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이모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김종수 2024. 1.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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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농구人터뷰(93)] ‘즐거운 이모’ 김정민


울릉도에서 살던 한 소녀가 있었다. 아름다운 글귀를 좋아하고 감수성도 풍부했으며 공부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녀는 운동 그중에서도 농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처럼 '농구가 좋아서'같은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또래들보다 큰 키가 이유였다.


얼떨결에 농구공을 잡게 됐고 이후 농구와의 인연은 평생에 걸쳐 이어지게 된다. 뭐든 한번 마음먹으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는 성격상 기량은 꾸준히 늘어갔고 주변의 기대에 걸맞는 빅맨으로 성장하게 된다. 좋은 대우로 코오롱에 입단해 실업 2년차부터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며 주전으로 도약한다.


당시 코오롱에는 주전 센터 이은석(59·1m91㎝)이 있었지만 부상과 20대 후반에 접어드는 적지않은 나이(당시 기준)으로 인해 대체자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주로 리바운드, 스크린 등 수비와 궂은일에서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동료들을 살려주려 노력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렇지 공격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처음 주전으로 도약한 제30회 전국 봄철 여자실업농구연맹전에서 신용보증기금을 상대로 32득점을 폭발시키며 승리를 이끈 것이 대표적 예다. 실업무대와 국가대표로서 한시대를 풍미한 김정민(52·1m90㎝)의 이야기다. 유달리 좋은 빅맨 자원이 많았던 당시에도 좋은 센터자원으로주목을 받았고 특유의 근성과 투지를 앞세워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다.


코트에서는 악착같던 그녀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과 둥글둥글 잘 지내고 싶어하며 즐거운 농구를 통해 인프라를 넓히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나름의 꿈을 가지고 있다. 은퇴후 20여년 가까이 농구클럽을 운영하며 생활체육 전도사로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님이자 이모님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농구인 김정민을 만나 현재 근황과 농구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승패보다는 즐거운 농구를 가르치고 싶어요“

​​​​​​Q.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어린이 스포츠클럽 ‘마이더스 주니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시작했으니 꽤 오래됐네요. 농구 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분들 같은 경우 거의 비슷할거에요. 그냥 출근해서 아이들 가르치고 퇴근해서도 머릿속에 농구 생각 밖에 없어요. 아주 단순한 패턴으로 일, 집 그렇게 반복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루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시기도 하는데 전혀요. 제가 좋아하는 농구를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정말 행복합니다. 생활체육을 가르치던 선배가 도와달라고 해서 우연히 현장에 갔다가 그대로 빠져버린 것이 클럽을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일단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그 속에서 같이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행복해요. 막 시작했을 당시에는 ‘엘리트 스포츠 출신이 왜 취미로 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편견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때만해도 엘리트 스포츠인들의 자부심이 높은 편이었거든요. 엘리트 스포츠를 했으면 같은 코스를 밟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였죠 ------(여기까지).

​​​​​​Q.하지만 앨리트가 아닌 생활체육을 선택했어요.
선택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고요. 제가 이쪽 저쪽 마음대로 고를 상황은 아니었어요. 다만 당시 생활체육의 매력에 꽂혀서 그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것 뿐이에요. 하지만 지금와서 돌아보면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활체육으로 농구를 하는 아이들은 얼굴에 즐거움이 잔뜩 묻어나요. 좋아서 하고 있으니까요. 가르치는 저도, 배우는 아이들도 너무 행복하죠. 물론 엘리트 쪽도 좋아서 하는 친구들도 많을거에요. 하지만 미래를 보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만큼 즐거움보다는 승부에서 이겨야 되는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죠. 저는 아이들을 가르키면서 특별한 경우 아니면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일이 거의 없어요.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경우 정도에만 목소리가 올라갑니다. 아무래도 안전과 직결이 되는 문제니까 조금 예민해져요. 즐거워서 하는 농구인데 다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엘리트 스포츠 쪽에서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을 듯 싶어요.

