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약자’ ‘카르텔’ 호명에 담긴 윤석열 정권의 분리통치···조문영 “빈곤은 이벤트·브랜드화 아니라 철폐·종식 대상”

김종목 기자 2024. 1. 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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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영(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은 지난해 크게 주목받은 학자 중 한 명이다. 연말 <빈곤 과정>(글항아리)은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제자들로 구성된 ‘빈곤의 인류학’ 연구팀 글을 엮은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글항아리)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했다. 두 책에 관한 학술계 리뷰도 이어졌다. 학문적 성취는 20여 년을 빈곤 연구에 매진한 결과다.


☞ [책과 책 사이]빈곤과 급진적 변화에 대한 열망···조문영의 빈곤 연구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12011435001

대학생일 때 서울 봉천동 공부방 교사 활동부터 최근의 동자동 공공개발 연구까지를 두고 ‘학문과 삶이 일치한다’는 평가도 있다. 조문영은 이를 곤혹스러워한다. 서울대에서 석사 학위를,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연세대에서 ‘정규직 교수’로 일하는데도, 빈곤을 오래 연구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온 평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자신을 종종 ‘모순적 존재’로 여긴다.

연구로 모순의 상황을 극복하려는 조문영이 거듭 강조한 단어는 ‘마주침’ ‘개입’ ‘배치’다. 그는 말과 말, 글과 글, 몸과 몸이 부딪치는 ‘마주침의 현장’을 중시한다. 현장 위주인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도 마주침을 위해서다. “개입하면 바뀐다”는 신조로 연구한다. 마주침과 개입은 연루(連累/緣累)와 이어진다. ‘남이 저지른 범죄에 연관됨’이라는 사전 뜻이 아니라 잇닿고(連), 인연을 맺으며(緣), 묶어내는(累) 감각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는 “‘관심의 원’ 바깥에 머물렀던 존재들을 새롭게 환기”하려 한다. 배치는 “빈곤 책임이 ‘나’한테 있을 수 있고, 사람들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연결된다는 걸 환기”하는 개념이다.

지난달 22일 서울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1980년대 초등학생일 때 목격한 목동 재개발 현장부터 온정주의로 ‘우리/그들’을 분리하는 ‘윤석열 정권의 약자 복지’ 문제까지 들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지난달 22일 서울 연세대 캠퍼스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빈자에 대한 빈자의 적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기생충>

- 여러 글에 <기생충> 같은 빈곤을 다룬 영화를 인용하셨는데요.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대학(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다닐 때 영화 동아리 ‘씨네꼼’을 했어요.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등 동아리 창립 멤버들이 지금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그때 진짜 영화를 많이 봤어요. 독립 영화 보급하고, 영화 비평도 했어요. 퀴어 영화제도 열었죠. 1990년대였는데, 사람들이 퀴어가 뭔지도 몰랐던 때죠. 혐오란 말도 없었고요. 커밍아웃하는 친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던 때였죠.

-빈곤 연구 학자로서 <기생충>은 어떤 영화인가요

“‘빈자에 대한 빈자의 적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작품이죠. 굉장히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라는 감각을 잘 표현했어요. 영화에서 냄새는 상층과 하층의 위태로운 공존을 위협하는 매개입니다. 예를 들어, 기택(송강호)의 냄새를 박 사장(이선균)이 ‘행주 삶는 냄새’ ‘가끔 지하철 탈 때 맡는 냄새’라 묘사하는 대목이 그렇죠.”

조문영은 ‘한겨레 세상읽기’(2020년 1월 15일)에 ‘빈곤에 기생하는 사회’라는 칼럼을 썼다. 2013년 연세대가 경제 논리를 앞세워 일명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라는 캠퍼스 대공사를 강행한 일을 다뤘다. 당시 개발에 반대하는 움직임에 봉준호도 힘을 보탰다. 공사가 끝난 뒤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인원 감축에 따른 업무 증가에 맞서 백양로에서 ‘외로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조문영은 “그들의 몸뚱이 위로 ‘자랑스러운 동문 봉준호’를 기리는 펼침막이 펄럭이는 장면을 그가 정말 원할까?”라고 적었다.

“백양로 공사 이슈가 커 반대 시위도 많이 했죠. 조한혜정 선생님이 밖에서 텐트 치고 수업하고 학생들과 영화제도 열었어요. 사회학과 제자인 봉 감독님이 직접 와서 영화평도 해줬죠. 연세대 안의 또 다른 저항의 흐름이었는데, 대학 본부는 ‘우리 봉준호’ 한 거죠.(웃음)”

부자 의존은 당연시, 빈자 의존은 죄악시

- 연구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빈곤 과정>의 핵심이 ‘빈곤 레짐’인데, 쉽게 풀어주신다면요.

“물질적 결핍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었죠. 빈민을 언급하든 빈곤이라는 주제를 논하든, 우리는 세상 모든 가난을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빈곤, 어떤 빈민을 특정화해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이게 레짐(regime, 체제)의 산물이라고 봐요. 행위자는 담론이든, 제도든, 법이든 다양한 요소들과 계속해서 엮이면서, 즉 이 레짐 안에 살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자각하거나, 세상이 나를 규정하는 시선을 느끼게 되죠. 빈곤 레짐은 제도, 법규, 지식, 기술 등 일련의 장치들이 행위자와 관계를 맺는 가운데 특정한 주체(성)가 형성되는 장입니다. 빈곤에 대한 인식과 감각의 형성도, 빈곤 경험의 재현과 빈곤 문제의 공론화도 모두 한 시대의 빈곤 레짐과 관계하면서 이루어지죠.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국민기초생활 보장제도를 중심으로 한 ‘수급 레짐’으로 ‘빈곤 통치’가 이뤄지죠. 이런 상황이라 사람들이 빈곤을 얘기할 때 굉장히 쉽게 바로 복지와 엮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몸이 아픈데 ‘수급을 타려면 자활 일을 해야 한다’라고, 수급의 언어로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죠. 빈곤 레짐의 언어와 문법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거죠. 전 세계 가난을 두고도 사람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얘기하고 특정한 접근을 주문하죠. 레짐은 그런 점을 얘기하기 위해서 썼던 표현이에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공공부조 수급 레짐에선 사람들이 빈자의 전형으로 난민보다 수급자를 먼저 떠올리고, 쪽방촌 주민이 왕왕 수급의 언어로 가난을 드러냅니다.”

-빈곤 레짐과 관련해 의존 문제도 여러 차례 지적하셨는데요.

“의존(성)은 장애학, 여성학에서 오랫동안 비판적으로 다뤄왔습니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부자의 의존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못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사업이 휘청거리면,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구제하려고 하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 연방 정부가 (기업들의) 천문학적 액수의 빚을 탕감해준 거잖아요. 그것도 다 ‘의존’인 거죠. IMF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의존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의존하는 걸 못 느끼고, 그걸 너무 당연시할 뿐이죠. 국민연금, 건강보험도 정부가 일정 부분 다 지원하는데, 항상 가난한 사람들한테 주는 보조금이나 실업급여, 산재 보상금 같은 것만 문제 삼죠. 정부의 부채탕감이나 연금 보조 같은 형태로 이뤄지는 부자나 중산층의 의존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수급 의존을 ‘나태’니 ‘부정수급’이니 ‘도덕적 해이’니 하며 더 죄악시하죠. 빈자의 의존, (의존하는) 빈자의 품성만 문제 삼는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인 거죠.”

한때 동질적이었다가 지금은 이질적인 ‘빈곤’, 그리고 혐오

- 빈자 혐오와 이어지는 문제인 듯한데요.

