 시작된 추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됐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최씨와 장씨는 가혹한 물고문을 당했다. 쇠 파이프를 다리 사이에 끼워 일명 '통닭 자세'로 매달리기도 했다. 잠도 잘 수 없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에 두 사람은 하지도 않은 살인을 했다고 인정했다. 최종 수사 결과 체격이 더 큰 최씨가 각목으로 피해자를 구타한 뒤 장씨가 돌로 살해한 것으로 정리됐다.

그때는 과학수사가 발달하지 않아 용의자의 자백이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 이들은 1심과 2심, 대법원까지 이어진 재판에서 한결같이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외면했고, 두 사람은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두 사람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장씨는 강력 범죄를 저지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장씨가 시신경이 위축되는 질환으로 장애 판정을 받을 만큼 시력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현재 시력이 나쁜 것은 인정하지만, 2년 전에는 좋았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의 가족도 사건 관련 증언을 했다가 위증죄나 위증교사죄로 기소돼 옥살이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35년 변호사 인생에서 가장 한이 많이 남는 사건"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2월 24일 영화 <재심>을 관람하기 전에 과거 변호했던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자 장동익씨(가운데), 그의 재심을 추진했던 박준영 변호사와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청년에서 중년으로…사건 31년 만에 '무죄'
최씨와 장씨는 21년 6개월간의 수감 생활 끝에 2013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청년이었던 두 사람은 중년이 됐다. 그동안 장씨의 어머니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재심 전문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2017년 5월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장씨 어머니가 끝까지 가지고 있던 '사건기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재심 과정에서 최씨와 장씨는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과 검사를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을 기소하고 무기징역을 구형했던 검사는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한 최인철씨(왼쪽)와 장동익씨가 2020년 1월 6일 부산 연제구 부산고법 301호에서 열린 재심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소회를 밝히고 있다./사진=뉴스1

재조사에 착수한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는 2019년 4월 "경찰이 고문과 폭행으로 자백을 받아내 범인을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부산고법은 2020년 1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경찰은 1991년 수사 당시 최씨와 장씨의 얼굴에 수건을 덮은 채 겨자 섞은 물을 붓는 등 고문하면서 "강도질 했지? 여자 죽인 적 있지?"라며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2021년 2월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 발생 31년 만이었다. 재판부는 "법원이 인권의 마지막 보루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다만 최씨가 공무원을 사칭해 3만원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는 선고를 유예했다.

경찰과 검찰, 법원은 공식으로 사과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판결은 확정됐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장동익씨와 최인철씨가 4일 오전 부산 연제구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박준영 변호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1.2.4/뉴스1

무죄가 확정되자 최씨와 장씨는 국가를 상대로 116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22년 9월 국가가 두 사람과 가족들에게 7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법무부는 항소를 포기했다.

무죄 선고 이후 경찰청은 "당시 적법 절차와 인권 중심 수사 원칙을 준수하지 못해 부끄럽다. 큰 상처를 드려 깊이 반성한다"고 사과했다.

사건 재수사는 어려운 상황이다. 강도살인 공소시효 15년이 일찌감치 지났기 때문이다.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였던 남성 A씨도 사건 발생 2년 뒤인 1992년 지병으로 숨졌다. 진범이 나타나 자백하지 않는 이상 해당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을 전망이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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