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야영] 암릉 타고 올라 석류알 같은 일출 앞에서 아침식사

민미정 2024. 1. 3.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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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암산 암릉에서의 아침. 누룩덤에서 야영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우뚝 솟은 누룩덤을 멀리서 바라보며 그 너머로 펼쳐진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더욱 좋았다.

유초연 언니를 만난 건 9년 전이었다. 홀로 백패킹을 다니다가 친구의 권유로 동호회에 가입했을 때였다. 동호회에서 가냘픈 몸으로 커다란 박배낭을 짊어진 언니를 만났다.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대학 산악부 출신이었음에도 산부심 넘쳐나는 여느 산악부 출신들과 달랐다. 그녀는 항상 겸손했다. 산에서는 물론 일상에서도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응원해 줬다. 내가 필요로 할 때 기꺼이 손을 잡아주는 든든한 사람 중 하나다.

휴일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녀와 "겨울에 눈이 오면 떠나요!"라는 막연한 약속을 하고 겨울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 우리 다음주에 떠날까요?"

"그러자!"

이번에도 언니는 묻고 따질 것도 없이 흔쾌히 응했다. 시간이 촉박한 만큼 재빠르게 장소 세 곳을 추려 언니에게 보냈다. 언니는 내가 1순위로 생각했던 '감암산'을 골랐다.

"그래도 바위산이 재밌겠지? 무리하지 말고 살방살방 다녀오자!"

"저도 좋아요!"

병바위에서 감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등반하는 재미가 있다. 더불어 주변의 멋진 풍광이 많은 등산객을 불러 모은다.

감암산은 경남 합천에 있다. 높이 828.3m의 암산이다. 누룩덤, 병바위 등 암릉구간은 아슬아슬한 리지에서의 스릴을 즐기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코스다. 코스마다 다양한 기암괴석이 즐비해 인생사진 담기에 안성맞춤이다.

바위를 타려면 배낭이 가벼워야 했다. 이상기온으로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방한준비물은 가볍게 챙길 수 있었다. 음식도 간단하게! 치즈, 과일 등만 간소하게 챙겼다. 사진 욕심은 버릴 수 없었다. 촬영 장비를 채우고 나니,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다.

'이까짓 배낭 하나 못 들까봐!?'

등에 얹어진 배낭은 그럭저럭 멜 만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자 배낭을 메고 서성이는 언니가 보였다. 조용히 옆에 다가가 배낭을 내리는 언니 맞은편에 슬며시 내 배낭도 내렸다. 나를 발견한 언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왔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을 때, 연락도 없이 일터로 찾아와 조용히 안아주던 언니였다. 가끔 안부 통화를 했지만, 반 년 만의 재회였다. 언니는 배낭을 내리고 양팔을 크게 벌렸다. 나는 아이처럼 언니에게 안겼다. 작은 그녀의 품은 포근했다. 간단히 안부를 묻고 바로 산청행 버스에 올랐다.

바위 틈을 지나는 유초연씨. 감암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코스엔 기암괴석이 늘어섰다.

병바위 리지, "우회하자!"

3시간 남짓 달리던 버스가 멈췄다. 준비가 철저한 언니는 내가 잠꼬대처럼 흘려 말했던 코스의 교통편과 시간, 들머리를 자세하게 조사해 왔다. 자투리 시간까지 알차게 챙겼다. 덕분에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재빨리 맥주 두 캔을 샀다. 아무래도 정상에서 맥주 한 캔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들머리인 상법마을까지 하루에 한 대뿐인 버스에 올라탔다. 일단 움직이고 보는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커다란 배낭을 버스 중간의 넓은 공간에 세워놓았다. 동네 어르신들이 앉으며 물었다.

"어이쿠야~ 그 큰 가방을 들고 어디서들 왔어?"

"서울에서요."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감암산에 오를려구요."

