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청룡 해’... 승천하는 용 기운 담은 와인·보드카·소주 한 잔

유진우 기자 2024. 1. 3.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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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업인들과 정치인들 신년사에서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사자성어를 고르라면 단연 ‘비룡승운(飛龍乘雲)이 뽑힌다. 비룡승운은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뜻으로, 영웅호걸이 때를 만나고 권세를 얻는 장면을 묘사한 말이다.

새해 벽두 주류업계에서도 용(龍)이 모처럼 주연감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와인이나 위스키 같은 외국산 주류에서 용을 차용한 술은 보기 어려웠다. 동양 문화권에서 용은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신화적 존재다. 반면 서양 문화권에서 용은 퇴치해야 할 사악한 짐승에 가깝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류 시장이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하면서 유명 주류 기업을 중심으로 청룡을 내세운 술들이 올해 속속 등장했다. 와인과 위스키, 증류식 소주, 대중적인 막걸리처럼 여러 방면에 걸쳐 다양하게 존재감을 내세우는 모습이다.

갑진년(甲辰年) 새해 와인과 위스키에 등장한 용들은 하나같이 동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동양 용과 서양 용(dragon)은 생김새부터 다르다. 동양 용은 뱀처럼 기다란 몸에 다리가 짧고, 수염이 달려 있다. 입에는 여의주를 물었다. 날개는 없지만 기다란 몸을 구불구불 움직이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반면 서양 용은 거대한 몸통에 네 다리와 박쥐를 닮은 날개가 달려있다. 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을 난다. 입에는 구슬 대신 불이 뿜어져 나온다.

그래픽=정서희

롯데칠성음료가 청룡해 한정판으로 선보인 호주 와인 킬리카눈 더 드래곤 쉬라즈 (Kilikanoon the Dragon Shiraz)는 겉면 용 그림을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한 경복궁 근정전 청룡 부적에서 따왔다.

경복궁은 1394년 창건 당시부터 관악산에서 뻗어 나오는 화기(火氣)를 다스리기 위해 곳곳에 용에 관한 물건과 그림을 새겨 넣었다. 경회루 연못에서는 청동 용이 출토됐다. 건물 내력서에 해당하는 상량문(上梁文)에서는 이번 와인에 쓰인 청룡 부적이 나왔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이 부적에서 청룡은 동쪽을 수호하는 사방신으로 화재와 액운을 막고 궁을 수호하는 존재”라며 “와이너리와 협의해 4950병을 한정 수량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종합주류기업 아영FBC도 베스트셀러 칠레 와인 디아블로 브랜드로 청룡 에디션 와인 세트를 내놨다. 이 와인 역시 디아블로가 오로지 한국 소비자를 위해 만든 한정판 상품이다.

디아블로(diablo)는 스페인어로 악마를 뜻한다. 이 브랜드 본래 명칭 ‘까시예로 델 디아블로’는 악마의 저장고라는 의미다. 악마가 나오는 와인 저장고에 보관하던 와인이라는 얘기인데, 100년 전 와인 도둑을 쫓아내기 위해 일부러 주인이 저장고에 숨어서 악마 소리를 낸 데 유래했다.

아영FBC는 지난해 서양권 악마가 우리나라 도깨비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디아블로 도깨비 에디션을 선보였다. 이어 올해는 여기에 청룡을 더해 용에 대한 동양적 재해석을 곁들였다.

스코틀랜드 싱글몰트 위스키 더 글렌그란트를 수입·유통하는 트랜스베버리지도 청룡해를 상징하는 용 모양 보틀 스토퍼를 넣은 새 패키지를 출시했다. 보틀 스토퍼는 남은 제품을 보관할 때 사용하는 다회용 마개다.

이처럼 글로벌 대형 주류 브랜드들은 구매력이 부쩍 커진 국내 소비자를 겨냥해 매년 12간지에 맞춘 한정판 제품을 내놓는 추세다. 올해 청룡처럼 그 해에 맞춰 상징하는 동물을 병에 새기거나, 유명 작가와 협력해 동물 그림을 패키지에 그려 넣는다.

외국인들에게 이제 동양 음력 문화는 낯설지 않다. 12간지에 유독 민감한 중국 주류 시장 역시 성장세는 이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시장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는 화려한 한정판 제품은 이들 구매욕구를 자극하기 좋다.

세계 최대 종합주류기업 디아지오는 올해 대만계 아티스트 제임스 진과 손잡고 유명 블렌디드 위스키 브랜드 조니워커 블루 라벨에 청룡 디자인을 입힌 특별 패키지를 선보였다.

최고급 위스키 킹 조지 5세와 싱글몰트 위스키 글렌피딕 21년도 청룡해 한정판으로 내놨다. ‘명품제국’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소속 코냑 브랜드 헤네시와 호주 국보급 와이너리라 불리는 펜폴즈 역시 올해 이 행렬에 동참했다.

국내 주류 브랜드 중에서는 화요가 화요 53% 청룡 에디션을 내놨다. 화요는 이전부터 용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아 이전부터 53도 프리미엄 제품에 황금색 용을 그려 넣었다. 올해는 이 53도 제품이 담긴 검은색 도자기 병에 황금색 대신 파란색으로 청룡을 새겼다. 그 밖에도 느린마을 막걸리가 청룡 에디션을, 홍천 두루양조는 증류식 소주 용41과 용50를 출시했다.

대한민국주류대상 심사위원인 유성운 한국증류주협회 사무차장은 “두루양조 용50은 누룩으로 빚은 증류식 소주지만 쿰쿰한 누룩향보다 과실향과 꽃향기가 많이 난다”며 “초록복숭아, 앵두향, 장미향을 중심으로 민트, 참깨향까지 품고 있어 용의 기운을 느끼기 좋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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