“코로나 지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혐오와 낙인.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잔혹한 온라인 댓글로, 집요한 민원으로, ‘묻지마 폭행’으로 배설하는 세상이 됐어요. 빈곤이나 빈자에 대한 감각도 달라졌죠. 예전에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를 다 같이 봐야 하는 영화로 여겼죠. <꼬방동네 사람들>(1982)은 자기 사는 마을 모습이기도 했어요.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였죠. 빈곤은 우리 삶 자체였고요. 빈곤을 ‘우리와 저들’로 구분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다룬 거죠. <기생충>(2019)이나 <똥파리>(2008) 같은 영화를 보면 빈곤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등장하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정말로 ‘저들’이 되는 거죠. 한국이 이른바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 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타자가 되었어요. ‘빈곤의 인류학’ 수업에서 한 학생이 ‘자기가 대학 와서 장애나 여성, 퀴어 주제는 공부도 많이 하고 익숙한데, 빈곤이라는 주제는 너무 낯설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빈곤을 쉽게 정의 내리고, 해법을 제시해선 안 돼

-빈곤이란 게 어려운 주제이자 개념인 듯한데, 정의를 내려주신다면요.

“너무 어려운 작업이죠. 누구나 그 정의가 만만한 작업이 아니라고 느끼면 좋겠어요. 한편에서는 빈곤을 자본주의 구조적인 모순에 따른, 물질적이고 실존적인 결핍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러나 결국에는 빈곤이 어떤 사건으로 등장을 하는가, 어떤 빈자가 등장하느냐는 문제에 우리가 모두 연루돼 있어요. 빈곤을 쉽게 정의하고 해법을 내놓는 유혹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어떤 힘들이 얽히면서 삶의 취약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가를 끈질기게 탐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빈곤은 끊임없는 과정이자 배치죠. 결국에는 등장시켜야지 존재할 수 있잖아요. 빈곤이라는 것도 어떻게 등장시킬 것인가의 문제인 거죠. 저는 빈곤에 관한 구조적 분석에 동의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저렴하게 자연을 쓰고 저렴하게 생명을 쓰고 저렴하게 노동을 쓰고, 이 과정에서 빈곤은 구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런데 빈곤을 물질적이고 실존적인 결핍의 문제라고 했을 때 우리가 과연 어떤 빈곤을 이야기하고 있는가는 빈곤이 실체로서 등장한 이후에라야 가능하다는 거죠. 그걸 등장시키는 작업이 바로 통치죠. 빈곤을 얘기하는 순간 빈곤 통치가 특정한 형태와 양식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복지를, 수급을, 의존을 문제 삼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빈곤을 쉽게 정의해선 안 된다고 봐요. 빈곤을 쉽게 정의하고 쉽게 해법을 내세우는 통치술을 의심하고 거부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배치와 과정을 집요하게 탐색하면서 새로운 연결/단절을 부단히 시도해야죠.”

다른 사람들 고통과 내 고통은 연결되어 있다

-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요. 이론적으로는 ‘배치(assemblage)’로 표현하셨고요. 더 조금 풀어주신다면요.

“사람들이 동의하든 안 하든 ‘빈곤은 구조의 문제다’라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된 것 같아요. 문제는 그렇게 얘기를 하고 나면, ‘구조의 문제인데 내가 뭘 할 수 있지’ 하며 뒤로 물러서게 된다는 겁니다. 자본주의를 난공불락의 괴물로 묘사하니 냉소만 늘잖아요.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하죠. 배치라는 건 여러 요소의 얽힘을 말하죠. 저 같은 교수나 기자나 학생들도 이 얽힘의 일부죠. 빈곤이 무엇인가, 빈자란 어떤 사람인가를 두고 떠오르는 특정 이미지가 있다면, 이 역시 배치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모두 연루된 만큼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빈곤이 다르게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배치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빈곤 배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책무감을 환기하고 싶었어요. 빈곤의 배치를 과정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 배치에서 도드라지는 복지 수급의 문제를 바로 빈곤 문제와 등치하게 되죠. 그렇게 빈곤 문제를 얘기하는 순간 ‘내’가 연민을 가질 수는 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분리된 문제로 빈곤을 생각하기 쉬워요. 배치는 빈곤에 대한 책임이 나한테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작업입니다. 더불어 사람들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분리된 게 아니라 연결돼 있다는 것을 배치 개념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어요.”

“저희가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요.

“그래서 빈곤의 배치를 살피면서 수급자가 경험하는 결핍의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겪는 실존의 빈곤도 주목했어요. 빈곤 문제가 반드시 복지 수급자나 홈리스,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화폐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많아져야 하고, 화폐가치가 없는 것들을 화폐가치가 있는 것들로 끊임없이 전환해야 합니다. 친구는 사라지고 경쟁 상대만 남고. 이야기는 사라지고 교환 가치를 갖는 정보만 유통되죠. 수급자가, 장애인이 이 경쟁에서 일찌감치 뒤처져 연명 수준의 삶을 강요받는 존재라면, ‘나’는 어떤가요. 가령 대학생들도 자기가 살아남으려고 ‘내가 얼마나 경쟁력 있는 인간인가’를 즉 자기를 팔릴만한 상품으로 만들고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강박에 시달리는 거죠. 무임승차는 절대 해선 안 되는, 자립적인 인간인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복지 수급자도 자립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죠. 수급이 곧 자활 의지와 능력을 심판받는 과정이 됐잖아요. 수급자가 겪는 고통과 내가 겪는 스트레스가 서로 연결된 문제라는 걸 강렬하게 느낀 게 2022년 10·17 빈곤 철폐의 날 집회 때였어요.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가 단상에 나와 연설했어요. 우리가 종로에서 차선을 가로막고 시위를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짜증을 냈죠. 몇몇 사람들은 엄청 욕을 하고 째려보기도 했죠. 그런 와중에 박 대표가 ‘지난 20년 동안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왔는데 왜 저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지 아십니까’라며 청중에게 물었어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직접 답을 했어요. ‘그것은 저희가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세 번 아주 천천히 외쳤어요. 그 순간 놀랐던 게 그 집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주변 행인도,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매우 진지하게 그 말을 듣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 우리와 저들이라는 구분이 무너지는 순간을 짧게나마 느꼈어요. ‘저들’로 분리해낸 사람들의 문제가 사실 ‘우리’, ‘나’의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느낀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 쓸모가 없어졌다고 생각할 때 굉장히 비참해지죠. 노인이 되면 누구나 똑같이 겪고, 장애인은 조금 일찍 겪는 것이고요. 우리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든 간에 결국에는 그 쓸모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잖아요. 이 문제를 <빈곤 과정>에서 인간의 취약성과 유한성이란 말로 풀었어요. 누구도 취약성, 유한성에서 예외가 없다는 지점에서는 우리와 저들이 분리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빈곤을 내가 상관할 필요가 없는 ‘저들의 비참’에서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재해석하는 게 필요하죠.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귀다툼과 구별 짓기를 넘어, 위기와 불안을 영속화하면서도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통치를 거부하고, 이러한 통치에 ‘우리’ 모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공통 감각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 운동,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죠. 그런 의미에서 빈곤 문제의 외연을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빈자의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이 ‘수급자’로 대표되는 절대적 빈곤에 대한 가뜩이나 빈약한 관심을 더 반감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왜 빈곤이 한없이 낯선 주제가 되고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빈곤의 배치를 더 복잡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2023년 7월 18일 서울 종로4가 버스정류장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장연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비폭력·불복종 버스행동’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관심의 원’ 바깥 존재 애써 의식해야

- 2020년 9월 ‘황해문화’ 108호에 쓰신 ‘한국사회 코로나 불평등의 위계’에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 마지막으로, 무엇이 애도할 만한 삶이 되게 해주는가?”라는 주디스 버틀러 말을 인용하신 게 떠오릅니다. 이 물음에 나름의 답을 해주신다면요.