"감암사안~, 거기 좋지~! 근데 나는 안 가봤어~"

"풉!" '안 가봤는데 좋은지 안 좋은지 어떻게 알지?' 할머니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버스가 출발했다. 시골길은 꼬불꼬불 굽이졌다. 버스가 방향을 틀 때마다 배낭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결국 급커브길에서 배낭이 버스 안에서 나뒹굴었다. 앞에 앉아 있던 언니가 배낭을 일으켜 세웠다. 불안한지, 배낭이 놓인 공간 앞자리에 옮겨 앉았다. 배낭이 흔들릴 때마다 손으로 잡았다.

금강폭포 아래에 선 유초연씨. 잠시 풀린 날씨에 얼어붙었던 폭포가 13 부서져 아래쪽에 얼음 알갱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배낭을 그냥 뉘어 놓으면 되지~, 뭘 잡고 있어."

할머니가 조언했다. 언니가 대답했다.

"아~, 그럼 되겠네요!"

언니는 멋쩍게 웃으며 가지런히 세워 놓았던 배낭을 나란히 쓰러뜨렸다. 우리는 배낭을 지극히 깔끔하게 쓰는 편이 아니다. 그저 항상 그렇게 했으니까. 틀에 박힌 생각이 단순한 이치를 간과하고 있었다. 소소한 깨달음을 준 할머니는 재밌게 놀다 가라며 인사를 하고는 먼저 내렸다.

언니의 계획대로 시간에 맞춰 상법마을 들머리에 도착했다. 야영장소인 누룩덤까지 보통 3시간 남짓 걸렸다. 배낭이 무거운 우리는 4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다. 중간에 드론을 날리면 조금 더 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껴입은 옷들을 다 벗어버릴 만큼 날씨는 포근했다. 시작은 수월했다. 곧 금강폭포에 도착했다. 날씨는 포근한데, 폭포 아래에 하얀 얼음이 가득했다. 날씨가 풀리기 바로 전 한파 때 얼어붙었던 폭포가 녹아 떨어져 쌓인 얼음인 것 같았다. 금강폭포 옆으로 폭포 상단을 지나 병바위를 오르는 리지 코스가 있었다. 우리는 박배낭이 아니더라도 안전장비가 없기 때문에 그쪽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우회길은 조금 가팔라졌지만, 순조로웠다. 마침내 병바위 갈림길에 올라섰다. 암릉구간이 시작됐다. 배낭을 내려놓고, 촬영장비만 꺼내 병바위로 향했다. 상법마을 너머로 해가 기울고 있었다. 언니는 병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태양 주위로 커다란 무지갯빛 해무리가 드리워졌다. 마치 언니가 빛을 내뿜는 것 같았다. '저것은 언니의 아우라인가? 언니는 천사인가?' 혼자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병바위. 바위가 폭포수 쏟아지듯 절벽 아래쪽으로 쏟아진다. 왼쪽에 금강폭포가 있다.

드론 삼매경에 빠져 있는 사이 언니가 시간을 일러주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제야 재빨리 배낭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능선 위로 이어진 암릉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인적이 드물었던지 바위 표면은 까칠해서 미끄럽지 않았다. 중간 어디쯤에서 두 군데 시그널을 발견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두 길이 앞에서 만나겠거니 싶어 조금 쉬워 보이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회로였다. 바위 위로 올라갔어야 탁 트인 조망을 보며 오를 수 있었을 텐데. '곧 해가 저물고 박배낭으로는 위험할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지만, 우회로도 만만치 않았다. 빼곡히 들어찬 바위 틈새를 지나가기에는 우리의 배낭이 너무 컸다. 가볍게 꾸린 배낭이지만, 짊어진 채로 통과하기가 힘들었다.

가장 난감했던 건 좁은 바위틈 위, 머리 꼭대기 높이에 요염한 자태의 소나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코스를 지날 때였다. 높은 바위는 반동으로 뛰어 올라야 했는데, 나무가 위에 있어 무리였다. 그렇다고 나무를 잡고 오르려니, 배낭을 멘 채 올라설 공간이 없었다. 배낭을 벗어 두 갈래로 뻗은 소나무 틈새로 들어올렸다. "으랏차차~!!!" 있는 힘껏 배낭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지만 소나무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두세 번 들쳐 올리며 뒤에서 언니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나무에 배낭을 걸칠 수 있었다. 나무를 타고 올랐다.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자리에 서서 등산객들을 방해한다기보다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을 텐데, '아, 미안해!' 생각만 하고선 멀뚱히 서있었다. 뒤따라 나무 위로 올라선 언니가 나긋하게 말했다. "고마워 소나무야."

