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점은, 오로지 완벽한 불행? 약한 건-악한 거니?

한겨레21 2024. 1. 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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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또 작가의 <가담항설> 은 내가 가장 애정하는 웹툰 중 하나다.

이 웹툰을 처음 추천해준 사람이 가타부타 부연 설명 없이 그냥 꼭 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사람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고, 그 말을 정제된 단어를 사용해 글로 적으면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며, 그 의미를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7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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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소사이어티]보고 또 보는 애정 웹툰, ‘아는 것이 힘’인 세계 그린 랑또 작가의 <가담항설>
네이버 웹툰 갈무리

랑또 작가의 <가담항설>은 내가 가장 애정하는 웹툰 중 하나다. 이 웹툰을 처음 추천해준 사람이 가타부타 부연 설명 없이 그냥 꼭 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 웹툰을 본 것은 10년 조금 넘게 웹툰을 본 역사 중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다. 결말이 마음에 꼭 들지 않는데도, 내용이 워낙 강렬하고 깊이가 있어 전 화를 소장해놓고 지금도 종종 ‘정주행’한다. 만약 만화를 종이로 처음 접했다면 모서리가 닳도록 읽었을 것이다.

<가담항설>은 말과 글의 힘에 대해 말하는 웹툰이다. <가담항설>에서는 ‘아는 것이 힘’이 된다. “사람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는 특별한 힘이 있고, 그 말을 정제된 단어를 사용해 글로 적으면 더욱더 큰 힘을 발휘하며, 그 의미를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비로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7화) 것이다. 예를 들어 물건을 아까워하고 고치는 내용에 대한 글을 종이에 적어서 망가진 물건을 고칠 수 있다. 또 물건이 다시는 망가지지 않도록 강하게 만드는 뜻의 글자를 물건에 새겨서 강하게 만든다. 나아가 글을 쓰지 않고도 체화된 기술을 사용해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거나 할 수 있는 세계다.

이토록 환상적인 원리를 가지고 돌아감에도 이 세계는 피폐하다. 과거 천재지변을 다스리는 용은 인애의 ‘춘매’, 양심의 ‘하난’, 지성의 ‘추국’, 원칙의 ‘동죽’으로 이뤄진 사군자를 두어 인간적이면서도 완벽한 신으로 군림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에게 배신당해 인애(춘매)를 잃고 인간에 대한 증오로 더는 인간을 위한 통치를 하지 않는다. “지켜지지 않는 원칙과 명확하지 않은 규칙으로 어둠 속에서 눈을 멀게 하고, 단 한 번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처절한 처벌로 한 걸음도 섣불리 내딛지 못하게 하며 불공정한 기회와 불공평한 결과로 포기와 체념에 익숙해지게 하”(78화)여 그들을 영원히 괴롭게 하려 한다.

이처럼 어둡고 불행한 세상에서 왕에게 간언하기 위해 과거를 보러 가는 인물 ‘명영’을 특히 좋아한다. 명영은 목매단 어머니의 모습을 어린 나이에 직접 봤고, 과거를 보기 위해 남장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는, 이름답고 밝은 사람이다. 자신의 노비이자 벗인 ‘복아’에게 하는 말에서 명영의 성품이 잘 드러난다. “복아야. 강해져야 하는 이유는 약하면 안 되기 때문이니? 우리의 고통은. 우리의 약점은, 오로지 완벽한 불행일 뿐일까? 약한 건- 악한 거니? 인간은 누구나 약해. 어느 부분이, 어느 순간이, 반드시 약해. 인간은. 완벽한 인간이란 건 없어. 하지만 나의 약점은, 나의 불행은,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되게 만들지. 그리고 그건 날 강하게 만들어. 네가 소중하니까. 너를 위한 강한 내가 되는 거야. (…) 그 길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내가 되는 것. 그게 나의 신념이야.”(69화)

고등학교에서 ‘시창작’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은 시는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사실 나의 모든 글쓰기 스승이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특히 시처럼 복잡하고 뜬구름 잡는 듯한 은유가 가득한 글에서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담항설>에서는 대부분의 대사가 시적이었고, 은유적이었고, 그래서 정확했다. 왕에게 간언했다가 목숨 잃은 정인을 둔 ‘홍화’는 비슷하게 권력자에게 동생들을 잃어 홍화와 함께 복수를 꿈꾸는 처지의 ‘정기’에게 글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한다. “책을 읽고 풍부한 단어를 알게 된다는 건, 슬픔의 저 끝에서부터, 기쁨의 저 끝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의 결을 하나하나 구분해내는 거예요. 정확히 그만큼의 감정을 정확히 그만큼의 단어로 집어내서 자신의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거죠.”

신채윤 <그림을 좋아하고 병이 있어> 저자

*웹툰 소사이어티: 희귀병 다카야스동맥염을 앓는 스무 살의 작가가 인생의 절반을 봐온 웹툰의 ‘심쿵’ 장면을 추천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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