​​​​​​Q.본의 아니게 화를 내거나 소리칠 일이 많았을 것이라는 말이죠?
아무래도요, 지금보다는 웃는 일이 많이 줄었겠죠. 기본적으로 저는 화를 내면서 가르치는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엘리트 스포츠의 경우 학생들의 미래가 달려있잖아요. 최종적으로 선수를 꿈꾸고 운동을 하는 친구들인지라 성적이 정말 중요해요. 생활체육 가르치듯이 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죠. 생활체육이 즐거움의 성격을 띄고 있다면 엘리트는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최우선이니까요. 바로 앞 질문에서 제가 한 대답 중에 저는 아이들이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엘리트를 하게 되면 그게 참 애매해질 듯 싶어요. 다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몸을 사리라고,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져요. 다른 팀은 막 몸을 던지고 날리고 하면서 근성을 보이는데 저는 반대로 갈수 없으니까요. 저의 지도철학과 모순되는 점도 많아서 스트레스도 적지않게 받았을 듯 싶어요. 결론은 아이들과 이곳에서 즐겁게 농구하는 환경이 저와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웃음)

 

 

​​​​​​Q.생활체육으로 농구를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음…, 체력을 길러가면서 즐겁게 농구한다는 기본은 비슷하겠지만 기타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선생님들마다 장점을 보는 눈이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저는 예의와 배려를 가장 먼저 꼽고 싶어요. 요즘은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오냐오냐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가 적지않은 듯 싶어요. 그러다 보니 나밖에 모르는 성향을 가지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밥상머리 교육같은 것이 이제 옛말이 되었죠. 그런 점에서 농구같은 단체운동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거나 발전시켜나가는데 아주 좋다고 봅니다. 농구는 혼자하는 스포츠가 아니잖아요. 코트에서 다섯 명이 합을 맞춰야 되고 그 외 선수들도 교체 등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응원합니다. 코트에서 만큼은 하나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함께 어울리면서 양보하는 법도 배우고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시너지효과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선생님 혹은 선후배간의 관계 속에서 예의도 배우게 되고요. 농구뿐 아닌 다른 부분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실제 클럽 농구 시합에서의 예의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상황마다 다르니 어떤게 예의다라고 딱 정해져 있지는 않죠, 다만 상대를 다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생활체육이고 엘리트고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저희 팀같은 경우는 시합에서 이겨도 지나친 세례머니 등은 어느 정도 자제를 하는 편이에요. 기쁨은 표현할 수 있지만 진팀의 기분도 생각해서 적덩히 하는 거죠. 물론 이것은 예의가 아니라 배려라고 해야 맞겠네요. 한번은 저희 팀이 이긴 후 인사하려고 담담하게 줄 맞춰서 서있는데 상대팀 아이들은 본인들 선생님에게 다가가서 쟤가 이렇게 부딪히고 당기고 앴는데 파울도 안불어주고 억울해요라는 등 불만을 끊임없이 제기하더라고요. 그러자 그쪽 선생님이 이긴팀 얘들도 별말 안하고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왜 그렇게 아쉬움이 많아라면서 한숨을 푹 쉬시더라고요. 엘리트 스포츠같은 경우 기싸움 차원에서라도 오버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다같이 즐기는 생활체육에서는 되로록 배려를 가져가면서 승부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농구만 재미있으면 되요. 하지만 인성교육은 학창시절이 아니면 배우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Q.인성교육 외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자신감입니다. 아무리 생활체육이라고 해도 운동을 시작했으면 자신감은 필수이지 않을까 싶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헤지는 것이 운동이니까요. 농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아이들의 기질은 제각각이에요. 타고난 부분도 적지 않은지라 내향적인 아이를 외향적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 각자 자신의 성향은 있는거죠. 다만 코트에서는 자신이 배운 것을 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소극적인 아이 같은 경우 슛 찬스가 나도 잘던지는 친구를 찾아 패스를 주기 바쁜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반드시 짚어줍니다. 너도 충분히 슛이 괜찮으니까 빈 공간이 보인다 싶으면 자신있게 쏘거나 파고들라고. 그렇게 해서 들어가면 ‘봐봐, 너도 이렇게 잘 쏘잖아’하면서 칭찬해주고, 못 들어가더라도 ‘폼이나 포물선은 괜찮았는데 아쉽다. 몇 번 던지다 보면 잘 들어갈 것 같아’라면서 격려해주려고 해요. 칭찬과 격려는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큰 방법입니다.

