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스 라운지-심란한 교사와 현대인의 자화상[시네프리뷰]

2024. 1. 3. 06: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커 카탁 독일 감독은 <티처스 라운지>에서 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차 곤경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여교사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현대 사회에서 대두되는 다양한 논쟁거리를 촘촘하게 투영하고 있다.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목: 티처스 라운지(The Teachers’ Lounge)

제작연도: 2023

제작국 : 독일

상영시간: 99분

장르: 드라마

감독: 일커 차탁

출연: 레오니 베네쉬, 에바 뢰바우, 아네-카트린 구미히

개봉: 2023년 12월 27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인간사 천태만상이 영화의 소재가 되고, 사랑 이야기만큼이나 선생님이나 학교가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도 많다. 과거 교사가 등장하는 영화들은 인간애 넘치는 드라마 장르가 많았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던 그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이 존경의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은 상식이었다. <미라클 워커>(The Miracle Worker·1962), <언제나 마음은 태양 >(To Sir, with Love·1967), <홀랜드 오퍼스>(Mr. Holland’s Opus·1995) 같은 영화들은 존경받는 스승상을 그려낸 대표적인 작품으로 꾸준히 회자한다.

<티처스 라운지>의 홍보사도 시대를 초월하는 선생님과 학생, 학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라며 <죽은 시인의 사회>, <스쿨 오브 락>, <굿 윌 헌팅>을 언급하고 있다. 교사 영화의 대표작으로 맞는 예시다. 하지만 그것이 <티처스 라운지>라는 작품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다소 모순이 있다.

<티처스 라운지>에서 그려지는 교사의 모습은 과거 작품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이 작품만의 특색이 아니다. 최근 공개되고 있는 영화 속 상당수에서 비슷한 경향이 목격된다. 언제부턴가 선생님과 학교가 소재가 된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하기 힘든 세태가 됐다.

교권 문제로 대유되는 현대판 마녀사냥

매즈 미켈슨이 출연한 덴마크 영화 <더 헌트>(The Hunt·2012)는 이러한 변화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소환되는 작품이다. 작은 오해와 편견에서 시작된 의심이 집단 안에 전염될 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루마니아 감독 라두 주데의 <배드 럭 뱅잉>(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2021) 역시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능과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성실한 교사였던 에미(카티아 파스칼리우 분)는 남편과 찍은 은밀한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작된 동료와 학부모들의 질타에 용맹하게 대항한다.

최근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怪物·2023)에서도 선생님의 이야기는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아이, 부모, 교사 각각의 다른 시선이 빚어내는 괴리와 오해는 결국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잔인한 파국을 잉태한다.

모든 작품이 표면적으로 교사라는 직책이 갖는 ‘책임’이라는 무게와 이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그러나 단순히 교권 하락이라는 현실 반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소통의 부재와 이기주의로 나날이 피폐해져만 가는 현대 사회가 당면한 보편적 문제의 대유라고 읽는 것이 옳다.

영화 <티처스 라운지> 역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보다 폭넓고 섬세한 문제의식으로 관객들의 공감을 이끈다.

독특한 소재에 어울리는 개성 있는 연출력

의욕이 넘치는 신임 교사 카를라(레오니 베네쉬 분)는 최근 교내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소소한 절도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다. 신경이 곤두선 것은 동료 교사들도 마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까지 동원되고 교내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카를라는 조용히 절도범을 잡을 수 있는 자신만의 묘안을 생각해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상황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한국에는 낯선 독일 감독 일커 카탁은 <티처스 라운지>를 통해 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차 곤경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 여교사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그려냈다.

표면적으로는 작은 초등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일 뿐이지만, 그 과정 안에 묘사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행동기제의 설계 속에는 현대 사회에서 대두되는 다양한 논쟁거리를 촘촘하게 투영하고 있다.

점차 난관으로 몰려가는 주인공의 심리는 리듬감 있는 편집과 신경을 자극하는 단조로운 음악으로 시각화돼 마치 스릴러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영화상 부분에 독일 영화를 대표하는 예비 후보로 선정됐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아이들의 시간>


/flickr.com


고난받는 선생님이 등장하는 영화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으로 <아이들의 시간>이 있다.

<로마의 휴일>, <벤허>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거장 윌리엄 와일러는 1936년에 미국의 극작가 릴리언 헬먼의 희곡을 재해석해 각색한 <이 세 사람>(These Three)이란 작품을 내놓는다.

작은 마을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두 대학 동창생 카렌(멜 오베론 분)과 마사(미리암 홉킨스 분)가 한 문제아의 거짓말로 인해 인생의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원래 원작 희곡에서는 카렌과 마사 사이를 동성애적 관계로 설정하고 있지만, 감독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 이를 삼각관계로 치환하고 비극적인 결말도 나름 희망적으로 바꾼다. <이 세 사람>은 데뷔 후 10여 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던 연출가 윌리엄 와일러의 화려한 작품목록에 여명을 불러온 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승승장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와일러 감독은 절정기라 할 수 있는 1961년 다시 한 번 이 작품을 영화화한다. 이번에는 마치 과거 자신의 과잉 각색을 의식이라도 한 듯 여러 면에서 원작의 설정과 정서를 최대한 반영한다.

일단 제목을 원작 희곡 그대로 <아이들의 시간>(The Children’s Hour)으로 했다. 두 여주인공의 관계도 미묘한 동성애적 요소를 수용해 이야기의 절박함과 긴장감을 높였다. 결말도 원작을 따랐다.

리메이크작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시대를 초월한 명배우 오드리 헵번과 셜리 맥클레인의 앙상블 때문이다. 더불어 카렌의 연인 조 역으로는 제임스 가너까지 출연한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는 배우는 그러나 모든 문제의 사단이 되는 악동 메리를 연기한 아역배우 캐런 밸킨이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