“주디스 버틀러의 논의를 끌어오면서 프레카리아트 집단의 위계 문제를 다룬 글이었죠. 9·11 테러 당시 퀴어한 생명들은 부고란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 버틀러는 미국이 초래한 전쟁 사상자에 대한 부고는 아예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켰죠. 걸프 전쟁과 그 여파로 사망한 이라크 어린이 20만 명의 삶을 떠올릴 수조차 없는 앎의 위계에 대해. 우리의 ‘관심의 원’(마사 누스바움) 바깥의 존재는 언제나 있고,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 알기 어렵습니다. 내 ‘관심의 원’ 바깥에 머물렀던 존재들을 새롭게 환기하는 노력이 계속 필요하죠. ‘애도할만한 삶’에 관한 질문은 어떤 상황에 있든 계속 새롭게 던져야 합니다. 그게 누구의 삶인가는 정해져 있지 않죠. 저를 포함해 한국 사회에서 경제, 문화, 교육 자본을 어느 정도 축적한 사람들은 박탈감, 우울, 분노를 담 안에서 계속 분출하면서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담 안에서의 경쟁은 전례 없이 치열하죠. 피해자 정서가 만연하고요. 의사도, 건물주도 거리에서 집회를 벌이는 세상이잖아요. 제가 두른 담 안에서만 비교하고 경쟁하고 관계를 맺고, 담 밖의 ‘저들’은 낯설고, 불쌍하거나 무섭게 여기죠. 담 바깥의 세계는 아예 자기의 비교의 대상 자체가 아니에요.”


☞ 주디스 버틀러 “임신중지 반대는 가부장적 가족행태 강화”[플랫]
     https://m.khan.co.kr/national/gender/article/202308311014001

쪽방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사냐

-‘혐오’ 문제를 다시 여쭤보면, 서울 ‘난곡’ 지역 현장연구를 토대로 빈곤, 복지, 운동의 얽힘에 관해 쓴 석사 논문 심사 때 “어떤 교수는 ‘복지병’에 길든 빈민을 제대로 묘사했다는 심사평으로 나를 당황케 했다”라고 쓴 걸 봤습니다. 이른바 식자들이 빈자에 대해 내재한 혐오와 차별이 은연중 드러난 듯한데요.

“학계에서 종종 느끼는 문제죠. 다양한 혐오, 차별 이슈에 목소리를 높이는 진보적인 교수들이 유독 부동산과 교육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여요. 주변인의 상속이나 증여가 화젯거리가 되고요. 자연의 섭리처럼, ‘다들 그런다’며 얘기해요. 심지어 동자동 공공 개발을 두고 ‘어떻게 쪽방 사람들과 같은 동네에 사냐’고 반문하는 분도 있어요. 저라고 자유로운 건 아니나, 한때 같이 운동했고 이제 ‘기성 엘리트’가 된 동창들이 빈곤이란 주제를 부담스러워할 때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제가 해제를 쓴 매슈 데즈먼드의 <미국이 만든 가난>에서도 진보적 백인 엘리트는 담을 두른 저택에 살면서 공공주택 정책을 지지하고, 방치된 공공주택 단지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멱살잡이를 하는 풍경을 묘사한 대목이 나와요. ‘소득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모두가 분리주의자인지도 모른다’라는 대목이 한국에서 전혀 낯설지 않죠.”

국토교통부는 2021년 2월 5일 ‘서울역 쪽방촌의 현재와 미래전국 최대 서울역 쪽방촌, 명품 주거단지로 재탄생’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쪽방과 일반주택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 1250호 공급 계획을 포함했다. 이 공공주택사업은 토지·건물주들의 민간개발 전환 요구로 중단된 상태다. 사진은 2021년 초 당시 동자동과 공공주택사업 조감도. 출처: 국토교통부
타인에게 그저 내 자리 한쪽 내어주기

- 빈곤 혐오는 공감대 형성과도 이어지는 문제인 듯합니다.

“빈곤에 대해 어떻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킬지를 학생들하고 이야기를 나눠요. 학생들도 머뭇거릴 때가 많죠. 팬데믹 지나면서 ‘공생’을 얘기하는 게 더 힘들어졌어요. 연대, 환대 같은 단어들이 하찮게 취급되는 사회가 됐어요. 경쟁과 각자도생을 자연법칙인 양 운운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윤리적 의무에 호소하는 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저도 때때로 회의적입니다. 제 스승인 제임스 퍼거슨 스탠퍼드 교수가 2021년 낸 책 <Presence and Social Obligation>에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아프리카의 미니버스가 도시에서 출발해 사막까지 가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타는 거예요. 누군가 냄새난다고 밀칠 수도 내릴 수도 없어요. 사막을 돌아가는데 다른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옆 좌석 사람이 싫든 좋든 내 옆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게 환대의 언어는 아니긴 해도, ‘무사 귀환을 하려면 (싫어도) 제 공간 일부를 포기해서라도 타인에게 곁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분배정치나 기본소득 논의를 연결해 보면, 재원을 너무 쉽게 세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국민국가의 영토적 경계를 따라서 나뉘는 거잖아요. 이주민하고 난민은 배척되고요. 한국 사회에선 ‘저들’의 비참과 ‘우리’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과 ‘저들’의 비참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감각, 다시 말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는 입장과 ‘우리가 살기 위해 저들의 비참을 위험하지 않은 수준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맞서고 있는데, 난민이나 이주민을 국민됨의 성원권이 아니라 그냥 ‘존재’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내 곁에 와서 존재하니까 자리를 내어주는 거죠. 퍼거슨의 책에는 내 집의 빈방을 점유한 낯선 사람의 얘기가 나와요. 나한테 허락도 안 받고 들어왔으니, 당장 내쫓으려고 하면, 그걸 보고 있던 이웃이 ‘여기 비었잖아’라고 대꾸하고 눈치를 주죠.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싫어도 자리 한쪽을 내어준다는 거죠.”

제임스 퍼거슨 스탠퍼드 교수가 ‘Presence and Social Obligation’이라는 제목의 프린스턴대 강연 안내에 나온 미니버스. 출처: 프린스턴대 인류학과 홈페이지
‘착한 빈자’ 재현은 ‘나태한 빈자’ 재현만큼 위험하다

- 빈곤 연구할 때 어려운 점은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어디까지 연구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있어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주름들을 섬세하게 짚어낸다는 게 한편에선 굉장히 위험해요. 연구자가 빈자들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부각한다면, ‘도덕적 빈자’라는 전형을 강화할 위험이 있죠. 사람들은 가난한데 맘 좋고 성실하기까지 바라죠. ‘착한 빈자’의 재현은 ‘나태한 빈자’의 재현만큼 위험할 수 있어요. 가난한 공동체도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복합적인 문제들을 겪어요. 살면서 갖은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모이니 의심도 불화도 커질 수밖에 없죠.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쉽게 해부 대상이 되는데, 한편으론 부자의 삶은 연구 자체가 어렵거든요. 고소당하기 쉽죠. 부자들은 아예 접근이 안 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을 이해시키려고 자기 몸뚱어리를 다 드러내 보여야 하는 거예요. 그 재현의 과정이 너무 위험한 거죠. 동자동 쪽방촌 공동체를 두고도 낭만화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한국에 유일하게 남은 빈민 공동체’, ‘진정한 자립 모델’이라며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희망을 찾고 싶어하죠. 그런 기대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메슈 데즈먼드의 <미국이 만든 가난> 해제를 쓰면서, ‘가난한 사람들 너머를 봐야 빈곤이 보인다’는 제목을 단 것도 그 맥락이 있거든요. 하지만 이런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다뤄선 안 되냐 하면 그건 또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동자동은 사랑방, 협동회 같은 주민자치 조직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요. 가령 협동회는 공제협동조합이라 주민들이 이사장, 이사직을 모두 맡고 있죠. 쪽방 주민들이 다 해요. 상호의존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부단히 애쓴 결과이기도 하죠. 현재 공공개발추진위도 주민이 위원장을 맡고 있고요. 그런데 외부에서는 직함을 가진 사람을 전업 활동가라고 쉽게 생각해요. 쪽방 주민이 동시에 활동가일 수 있다는 상상을 잘 못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단순히 약자, 도움받아야 할 집단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죠.”

-가난과 빈곤을 개념적으로 달리 규정하시나요.