 

 

​​​​​​Q.지인 아들이 클럽농구를 하고있어요, 분위기는 선생님팀과 비슷한 것 같아요. 하지만 정작 시합에서는 소리 지르고 윽박지르는 등 엄한 치도자가 이끄는 팀한테 크게 깨졌다고 하더라고요.
음…, 어려운 문제네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승패를 떠나 아이들이 스스로 농구를 즐기면서 생각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엄하게 하면 당장은 성적이 잘나올 수밖에 없어요. 혼나기 싫어서라도 필사적으로 해야 되니까요. 예전부터 그랬잖아요. 회초리를 들면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하지만 아이들은 길게 봐야지 않나 싶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회초리를 들 수는 없잖아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경기에서 왜 졌는지 각 개인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서로 생각하고 얘기를 나누는게 중요할 듯 싶어요.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노력할 때는 본인이 해당 종목에 애정을 가지고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때가 아닐까요. 그러한 동기부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회초리를 피하고자 노력하고 불태우는 것은 단발성입니다. 회초리의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면 동기부여 또한 옅어집니다. 결국 내가 성장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여야만 되는 거죠. 미국같은 나라가 그렇게 하잖아요.

​​​​​​Q.즐기는 농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족같은 분위기가 연상되요.
그럼요. 선생님이자 고모, 이모같이 다가가기 편한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 아니 그냥 그런 스타일이 된 것 같아요. 저는 다른 것은 바라지 않아요. 즐겁게 운동하러 왔으면 즐겁게 뛰어놀고 함께하는 또래들과 잘 어우러지기만 하면 되요. 그러한 가족같은 분위기 덕인지 농구 외적으로도 소통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줄넘기를 잘 못해서 체육시간이 무서워요 그러면 ‘걱정마, 선생님이 10분 안에 확 달라지게 해줄게’하고 줄넘기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어느 정도 요령이나 느낌만 알려줘도 확 달라지죠. 그러면 더 이상 이 친구에게 줄넘기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자신감 있는 것중 하나로 바뀌게 됩니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님들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사춘기 남학생들의 경우 중학교 정도 들어서면 부끄러움이 많아진 친구들이 대다수에요. 하지만 저는 외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학교끝나고 오면 환하게 웃으면서 이름 부르고 다가가서 안아줘요. 참 기분 좋은 것은 그럴 경우 ‘선생님 왜 그러세요’하고 밀어낼 것도 같은데 쑥스러워하면서도 안겨있더라고요. ‘아이들은 아이들이구나’하면서 더 귀엽게 느껴지는 순간이죠. 아이들에게 이곳이 마음 편하게 즐길 공간이 될 수 만 있다면 만족입니다. 다행히 그렇게 된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한나라의 농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구를 잘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는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아이들은 취미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농구에 대한 애정만큼은 상당해요. 이런 친구들은 앞으로도 농구를 좋아할 것이란 말이에요. 이렇게 늘어가다 보면 그게 농구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여자농구 경쟁력 저하요? 어느 한부분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어요“

​​​​​​Q.최근 여자농구의 경쟁력이 예전같지않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아요.

솔직히 이런 부분은 너무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정답이 아닐뿐더러 자칫 예전에 농구 했던 사람의 시대를 읽지 못한 꼰대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을 듯 싶어서요. 지금부터하는 말은 지극히 개인적읜 사견입니다. 프로기준 예전과 달리 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너무 좋아졌어요. 한팀의 주전급 혹은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라도 한번 달아본 선수들은 정말 좋은 환경에서 많은 돈도 벌더라고요. 각종 의료기술과 몸관리 방법 등도 발전했고 무엇보다 억지로 부상을 안고 뛰는 경우가 거의 사라진 듯 싶어요. 저희가 뛰던 농구대잔치 시절과는 하늘과 땅 차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입지만 굳히게 되면 다들 롱런이 가능해졌고 평균 선수수명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예전 우리 때는 대부분 20대 후반 정도면 은퇴했거든요. 요즘은 40살 가까이 까지 뛰는 선수도 적지 않더라고요. 어찌보면 꿈의 직장이 된거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후배들에게는 치고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좁아졌어요.