바위 틈새에 자리잡은 소나무가 등산객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언니다웠다. 그녀는 매사에 모든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바른 사람이었다. 나도 멋쩍게 말을 던졌다.

"고마워! 소나무씨~!!"

나는 나답게 씩씩하게 외쳤다. 소나무가 괜찮다면서 윙크하는 것 같았다. '찡긋!'

다음 길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이어진 된비알은 암릉구간에서 영혼을 탈탈 털린 우리에게서 뭔가를 더 짜내려는 듯 쥐어짰다. '배낭만 가벼웠어도'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운동을 게을리한 탓이지 뭐!'라면서 명랑하게 암릉구간을 지났다. 간신히 감암산에 올라섰다. 이제 누룩덤까지 내리막이었다. 길을 확인하고 재빨리 발을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이 나타났다. 동시에 땅거미가 졌다.

"여기가 누룩덤은 아닌 거 같은데요?"

"응. 저 앞에 보이는 게 누룩덤일 거야."

"흠… 이 어둠에 움직이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여기서 멈출까요?"

"그러자."

오랜만에 암릉 산행이 고되기도 하고, 누룩덤까지 암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멈추기로 했다. 언니는 전망 좋은 자리를 나에게 양보하고 뒤편으로 갔다. 언제나 그랬듯. 텐트 설치하고 문을 열어 놓은 채, 허기를 채울 빵과 과일을 꺼냈다. 쌀쌀했지만, 차가운 맥주 한모금과 과일을 입에 넣었다. 갈증이 풀렸다. 산청 터미널에서 맥주 두 캔만 산 것이 아쉬웠다. 두 캔만 더 살 걸. 아쉬움 속에서 우리는 밤이 늦도록 그동안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비화식으로 준비한 음식들. 얇게 자른 모짜렐라 치즈와 토마토 위에 발사믹 소스를 뿌리면 생각보다 간단하고 든든한 한끼 식사가 된다.

붉은 석류알 같은 일출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텐트 문을 열었다. 잿빛 구름 사이로 붉은색이 감돌았다. 구름 사이에서 빨간 석류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재빨리 드론을 띄웠다. 드론이 하늘로 뜨자마자 밝은 빛이 쨍하고 나타났다. 온통 잿빛이던 하늘은 파랗게 본색을 찾았다. 재색과 파랑, 그리고 붉은빛이 섞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도 폭죽이 터졌다. 기분 좋았다. 텐트 밖에서 태양을 마주하고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언니의 모습은 내가 그리던 풍경 그대로였다. 주스와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배낭을 꾸렸다.

"미정아 누룩덤으로 하산할 거야?"

"우리 어제 고생 좀 했으니, 오늘은 편한 길로 하산할까요?"

"그래. 이번엔 이걸로 충분한 것 같다."

여느 때라면 고집을 부려서라도 계획했던 코스를 완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완주는 의미가 없었다. 오랜만에 언니와 자연에서의 1박2일로 충분했다. 아, 힐링이다!

민미정 깨알 팁

<아무도 묻지 않아도 알려주고 싶은 정보>

스릴만점 감암산의 알짜배기 코스

누룩덤 코스

대기마을~목교~누룩덤~칠성바위~828고지~감암산 정상~원점회귀

약 7km(약 4시간 소요)

*고정 로프와 데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병바위-누룩덤 코스

상법마을~금강폭포~병바위~감암산 정상~칠성바위~누룩덤~ 대기마을

약 6km(약 3시간30분 소요)

*폭포하단에서 상단을 지나 병바위에 이르는 암릉 구간은 리지 코스로 숙련자의 리드와 구간에 따라 로프가 필요하다. 안전한 우회로도 있다.

병바위-감암산 코스

(이번 산행 코스) 상법마을~금강폭포~병바위~감암산 정상~암수바위~상법마을

약 5.5km(약 5시간 소요)

월간산 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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