“저도 좀 혼란스럽기는 해요. 석사 논문에는 학술 용어로서의 빈곤이 좁은 정의를 강요하는 것 같아 가난이란 단어를 썼어요. 요즘은 가난이라고 쓰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이 거기에다가 연민이든 모종의 감정을 많이 보태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경향도 위험하다는 생각에 요새는 그냥 빈곤이라고 써요. 저는 빈곤이란 주제를 익숙하게 생각하면서 연구를 해왔는데 주변에선 ‘무슨 빈곤 연구를 20여 년을 하냐. 대단하다. 놀랍다’ 이런 반응을 보여요. 좀 의아했어요. 어떤 연구자든 관심 분야가 있는 건 당연한데. <빈곤 과정>을 냈을 때 어느 방송국에서 제 삶을 다큐로 찍고 싶다고도 연락이 왔어요. 관심은 감사하지만 이건 진짜 아니다 싶었죠. 이토록 빈곤이라는 주제가 낯설어졌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저를 두고 ‘연구와 삶이 일치한다’는 평도 있는데, 그게 일치가 됐다면 제가 엘리트 대학의 정규직 교수를 계속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죠.”

-“빈곤이란 화두 앞에서 나는 여전히 모순투성이로 살아간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맞아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빈곤 문제에 조금 더 개입한다고 할지라도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연구와 삶이 일치된다니, 그렇게 빈곤 연구가 낯설어 보이나 싶죠.”

빈곤은 이벤트 대상이 아니라 종식·철폐 대상이다

- 주류 사회에서는 빈곤 얘기를 잘들 안 해서 교수님 연구가 두드러지는 듯도 합니다만.

“빈곤이란 주제에 무겁게 다가가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어들긴 했죠. 이제는 누가 죽어야지 기사가 나오잖아요. 물에 잠겨서 죽든가, 스스로 목숨을 끊든가. 자살도 요새 너무 많으니까 이제 그것조차도 기사화가 안 되는 것 같아요. 2014년 송파구 세 모녀 사건만 해도 떠들썩했죠. 요새는 그런 자살이 정말 많잖아요. 그런 얘기가 나왔다가 금방 들어가요. 이제 빈곤 불평등을 끝장내자는 생각을 진짜 안하는구나 하는 착잡함도 있죠. 빈곤을 갖고 이벤트를 벌이고 각종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넘치는데, 이를 종식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은 소수만 남은 거죠. 우리가 ‘빈곤’으로 설명하는 현상들에는 착취, 수탈, 고통, 비참이 모두 깃들어있기 때문에 ‘빈곤을 끝장내자’라는 활동가들의 구호에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금 저 같은 연구자가 할 수 있는 건 빈곤 문제를 아까 말한 배치로 풀어내서 끈덕지게 개입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글을 쓰든 활동을 하든 뭘 하든 간에요.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요. 빈곤 연구하는 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학계,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개입’하면 바뀐다

-현장과 접목한 ‘빈곤의 인류학’ 수업도 주목받았는데요.

“2018년 2학기 때 지금 같은 방식으로 ‘빈곤의 인류학’ 수업을 했어요. ‘글로벌 빈곤’, ‘나의 불안’을 넘어 한국 사회 다른 프레카리아트의 빈곤과 마주하기. 저와 학생들이 프레카리아트 사이의 마찰(공정과 자립, 안전)을 성찰의 계기로, 정치적·윤리적 화두로 발전시키는 장을 마련하려 했죠. 인기 있는 주제도 아닌데, 학생들이 왜 이 수업을 들을까 궁금했어요. 학생들이 글로벌 빈곤에 관심이 있더라고요. 코로나 이후 관심이 좀 줄었지만, 글로벌 관련해 관심 대상이 2010년대 초반까지 ‘한비야’였다면, 2015년쯤에는 ‘반기문’으로 바뀌어 있었죠. 글로벌 빈곤에 관심을 가진 친구들은 졸업 후 국제기구에 가고 싶어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공부도 많이 했고, 전문 영역에 있으면서 세상에 좋은 일도 하고 싶어했죠. 그런 학생들이 할만한 활동이 많아진 거죠. 해외 자원봉사 같은 건데, 아이티까지 다녀온 학생도 있었어요. 해외 선교를 겸한 반빈곤 활동을 한 학생도 있고요. 학생들은 먼 나라의 빈곤에 관심을 갖다가도, 저 자신의 결핍을 강조하곤 했어요. 이들에게 빈곤이란 물질적 결핍이라기보다는 전망 부재나 미래 없음의 감각, 불안 같은 거예요. 그런데 학생들은 홈리스나 복지 수급자, 용산 참사나 철거 지역 주민 운동은 잘 몰랐죠. 이들과 함께 빈곤의 외연을 확장해 볼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었어요. 학생들이 자기가 생각해 왔던 빈곤 말고도 좀 다른 층위의 빈곤을 접하고, 느끼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예전에는 빈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었죠. 제가 클 때만 해도 한국 사회가 공간적으로 이렇게 계급화되지는 않았으니까요. 이제 서울의 4년제 대학 특히 엘리트 대학의 (서울) 강남 출신 비중이 높아지면서, 학생들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밖을 볼 수 없어요. 마주침을 회피하거나, 익숙한 마주침만 반복하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마주침의 장을 열어내야 하는 거죠. 활동가들한테 도움을 구했어요. 학생들이 활동가 인터뷰를 거쳐 현장을 보도록 했죠. 2022년 1학기 때 수업은 서울역 쪽방촌 사업에 관한 건데, 공공 개발 움직임에 연대한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진행한 수업이죠. 정부의 공공주택사업 발표를 가능케 한 힘들, 사업 진행을 굴절시키고 있는 힘들의 연결망을 추적하려 했어요. ‘우리’의 연루성과 변화의 가능성, 즉 ‘개입하면 바뀐다’는 믿음을 사실로 확인하는 작업이었죠. 올해 2학기 수업에서는 빈곤에 대한 대중적 이해와 반-빈곤 활동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여러 층위의 빈곤을 새롭게 연결해내면서 빈곤을 ‘나’의 문제이자 ‘모두’의 화두로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2023년 2월1일 서울 중구 동자동 쪽방촌 모습. 전기요금 안내가 붙어져 있다. 당시 정부는 난방비 지원 등 계획을 발표했다. 성동훈 기자

-우문같기도 한데, 인류학자에게 현장은 왜 중요합니까.

“인류학자들도 교수 되고 나면 확실히 현장연구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아요. 저도 박사 논문 쓸 때 제일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고요. 그런데 저는 확실히 현장에서 힘을 많이 얻어요. 지식 생산자가 학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대학과 현장을 구분 지을 수도 없어요. ‘빈곤의 인류학’ 수업은 수업 자체가 현장이죠. 제가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고, 개입하는 곳 어디든 현장이 아닐까요. 아까 말한, 연루된다는 감각을 느끼는, 느껴야 할 모든 곳이 저한테는 현장이죠.”

낯선 마주침의 장을 계속 열어야

-좀 전 말씀에도, 앞서 발표한 여러 글에서도 ‘마주침’이란 말을 쓰셨는데요.

“지리학자 앤디 메리필드의 <마주침의 정치>(이후)라는 책이 번역돼 나와 있어요. 그 책이 인상 깊었어요. 마주침의 정치가 갖는 실천적 의의를 두고 ‘지속하는 마주침이 일어나면 그 어떤 것도 예전과 동일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을 생성의 과정 속으로, 뭔가 다른 것이 되어가는 과정 속으로 쏘아 보낸다’고 썼죠. 마주침에 관한 인류학 논의들은 범주들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마주침을 통해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독립적, 자율적인 개인이 아니라 마주침의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자신이 되어 간다고 얘기하는 거죠. 하나의 개인이라는 게,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로 엮이면서 개인이라는 배치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살면서 다양한 물질적, 제도적, 정동적 힘들과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가 되었다면, 나 역시 마주침을 통한 배치의 결과로 봐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마주침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익숙한 만남이 아닌 낯선 마주침을 계속 시도하는 게 교육의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말과 말, 글과 글, 몸과 몸이 마주칠 때 다른 인식, 감각, 성찰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쪽방촌, 기업의 선물과 교회의 자비

-2023년 10월 열린 세계 인권도시 포럼에서 ‘빈곤과 불평등에 대응하는 도시’라는 주제에 관해 발표하셨는데요.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듯 새로운 빈곤 정책을 내놓는다” “기업이 빈곤의 ‘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고 쓰신 걸 봤습니다. 기업의 선물(gift) 일방적 제공, 교회(종교)의 자비와 은총 같은 표현을 쓰셨는데요.