​​​​​​Q.아 그럴수도 있곘네요. 예전에는 억지로라도 세대교체를 시켰는데 현재는 상황이나 분위기가 다르니까요.
맞습니다. 팀에서 어느 정도 입지만 굳히면 오랫동안 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요소지만 반대로 그러한 모습을 보고 후배들이 꿈을 꾸기에는 기존의 벽이 너무 두터워요. 영화는 너무 재미있는데 내가 배우로 들어가고 싶어도 기존 배우들의 아성이 너무 탄탄해서 그게 안되는거죠. 팀이라도 많으면 상당 부분 해갈될 수 있겠으나 외려 예전보다도 큰 폭으로 줄어잖아요. 자리는 한정되어있고 선배들은 롱런하니 이를 지켜보는 후배들 입장에서는 팍팍한 느낌도 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 보니 농구선수를 꿈꾸는 자원도 많이 줄었고 설사 시작했다 해도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는 경우도 잦아졌죠. 물론 반대로 기존 팀이나 선배들 입장에서는 ‘승부의 세계에서 선후배가 어디있냐. 실력으로 뛰어넘으면 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잖아요. 아마농구 풀이 좁으니 인재도 적게 나오고 프로농구 선수가 되어도 초반부터 기회를 받기는 쉽지 않으니 몇 년씩 버티고 버틴 케이스만이 생존을 이어가게 되더라고요. 선수가 되고자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만큼 선수로 뛸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않으니 예전처럼 유망주 풀이 넓어질 수가 없는거죠. 농구부가 있는 학교에서도 부원들을 많이 받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고요. 특정한 쪽의 문제는 아니에요.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지극히 개인적인 저만의 의견이었습니다. 잘 모르면서 저런얘기한다고 답답해하기보다는 ‘저런 의견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주세요.

 

 

​​​​​​Q.엘리트 농구를 하다가 잘안되면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부분도 영향이 있지않을까요?
아, 그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엘리트 농구를 하게 되면 사실상 길을 하나뿐이에요. 일단 선수가 되어야죠. 냉정한 현실이지만 선수가 되지 못하면 엘리트 농구를 하게 된 의미가 없어져요. 하지만 모두가 선수가 될 수는 없잖아요. 경쟁이란 말이에요. 나름 한가닥씩 하는 유망주 중에서도 선수까지 안착하는 경우는 말 그대로 소수에요. 선수가 되어서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 문제고요. 그렇다고 중간에 어렵겠구나 싶어서 길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아요. 운동 대신 공부를 하려고 해도 그때는 평범한 일반 또래 학생들보다도 많이 뒤쳐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죠. 공부하는 습관도 몸에 안 배였고요. 죽든살든 선수 쪽으로 모 아니면 도의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선수가 된다 해도 은퇴 후 미래라는 또 다른 과제가 남게되고요. 일부 스타급 선수가 아니라면 큰돈을 벌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지라 은퇴 후 낯선 사회생활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죠. 저도 은퇴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지도자의 길도 있지만 엘리트 쪽은 자리가 한정되어있잖아요. 어느 정도 운과 타이밍이라도 따라줘야 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더라고요. 먼저 간 선배님들께서 길잡이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그분들도 사실상 많이 힘들었을 것인지라 이른바 안정적으로 믿고 갈 수 있는 코스가 없는거죠. 요즘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선후배들은 물론 WKBL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야 하려는 선수들도 더 늘어나지 않겠어요.

