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스프링클러 없는 아파트… 50대 1명 화마에 숨져

김나현 2024. 1. 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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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산본동 아파트 16명 사상
외벽 그을리고 매캐한 냄새 진동
9층 발화가구는 새까맣게 전소돼
거동 불편한 50대 연기흡입 사망
아내도 호흡 곤란 호소 병원치료
복도 따라 연기 배출 피해 최소화
화재 신고 1시간 만에 진화 완료
“전열기 누전·과부하 등 주의해야”
경찰 “관계기관 합동 감식 진행”

새해부터 연이은 화재로 비극적인 소식이 이어졌다. 경기 군포시의 한 아파트에서는 50대 남성이 화마 속에서 세상을 등졌다. 겨울철 반복되는 ‘아파트 화재’에 전문가들은 전열기구 사용 시 누전이나 과부하 등에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2일 오전 화재로 16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한 아파트 앞에는 주민들이 불이 난 9층을 올려다보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들은 황급히 대피하느라 겉옷만 겨우 걸친 잠옷 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새해 벽두에 화재 2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 9층에서 불꽃과 함께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이날 화재로 50대 남성이 숨지고 이 남성의 아내와 이웃 주민 10여명이 다쳤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군포=최상수 기자
이날 최초 화재가 발생한 913호는 새까맣게 전소돼 내부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같은 층 복도 외벽은 모두 검게 그을렸고, 아파트 곳곳엔 잿가루가 빼곡했다. 흩날리는 글씨체로 대문마다 적힌 ‘대피 완료’ 표시는 긴급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게 했다. 멀리서도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냄새에 주민들은 인근 복지관으로 피신해 숨을 돌렸다.

경기 군포시 산본동의 15층짜리 아파트 9층에서 불이 났다는 119 신고는 이날 오전 7시15분쯤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1시간여 만인 오전 8시26분쯤 진화를 완료했지만, 불이 난 집에서 대피하던 남성 A(51)씨가 연기 흡입으로 숨졌다. 화재 당시 함께 있던 50대 아내 B씨와 손녀는 무사히 대피했지만, B씨 역시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호흡 곤란을 호소해 고압산소가 있는 인천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불이 난 집에는 평소 A씨 부부와 아들이 거주했고, A씨 부부의 딸과 손녀는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부모님 집을 찾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의 아들은 출근 중 화재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마주해야 했다. 숨진 A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거동이 불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일 화재 진압 후 경찰 과학수사팀이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 경기도소방재난본부·군포=최상수 기자
같은 층 이웃 주민들은 A씨 부부를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918호에 거주하는 조정선(68)씨는 “내가 글을 읽을 줄 몰라서 (A씨) 부부 집에 가서 문자를 쳐달라고 하면 보내주고 그랬다”며 “싸우는 소리가 가끔 들렸지만 화통한 양반들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혼비백산했던 오전을 떠올리며 불안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915호 주민 이모씨는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바로 옆에서 불기둥이 치솟고, 살려 달라는 소리가 끝없이 들렸다”며 “살려 달라고 20분쯤 아우성치니 소방대원들이 집 문을 두드려 함께 대피했는데 아직 떨린다”고 토로했다.
해당 아파트는 준공된 지 30년 가까이 된 탓에 아파트 내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11층 이상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건 2004년 이후다. 다만 해당 아파트는 층마다 양측에 엘리베이터를 두고 10세대씩 두 라인이 서로를 마주 보는 직사각형 구조로, 긴 복도를 따라 연기가 잘 배출돼 비교적 피해가 작은 것으로 파악됐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현장 브리핑에서 “화재로 인한 연기가 다른 세대로 들어가지 않고 상공으로 올라가 피해가 우려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일 경기 군포시 산본동 아파트 9층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숨지고 10명 가량이 연기 흡입 등으로 다쳤다. 사진은 이날 화재 현장의 모습. 군포=최상수 기자
경찰은 유족 및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방화 혐의점은 없으며 사고로 인한 화재로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오늘부터 관계기관과 합동 현장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 교수는 “겨울철에는 날씨가 건조한 데다 추워서 난방기구 등 전열기구를 많이 사용해 과부하 등으로 인한 화재 사고가 잦다”며 “전열기구는 반드시 콘센트에 단독으로 꽂고, 멀티탭을 사용할 때는 정격 용량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멀티탭 전선에서 열기가 느껴지면 보다 굵은 전선의 멀티탭으로 교체하고, 안전장치가 내장된 스위치 달린 멀티탭 사용을 권장한다”며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점검 외에도 월 1회 이상 아파트 거주자가 직접 집에 있는 누전차단기 시험 버튼을 눌러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군포=김나현·오상도, 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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