“쪽방촌, 또는 이와 유사한 빈곤층 밀집 지역에서 벌어지는 풍경이죠. 교회를 악이라고 볼 수는 없죠. 교회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해온 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동자동에서 활동하는 교회의 성격도 다양하죠. 하지만 쪽방촌 주민들은 때때로 ‘우리가 교회 사업에 이용되고 있다’라고 말을 해요. 교회가 외부 후원을 받는 정당성의 근거로 비참한 삶을 전면에 등장시키도 하고, 주민들이 굶지 않기 위해 설교를 듣고, 예배를 참석하는 경우도 있죠. 기업들도 쪽방촌을 찾는데, 이들은 상대가 갚기를 기대하지 않는 선물을 주죠. 그런데 선물 목록을 자기들이 정해요. 상대가 고를 수 없는 선물을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단체 사진이나 인증사진을 찍으면서 평판자본을 얻어갑니다.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까요? 자본주의란 게 기업이 비용을 절감할 저렴한 노동, 자연, 에너지를 찾아서 가난한 지역, 나라, 바다, 우주까지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이를 성장, 혁신, 개척이라 부르지만 종국엔 인간과 비인간 생명의 비참을 더하는 과정 아니었나요. 그런 기업이 ‘윤리적 자본주의’를 강조하면서 빈곤 해결사를 자처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더욱,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빈곤 문제를 논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강력한 통치 주체로 부상했죠. 동자동은 한국 사회의 빈곤을 보여줄 수 있는 핵심 현장이 됐어요. 폭염·혹한에 정치인, 기자, 아무개 회사 직원들이 선물과 카메라를 들고 수시로 찾는 곳. 작년에는 ‘얼음 계단’으로 이슈가 됐고, 올해는 ‘빈대’였죠. 2000년대 초반 제가 현지조사를 한 서울 신림동 난곡도 그런 현장이었어요. 그때 동사무소 직원이 저한테 후원할 사람을 그냥 골라 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여러 방송국에서 취재하거나 후원할 가족 하나 정해달라고 계속 연락이 오니까, 할 일 많은 공무원들이 너무 지쳤던 거죠.”

중국 정부와 같은 방식 탄압 논리 펴는 윤석열 정권

- 윤석열 정부가 ‘약자 복지 대 노동’ 대립 구도로 만들며 노동을 탄압한다는 취지의 칼럼도 쓰셨는데요. 서울시의 ‘약자’ 호명에 대해서도 비판하셨고요.

“서울시는 지금 ‘약자’를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있죠. 오늘 제가 버스 타고 올 때 서울시 광고가 나오는데, 약자들도 위하고, 세계인들도 좋아하는 도시를 만든다는 식으로 홍보하더라고요. 제가 봤을 땐 조금 어이없는 표현이에요. 2000년대 초반 중국 정부가 경제적으로 추락한 인민을 약세군체(弱勢群體)라고 불렀어요. 실직 상태의 노동자들, 농촌에서 온 농민공들, 농민들을 묶어서 약세군체라고 하면서 당과 정부가 이들에게 베푸는 지원들을 강조했죠. 중국은 사회주의라는 독트린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인데, 당이 사회주의 대표 계급인 농민과 노동자를 대놓고 약세군체로 명명하는 걸 보면서 착잡했죠. 서울시나 현 정권이 특정 집단을 약자라고 명명하는 순간 ‘내가 너를 위해서 뭘 해줄게’라는 온정주의적 관계가 만들어지죠. 저항을 지워버리는 거죠. 중국도 약세군체라고 명명된 이들이 권리를 내세우며 저항 운동의 주체로 등장하면 바로 ‘체제 외’로 규정해 탄압합니다. ‘체재 내/외’라는 일종의 인식 범주가 억압적으로 작동하는 거죠. 시진핑 정권 들어와서 당국이 체제 외로 몰린 노동 NGO를 대대적으로 탄압해 이제 거의 씨가 말랐어요. 국가가 정한 규칙 안에서 ‘예스’ 하고 감사할 줄 아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거죠. 지금 한국의 약자 규정에도 중국과 같은 방식의 탄압 논리가 작동합니다. 민주화 이후 ‘권리’가 보편 언어로 자리 잡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의 통치 방식이 중국과 닮아간다는 게 황당하지 않나요. 윤 정권이 노동조합을 기득권, 카르텔로 명시적으로 지목하면서 억압하는 게 야비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노동운동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에요. 저임금과 해고가 초래하는 만성적 빈곤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정치 전략과 별개로 제가 더 화나는 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분리 통치에요. 저항하는 사람들을 불온시하고, 권리를 외치기보다 국가가 제공하는 보호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을 ‘약자’로 호명하면서 체제 안으로 끌어안는 통치죠.”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6월 29일 대통령실 출신 차관 내정자들과 만나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과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고 말하고 있다. KTV 화면 캡처

☞ 윤석열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자유’와 ‘시장’의 이름으로 개인 소외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7111638011

쪽방촌 이벤트라는 빈곤 브랜드화 문제

- 정치·선거와 빈곤 정책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총선을 앞두고 빈곤 의제가 잘 안 보이는 듯도 한데요.

“브랜드처럼 만들어내는 총선용 공약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치권의 빈곤 정책이란 것도 어떻게 지지층 결집용으로 만들어낼지에만 치중하죠. ‘00표 사업’ 같은 이름으로 내는 공약과 정책이 모두 단기적 평판에 매몰됐죠. 눈에 띄는 것만 내세우고요. 예를 들어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쪽방촌에 가서 이벤트를 벌이는 식의 빈곤 브랜드화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정부가 ‘약자 복지’ 내세우면서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생계 급여를 올렸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죠. 그 부분을 많이 올리긴 했어요. 중위소득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있긴 하지만요. 사실상 임금 노동 바깥의 저소득층 노인을 지지층으로 굳히기 위한 전략이라고 봐야죠. 불평등이 비판과 철폐의 대상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 유지와 지지층 결집용 대응책 정도로 취급받는 문제가 있습니다. 공공 임대 같은 예산을 깎은 것도 같이 봐야죠. 언론도 마찬가지예요. 빈대를 예로 들면, 빈대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 어떤 장소에서 빈대에 물린 어떤 사람이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빈민이 아니라면, 그 상황이 갑자기 기사화되면서 떠들썩하고 난리가 납니다. 좀 우습죠. 최근에 기자들이 동자동에 가서 빈대 관련 취재를 했는데, 쪽방촌 빈대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냥 빈곤 문제이거든요. (빈대나 얼음계단 같은 빈곤을 전시하는) 쪽방촌 취재를 하러 오지 말고, 공공 개발 정책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기사를 하나라도 더 써주면 좋겠어요. ‘약자 복지’든 빈곤 브랜드화든, 제가 화가 났던 게, 그 말에 불평등을 끝장내자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공공을 바라보는 인식 문제도 있어요. 정부든 일반 대중이든 공공은 후진 것, 공공은 가난한 사람의 것이라고 여기는 게 매우 큰 위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찮게 취급하면, 공공은 정책의 관심사에서 더욱 멀어지고, 그 부메랑은 우리한테 다 돌아오는 거죠. 지금 의료든 교육이든 민간으로 돌리는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잖아요.”

엘리트 중산층의 민주당 포지션 보여준 조국 사태

- 민주당이나 직전 문재인 정부 문제도 있을 텐데요. 기득권층이 된 민주당을 비판하는 글도 쓰셨고요.