​​​​​​Q.개인적으로는 은퇴후 계획이 있었나요?
저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책보는 것을 좋아해요.(웃음) 그래서 대학을 가서 공부를 많이 하고 도서관에 파묻혀 책만 보는 생활을 꿈꾸었어요. 책보고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실컷 해보지 못한 쪽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던 듯 싶어요. 그러다가 고향인 울릉도에 갔다가 우연치 않은 계기로 사업을 하게 됐고 나름 잘됐어요. 그러다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는 선배가 생활체육 농구를 가르치는 것을 와서 도와달리고 해서 잠깐 했는데 너무 적성에 잘 맞았던거죠. 이후 기존 사업은 동생이 하게 되고 저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농구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농구는 저에게 영원한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단순해요. 제가 어릴 때부터 키가 커서 그랬는지 중학교 때 체육 선생님이 농구부가 있는 학교 선생님에게 추천을 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울릉도가 시골이잖아요. 이곳에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여학생이 있으니 자연스레 눈에 띄게 된거죠. 초등학교 시절에는 육상을 하는둥 마는둥 했고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 농구공을 잡게 됐습니다. 그때 제 키가 170cm정도 되었을거에요. 당시 남자 어른 중에서도 그보다 작은 분들이 많았을 때이니 여중생 키로는 좀 많이 컸죠. 사실 저는 운동을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아니 싫어했다고 보는게 맞을거에요. 단지 크다는 이유만으로 운동을 해야만 하는 상황도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춘기라 그랬나? 넓은 대구로 가서 생활한다는 부분이 큰 메리트로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가봤자 운동말고는 할 것도 시간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학교생활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선배 언니들도 잘해주시고 농구에도 점점 재미를 붙여가면서 당시의 판단을 후회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Q.어린 시절 육상을 했었으니 운동신경도 나쁘지 않았을 듯 싶어요.
아니요. 별로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키 큰 사람들이 싱겁다고 하잖아요. 제가 운동신경 쪽으로 딱 그랬죠. 일반 학생들과 비슷한 정도였을거에요. 운동부에서 펄펄 날아다니던 선수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났죠. 원체 키가 컸으니까 선생님께서 장래를 보고 키우려고 데리고 갔다고 보는게 맞겠네요. 농구부 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훈련은 정말 힘들었어요. 다른 부원들에 비해 늦게 시작했던지라 기본기 훈련부터 정말 혹독하게 가르침을 받았죠. 저뿐 아니라 그런 훈련을 이겨내고 선수까지 가신 분들은 정말 박수받을만합니다. 그때 선수 생활을 했던 분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다시 돌아가서 그대로 훈련받으라면 못할 것 같다고.(웃음) 당시의 시대상과 분위기, 그리고 어린 나이 등이 받쳐줬으니까 가능했던거죠.

​​​​​​Q.코오롱은 어떻게 가게된거죠?
가끔보면 스카우트 비화 그런 것 있잖아요. 저같은 경우 1도 없습니다.(웃음) 당시 학교와 코오롱이 서로 윈윈하는 관계였는데 그로인해 선택의 여지없이 갈 수밖에 없었죠. 개인적으로는 친한 언니들이 많은 현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막연하게 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단호하게 코오롱으로 가야 된다고 못을 박아주시더라고요. 저는 시키는데로 팀을 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동기들 중에서 손가락에 꼽힐 만큼 기대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금전적인 부분 등은 팀에서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Q.당시 코오롱이 훈련량이 많기로 악명높지않았나요?
하하핫…, 아시네요. 당시 대부분 실업팀들은 하나같이 훈련량이 엄청났어요. 코오롱은 그중에서도 유명했어요. 때문에 제가 코오롱으로 간다고하니까 친구들이 ‘거기 훈련량 장난아니라는데 어쩌냐’면서 걱정해줬을 정도니까요. 실제로 가보니까 어땠냐고요? 역사나 였죠.(웃음) 들었던 것 이상으로 훈련량이 많더라고요. 그런 훈련 덕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강해진 것은 사실이겠지만 훈련을 받는 순간만큼은 후아…, 그냥 지옥 같더라고요. 그냥 죽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어요.

​​​​​​Q.분위기는 어땠나요? 당시에는 여자농구팀 사이에서도 폭력이 만연했던 시절이었잖아요.
그게 선생님들마다 다 달라요. 다행히도 저를 지도해주셨던 정주현, 안준호 선생님 등은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정주현 선생님같은 경우 폭력을 쓰는 것을 싫어하셨어요. 호통은 종종 치셨지만 정말 화가 나셔도 으이구하면서 손만 들어올리고 마시는 편이었죠. 안준호 선생님도 마찬가지셨고요. 정말 크게 잘못했어도 꿀밤 한 대 전부가 고작이었죠. 시대가 시대인지라 저희는 그것만으로도 무서웠지만요.(웃음)

 