“조귀동 작가가 쓴 <이탈리아로 가는 길>(생각의힘)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거기서도 이제 민주당이 가난한 사람들의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더군요. 엘리트 중산층이 민주당에서 얼마나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게 조국 사태였죠.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주변에 진보적인 분들도 조국 가족의 비리에 대해 ‘이거 관행인데, 왜 그래’ 하는 걸 보고는 굉장히 놀랐었거든요. 제 허물은 정말 보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아쉬운 점이 많지만, 민주당을 또 싸잡아 비난할 순 없어요. 예를 들면 저희가 동자동 책 작업하면서 당시 변창흠 장관이나 김현미 장관도 인터뷰했는데, 어쨌든 쪽방촌 공공개발 결정을 이뤄내기까지의 과정에는 운동했던 586 세대가 기여한 부분도 분명히 있거든요. 부채감 같은 게 있었겠지요.”

- 민주당이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내놓는다고 보는지요.

“보수는 빈곤을 보는 시선 자체가 선명하거든요. 온정주의죠. 가난한 사람들이 더 사고 치지 않게끔 최소한의, 연명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전망은 깔아주자는 정도죠. 조중동이 빈곤을 묘사하는 관점이나 프레임은 비교적 명확해요. 진보 쪽은 더 급진적으로, 본격적으로 불평등이나 빈곤을 얘기해야죠. 쪽방 같은 취약한 주거 문제는 기후재난으로 더 악화하고, 생활고를 비관한 아버지가 가족을 살해한 뒤에 자살하는 폭력 사건은 늘어나고 있어요. 진보적 색채를 표방한 정당이라면 빈곤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처할 정책 플랜을 제시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게 안 보이거든요. 불분명하고 들쭉날쭉하기도 하고요.”

부동산 개발엔 카지노 자본주의 작동…함께 살자는 요구도 동반 상승

-대학생일 때 봉천동에선 공부방 활동도 하셨는데요.

“과 선배가 꼬드겨서 간 거죠.(웃음) 고등학교 때도 빈곤 문제에 관심은 있었어요. 사회적인 문제에 조금이나마 눈이 일찍 뜨였죠.”

조문영은 <빈곤 과정>에 1980년대 중반 김포공항 근처 ‘국민학교’ 6학년에 다닐 때 목동 현장을 목격한 일을 적었다. 급우들이 1000원씩 모아 문집을 만들기로 했는데, 돈이 다 걷히지 않았다. “수금을 빙자”해서 몇몇 친구가 사는 목동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목동오거리에서 내려 얼마쯤 걸었을까. 매캐한 먼지 사이로 아수라가 펼쳐졌다. 분진에 뒤덮인 소쿠리, 골목에 나뒹구는 냄비, 아이의 울음, 엄마의 통곡, 철거반원의 욕설이 뒤엉킨 그 날의 경관은 뿌연 잔해로, 선명한 충격으로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목동 철거반대 투쟁을 배운 게 한참 뒤다. 커서는 ‘목동 신시가지’로 이사 간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대학 시절 목동에서 과외를 하며 등록금을 벌기도 했다고 한다.

“그즈음에 성당에서 광주항쟁 비디오를 보여줬어요. 그것도 굉장히 충격이었죠. 고등학교 때 단편 소설을 썼는데요.(웃음) 철거 지역의 빈곤 문제를 다뤘어요. 가난을 재현하는 문제를 두고 입장을 달리하는 두 기자가 공방을 벌이는 장면을 넣었던 게 기억나요.”

1984년 8월 29일 재개발 문제를 두고 토의하고 있는 목동 주민들(왼쪽 사진)과 이듬해 3월21일 주거보장과 대책 없는 주택개발 계획의 전면 수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목동 주민들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목동 개발에서 동자동 개발까지 무엇이 같고 다르다고 보시는지요

“공통점이 있어요. 주택 개발을 금광 채굴처럼 여기는 카지노 자본주의가 작동하죠.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에 썼듯이 철거반대투쟁은 주거권 운동의 중요한 흐름인데, 이 과정에서 세입자들이 당당한 권리 주체로 등장했지만, 일부 투쟁에서는 주민들이 보편적 주거권보다 더 많은 보상에 초점을 두기도 했어요. 개발에 맞선 운동에서 ‘주거권’ 개념이 더 확장된 것은 2000년대 이후라 봐야죠. 동자동 공공 개발 집회에서는 내 집의 권리뿐 아니라 모두의 인권이 주요 의제로 등장합니다. 당사자 보상 이상의 보편적 주거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지난 20여 년 동안 확대됐어요. 철거반대투쟁을 넘어 쪽방,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 ‘비주택’ 거주민을 주거취약계층 당사자로 새롭게 주목한 겁니다. 주거가 곧 생존인 홈리스 문제가 대두됐고, 홈리스 운동도 성장했죠. 청(소)년,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민, 비혈연 가족 등 그동안 정부 주거정책에서 배제되어왔던 당사자들의 권리운동이 벌어졌지요. 결국, 한국 사회에서 자기만의 방공호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살자는 요구도 동반 상승한 겁니다. 그러니 마찰과 갈등이 더 심할 수밖에 없죠. 주거권 운동을 힘들게 만드는 건 단순히 ‘국가’와 ‘자본’이 아니라는 점도 말하고 싶어요. 1980~90년대 합동재개발 당시 정부는 건설사 용역의 무자비한 철거를 방조, 조장하면서 가난한 세입자들을 쫓아냈어요. 현재 선거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복잡해졌어요. 단순한 악한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시민에 대한 시민의 적대고요. 시민들 사이에 힘의 위계가 분명한데, 정부는 그저 중재자 역할로 자족하죠. 1980~90년대 보였던 가난한 주민들과 다양한 시민들 즉 학생운동 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과의 연대가 퇴보하기만 한 건 아닌듯해요. 운동의 주체가 성매매 여성, 홈리스, 장애인, 청소년 등으로 다변화되기도 했으니까요. ‘소수’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는 더 무거워졌지만요.”

- 노숙인이라는 말을 안 쓰고 ‘홈리스’라는 말을 계속 쓰시는 이유는요.

“제가 썼던 표현은 아니고요.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21세기북스)를 만들 때 학생들과 활동가 인터뷰를 했는데,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가 ‘홈리스’라는 말을 쓰는 이유를 말해줬죠. 그때부터 더 확실히 쓰기 시작했죠.”

국제인권법상 홈리스는 ‘노숙인뿐만 아니라 고시원, 쪽방, 컨테이너 등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동현은 정부가 노숙인으로 범위를 한정 짓는 것은 수많은 홈리스들을 정책 대상에서 빼려는 의도라고 지적한다.

사람을 집요하게 만드는 개발

- 개발 현장에선 여러 사건·사고가 일어나는데, 2023년 11월에 영등포에서 40대 모텔 주인이 재개발 문제를 두고 반목하던 80대 건물주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가해자는 영등포 쪽방촌에 자기 건물을 갖고 있어요. 동자동 토지 소유주이기도 하죠. 동자동 사업 발표 직전 어머니의 1평짜리 땅을 제 명의로 등기를 올렸다고 합니다. 개발 문제를 두고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요. 동자동 건물 소유주라고 다 민간 개발에 동의하는 건 아니에요. 정부 보상을 받는 게 더 낫다고 보는 소유주들이 있어요. 즉 공공을 잘만 이용하면 더 안정적으로 더 큰 수익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민간 개발은, 어쨌든 조합을 만들어야 하고, 건설사를 데리고 와야 하죠. 돈도 들고, 중간에 어그러질 수도 있고 해서 더 위험하죠. 정부가 그 위험한 부분을 감당하고, 그 중간에서 보상만 더 확실하게 챙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소유주들이 있죠. 지금 동자동은, 부동산 경기가 워낙에 안 좋다 보니까 민간 개발을 하는 게 리스크가 크죠. 동자동 소유주들도 민간 개발로 돌려야 한다는 쪽과 공공 개발을 계속 추진하라는 쪽으로 나뉘어 있어요. 그 가해자가 공공 개발 쪽 소유주 조직의 대표 역할을 했었어요. (살인 사건을 보면서) 개발 문제가 사람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공포심이 들었어요.”


☞ [단독] 80대 건물주 살인사건…쪽방촌 재개발이 부른 비극이었나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141428001

집이 상품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계인인가

- 한국 부동산 문제를 보면, 부자든 빈자든 다들 개발 욕망에 사로잡힌 듯한데요.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7개국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들만 유독 ‘물질적 행복’을 1순위로 강조했어요. 가치, 지향, 열망 모두 태생적이라기보다 역사적 배치를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만 욕할 수 없어요. 욕망의 문제가 국가 제도의 산물이기도 한 거죠. 유럽의 사회보장은 문제가 많았지만, 계속 타협과 협상을 거치면서 사회적 연대를 제도적으로 만들었어요. 한국은 그런 사회적 통치나 합의의 역사 자체가 없죠. 한국전쟁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았고요. 당시 외국 원조 규모가 복지 예산보다 더 많았다고 해요. 국가가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고, 공적 사회보장 지출에 돈을 쓰기보다는 저축기반복지나 토건 사업 같은 복지 대체 수단이 발달한 거죠. 가족 단위의 각자도생 시스템을 만든 거지요. 즉, 가족 중심의 생존전략이 국가의 적극적인 동원과 지원을 통해 뒷받침된 게 한국 복지 체제의 역사죠. ‘복지 대체 수단’을 이야기한 사회학자 김도균 제주대 교수는, 한국의 복지 역사를 보려면 재정이나 조세 정책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결국 제도적으로 ‘나나 내 자식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재편해온 역사가 있다는 거예요. 그게 과거에 저축이었다면, 지금은 대출 같은 금융인 거죠. 국가 정책과 제도의 산물이기 때문에 개인에게만 욕심이 많다고 욕할 수 없다는 거죠. 개발에 환장하고, 발전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또 한편으로 주거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현실을 함께 봐야 합니다. 한국의 주거권 운동 역사는 ‘더는 내쫓기지 않겠어’, ‘내가 보상을 많이 받아야 해’에서 ‘모두의 주거권을 위해’로 흐름이 바뀌어왔거든요.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재산권이 주거권에 선행하는 현실에 대한 끈질긴 비판과 저항의 결과로 여기까지 온 거죠. 그 결과 공유주택, 사회주택 같은 것도 생겨났죠.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값이 폭등하면서 언론이 주택 구매자의 하소연을 대대적으로 보도할 때, ‘나는 집 살 욕심도 없고, 그냥 평생 전·월세로 살 건데, 나 같은 사람은 바보냐, 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기사는 하나도 없냐, 왜 언론은 모든 사람이 마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 디폴트인 것처럼 만들어가냐’ 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개발 욕망이 ‘인간’의,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의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민의’라면, 주거권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온 사람들, 삶의 거처로서의 집이 굳이 상품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외계인인가요? 언론이 상품으로서의 집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을 ‘국민’으로 호명하고, 이들의 욕망을 보편으로 추켜세우는 것도 문제죠. 저는 한국 사회에서 두 역사가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한편에선 인권이나 주거권에 대한 관심을 확장해온 역사가 있어요. 또 한편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가족, 나’ 이런 강박이나 편집증도 커진 측면이 있죠. 그런데 이렇게 상충하는 역사적 흐름이 둘 다 굉장히 강렬하거든요.”

주거시민단체 회원들이 2022년 8월22일 서울시의회 앞 광화문시민분향소에서 폭우참사 희생자 추모 기자회견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베이징에서 본 맥도날드 간판에 충격

-학부 전공은 언론정보학인데요.

“사촌 언니들이 경북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죠. 1980년대 학번인데, 다 운동권이었어요. 일본에서 밀수한 책들이 꽤 있었는데,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같은 혁명 관련한 책들이 많았어요. 무협지 읽듯 많이 봤어요. 고등학생일 때 사회주의에 막연한 동경을 갖기도 했어요. 대학 진학을 앞두곤 중문과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강했어요. 경험해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죠. 아버지는 ‘무조건 법대’였는데, 성적도 안 되고 관심도 없고, 타협책으로 언론정보학과에 들어갔어요. 중문과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3학년 마치고 중국에 어학연수를 갔어요.”

-실제로 가본 중국은 어땠나요.

“‘사회주의 중국’으로 생각하고 갔는데, 베이징 도심에 들어가니 맥도날드, KFC 간판이 보여 충격을 받았죠. 이념적으로 중국에 꽂히신 분들은 이런 변화를 목격하곤 공부를 그만두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저는 오히려 반대였어요.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숱한 정치적인 격변을 겪고도 살아남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혁명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관심이 갔죠. 이후에 중국 관련 수업을 다 찾아들었는데, 인류학 수업이 방법론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웠었어요. 중국 정부나 공산당의 변화 이런 게 아니라 농민, 소수민족 등 아래의 삶에서 출발해 중국 사회와 문화를 풀어내는 게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전공을 바꿔 인류학과 대학원에 갔습니다.”

-한국 내 중국 혐오에 관한 글을 많이 쓰셨는데요.

“요즘 청년들이 중국을 왜 싫어하는지 이해는 가요.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이나 홍콩 민주화 운동 억압 같은 문제가 있죠. 지금의 청년 세대는 군사 독재 시절에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서구식 민주주의를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며 자랐죠. 당과 정부가 나서서 인민의 입을 틀어막는 건 잘못됐다고 여기는데 저도 동의하거든요. 그런데 혐오는 다른 문제죠. 최근 혐오 현상은 거의 배설 수준이잖아요.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봐요. 굉장히 자극적인 사건이나 특정 현상을 가지고, 그것이 전체인양 보편화시키죠. 지금 한국은 학계나 언론계 모두 중국이나 중국인을 중국 국가와 등치 해 버려요. 중국 정부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왔던 측면도 있죠. 중국 인민들이 중국을 국가나 공산당과 동일시하게끔 각종 제도나 교육을 통해 만들어온 역사가 없지 않아 있죠. 이런 흐름을 뚫고 ‘다른’ 중국을 등장시킬 필요가 있어요. 요새 ‘캡틴따거’라는 유튜버의 동영상을 즐겨봅니다. 중국에서 유학한 한국 청년이 중국인들의 평범한 삶을 취재해서 유튜브에 올려요. 소소한 즐거움을 보여줘요. 소수민족 마을에 들어가 농촌 현실도 보여주고요. 여기 달린 한국인들 댓글엔 혐오가 없어요. 공감의 댓글이 더 많죠.”

중국인을 중국이라는 국가와 등치하는 데서 비롯된 혐오

- 중국 내 폭스콘 공장의 가난한 노동자 등 중국 빈곤 문제를 여러 번 다루셨는데요, 그 내용 자체는 중국 정부에서 본다면 그리 좋아할 내용은 아닌데요.

“문제가 되긴 했어요. 제 중국 현지 조사를 심각하게 바라본 중국인들은 늘 있었죠. 도와준 중국인들도 많습니다만. 중국 선전 폭스콘 공장지대 현장 연구는 2013년부터 계속해왔거든요. 이 연구 결과를 영어책으로 작업하려고 했는데, 책이 나오면 제가 만난 중국 친구들한테 악영향이 될까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 계획은 포기했어요.”

<민간중국>(책과함께)에 실린 글을 보면, 조문영은 2004년 칭화대 교정에서 리핑(가명)을 만났다. 리핑이 일가친척 모두가 실업자라며 동북의 공업도시 푸순으로 조문영을 안내했다. 당시 팔순이 다 된 리핑의 할머니가 관공서, 박물관, 노천 탄광 동행을 자처했다.

- 리핑과 할머니하고는 지금도 연락하나요

“할머님은 돌아가셨어요. 리핑은 지금은 베이징의 금융 관련 국영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도 만나 훠궈를 먹었지요.”