​​​​​​Q.포지션 특성상 집중견제도 적지 않게 당했을 듯 싶어요.
아무래도요.(웃음) 말해 무엇하겠어요. 밖에서는 다들 친하지만 상대 팀으로 코트에서 만나면 전쟁터가 따로 없었어요. 특히 저같이 키 큰 선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비가 쉽지 않으니까 심판들 눈을 피해 꼬집고 당기고 때로는 한 대씩 퍽하고 치고 그랬죠. 저 역시 다른 자리에서는 그렇지않지만 코트에서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었어요. 궂은일, 수비등을 특히 열심히하는 편이었는데 그런 부분은 근성이 없으면 힘듭니다. (천)은숙, (하)숙례 언니를 비롯 장선형, 조미화까지…, 하나같이 수비가 좋아서 팀 디펜스 자체가 탄탄했어요. 공격같은 경우 은숙 언니 등 좋은 가드들이 패스를 잘 넣어줘서 손쉬운 받아먹기 득점도 많았죠. 한번은 상대편 선수가 경합 중에 저를 팔꿈치로 친적이 있어요.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지만 따라가서 똑같이 돌려줬어요. 너무 대놓고 하다보니 상대편 벤치에서 난리가 났고 이후 사과를 한적도 있습니다.

​​​​​​Q.말을 들어보니 정말 수비에는 진심이었군요?
진심보다는 재미있었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당시 선후배들이 하나같이 개인 수비는 물론 팀 수비에도 능했거든요. 손발이 척척 맞았어요. 혹시 앞선에서 뚫리더라도 내가 어느 만큼 나가서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이 바로바로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마치 게임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더 수비에 흠뻑 빠질 수 있었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농구는 마치 수학같아요. 특유의 공식이 있거든요. 리바운드를 예로 들어볼께요. 공이 림에 맞고 튀어 오를 때 지켜보면 나름대로의 각도가 있어요. 저기를 맞으면 저쪽으로 튀고, 저 부분에서는 이쪽으로 꺾일 가능성이 크고…, 농구의 매력입니다.(웃음)

​​​​​​Q.몸을 사리지 않는 스타일이셨던 것 같은데 부상은 없었나요?
잔부상이야 저 뿐아니라 다들 달고 다니던 것들이고, 큰 부상으로는 무릎 때문에 좀 고생했어요. 무릎 수술만 두 번 받았거든요. 상하이에서 있었던 동아시아대회로 기억해요. 국가대표로 중국을 갔다온 뒤에 팀에 복귀했는데 훈련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쳐버렸어요. 수술을 해야만 했는데 그때 21살 밖에 안되던 어린 시절이었던지라 몸의 고통 못지않게 심적인 괴로움도 꽤 컸어요. 벌써부터 이렇게 다쳐버렸으니 이후가 걱정되었던 거죠. 다행히 일본까지 가서 받은 수술이 잘됐고 재활도 충실히 해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난 이후 다시 한번 무릎을 다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죠. 선수 생활이야 당시 기준으로 남들 하는 만큼 했지만 2번째 수술을 받고 나서는 운동능력이나 여러 가지 몸을 쓰는 부분에서 아무래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20대 후반에 국민은행에서 은퇴를 결정했을 당시 선생님들께서 프로가 곧 출범하니 좀 더 뛰어보는게 어떠냐고 만류했어요. 하지만 스스로 몸상태 등을 돌아봤을 때 어정쩡하게 프로에서 뛰느니 깔끔하게 은퇴하는게 더 낫다고 판단해서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Q.마지막 질문입니다. 농구인 김정민에게 농구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영원한 호기심의 대상? 농구공은 둥글잖아요. 그 둥근 공을 가지고 땀을 흘리면서 승부욕을 불태웁니다. 힘을 때도 있었지만 행복할 때도 많았어요. 농구가 있었기에 우리 천사같은 아이들을 만날 수도 있었고요. 저도 농구공처럼 둥글게 둥글게 살고 싶습니다. 더불어 저는 어릴 때부터 남들이 잘 가지지 않는 부분에도 자잘한 호기심이 많았어요. 바닥은 왜 이렇고 천장은 왜 이렇지 등등…, 농구에 관련된 것이라면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다 알고 싶은 마음이 강한가 봐요. 여전히 저는 우리 친구를 더 깊이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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