젠더와 계급은 얽혀 있다

-폭스콘 공장의 ‘가난한 여성 노동자’ 사례를 드셨는데요. 한국이든 중국이든 빈곤과 젠더 문제도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빈곤과 젠더를 본격적으로 다룬 글은 별로 없고요. 중국 하얼빈에서 국영기업 노동자의 빈곤화 과정을 조사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의 제도적 불평등과 젠더 위계가 긴밀히 연결된 점에 주목했어요. 정부의 빈곤 통치에서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가정 안팎에서 저렴한 돌봄 노동을 떠안는 상황도 살폈고요. <빈곤 과정> 쓸 때는 가난한 여성 개인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까 가족 문제와 젠더 문제의 얽힘이 분명히 드러나더라고요. 이 책에 등장하는 폭스콘 공장 노동자 쑨위펀은 처음 만났을 땐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여성으로 살겠다는 포부가 상당히 강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을 일생일대의 목표이자 쟁취해야 할 유일한 소망으로 여기게 됐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삶의 궤적을 추적하면 젠더와 계급의 얽힘이 고스란히 드러나요.”

-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여기시는지요.

“저는 마르크시즘을 열심히 공부하고,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죠. 특히 반다나 시바 같은 에코 페미니스트로부터 많이 배웁니다.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폭력과 억압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시스트니, 페미니스트니 이렇게 저를 한 단어로 정의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떤 마르크시즘, 어떤 페미니즘의 분석과 통찰에 공감하고, 새로 배우고, 연대합니다. 중국에 대한 저의 관심을 촉발했던 사회주의도 마찬가지이지만, ‘이즘(-ism)’이 구축하는 세계가 사유와 상상의 지평을 제한할 우려도 있다고 봅니다.”

불평등한 위계 주목하는 급진 운동이 곧 기후 운동
환경운동연합 회원과 영월지역 주민들이 1998년 12월13일 오전 한강에서‘동강댐 반대’ 대형 현수막을 뗏목위에내걸고 수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문석기자

- 기후위기 적극 대응을 촉구하는 선언문이나 기후정의 행진 같은 집회에도 참여하시는데요.

“그런 참여는 많지는 않았고요. 관심을 두는 정도죠. 1990년대에는 환경운동에 편견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중산층 중심의 운동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김대중 정부 때인 1990년대 말 동강 영월 댐 반대 운동이 벌어졌는데, 경실련이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같은 조직들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어요. 결국 정부가 댐 건설 계획을 철회했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승리로 기록된 역사죠. 당시 저는 국무총리 산하의 합동조사단(사회영향평가팀)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해 해당 지역 농민들을 만났어요. 원래는 농민들 대부분이 오래 살던 곳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 댐 건설에 반대했어요. 그런데 보상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어수선해졌죠. 나라님이 정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바꾸겠냐면서 찬성으로 돌아서고, 보상을 더 받겠다고 과실수를 심고, 곧 개발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농사를 포기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시민단체들의 반대가 거세지면서 정부 결정은 계속 늦어졌어요. 제가 연구보조원으로 갔을 때, 농민들은 시민단체와 완전히 척을 지던 상태였죠. 시민단체에 대한 오해도, 적개심도 상당했어요. 근데 이 농민들 이야기는 당시 신문에 거의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평가단이 농민들의 은행 거래 내역을 조사할 수 있었는데, 농사를 중도에 포기한 상태라 다들 빚이 어마어마했어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댐은 건설되어야 했죠. 정부가 댐 건설 계획을 접은 이후에 농민들의 자살 소식을 접했어요. 그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충격을 많이 받기도 했고요. 연구 당시 농민들은 동강 가마우지만 환경이냐, 농민도 환경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죠. 전기가 아예 안 들어오고, 다리 하나도 안 놓인 마을도 있었어요. 그 정도로 척박한 환경이었거든요. 최근에 기후정의 운동을 보면, ‘정의로운 전환’이란 구호에서 보듯 정의란 단어가 꼭 들어가잖아요. 그 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기후정의 행진에서는 기후재난에 공모하지 않고선 생존이 힘든 화력발전소 노동자가 등장해서 정의로운 전환의 과정에서 우리 같은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공개적으로 발언도 했고요. 과거 동강의 농민 같은 사람들한테 이제는 함께할 무대를 마련해 준 거죠. 화력발전소 등 산업 현장 노동자들을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로 적극적으로 고려한 거고요. 환경 문제와 노동자의 생존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다면, 기후정의 운동이야말로 정말 급진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빈곤이란 문제와의 싸움은 단순히 인간으로만 이루어진 사회에 국한된 투쟁이 아닙니다. 지구에서 비참한 존재로 살아가는 생명들의 얽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투쟁인 거죠. 가장 취약한 생명들이 기후위기에 따른 고통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잖아요. 인간 빈자가 가장 비참한 비인간 생명들과 더 많이 만나요. 예를 들면, 끔찍한 도살장, 사육장, 양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이주 노동자들이죠. 대부분이 ‘불법체류’로 규정된 ‘미등록 이주민’이고요. 가장 비참한 인간이 가장 비참한 비인간 생명과 얽힙니다. ‘나’라는 배치에 반려견, 반려묘가 자리할 때, 쪽방 주민의 배치에는 빈대가, ‘미등록 이주자’라는 배치에는 도살장으로 끌려가기 직전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게 현실이죠. 이런 불평등한 위계에 주목하는 급진적인 운동이 곧 기후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넘는 노동자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23년 9월 21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 지역 923기후정의행진 참가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역 소멸, 그 끔찍한 단어

- 연구 계획은요.

“최근에 ‘지역 소멸’ 관련해 예비 조사를 하고 있어요. 중국은 농민공 연구를 하면서 농촌 현장을 꽤 다녔어요. 한국은 학생들과 단기 현장연구 다닌 거 말고는 수도권 바깥을 제대로 조사하거나 연구해본 적이 없어요. 한국 농촌을 내가 너무 모르는구나, 내 ‘관심의 원’ 바깥으로 밀어냈구나 하는 반성이 들어요. 빈곤 문제의 공론장도 서울 중심적인 측면이 강하죠. 특정 지역이나 주제에 운동, 연구, 보도가 집중되는 현상이 있어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지역 소멸 논의들을 접하게 됐습니다. 이 말도 놀랐어요. 소멸은 끔찍한 단어인데, 다들 너무 쉽게 말하고, 관용어가 되고 있죠. 소멸 지수니 소멸 지역이니 온갖 측정 프로그램이 생기고. 그만큼 지역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얘기기도 하죠. 한국 사회에서 소멸, 붕괴, 파국 이런 얘기를 요새 너무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이런 게 데드라인이 있는 게 아니니 다른 한쪽에서는 생성, 혁신, 기회 같은 말들이 범람하죠 지역 현장을 통해 빈곤의 외연을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다시 확장할까 생각 중입니다. 인류학자로서 고민되는 게 제가 어쨌든 서울의 엘리트 대학교수 잖아요. ‘담 안’에서 특권을 누려 온 사람이 ‘지방’을 어떻게 연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종목 기자

- 예비 조사 지역은 어디인가요.

“아버지가 코로나로 돌아가셨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셔서, 끈적끈적한 아버지 삶을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아버지 고향인 경북 상주에 갔지요. 난곡에서 만난 활동가들이 귀촌한 곳이기도 하고. 근처 안동, 의성도 갔습니다. 특히 의성군은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온 청년들이 정부 사업을 통해 ‘관계 인구’를 형성하고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어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빈곤 과정> 책에서 빈곤 연구와 청년 연구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는데, 의성에서도 그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청년들을 농촌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은 실업 사태가 극심한 중국에서도 ‘향촌진흥’, ‘청년하향(下鄕)’ 같은 구호 아래 대대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적으로 펼쳐지는 흐름을 비교하고 싶은데, 중국 현장연구는 아무래도 지금은 힘들 것 같습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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