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10남매 가족 “이병철 고향서 진짜 부자는 우리”

의령/김준호 기자 2024. 1.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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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 고향서 ‘10남매’ 키우는 박성용·이계정 부부
지난달 30일 경남 의령군의 박성용·이계정씨 집에서 부부와 10남매가 한자리에 모여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10남매’를 표현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카메라 앞으로 열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뒤편에는 작년 10월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경남도민의 날 행사 때 선물로 받은 NC다이노스 유니폼이 걸려 있다. 앞줄 왼쪽부터 등번호 7번 예령, 99번 아버지 박씨, 9번 예율, 8번 예후, 00번 어머니 이씨, 10번 예빛, 6번 예명이다. 뒷줄은 왼쪽부터 1번 예서, 2번 예아, 3번 예훈, 4번 예한, 5번 예권이다./김동환 기자

“얘들아, 순서대로 서봐. 1번, 2번, 3번….”

아버지 박성용(50)씨가 부르니 아이들이 방에서 우르르 몰려 나왔다. 아빠·엄마가 쓰는 큰방에서는 예령(10·초3)과 예후(5·유치원생), 예율(3·어린이집), 엄마 이계정(48)씨 품에 안긴 막내 예빛(1)까지 ‘막내 라인’이 나왔다. 오른쪽 ‘딸 방’에선 맏이 예서(20·예비 대학생)와 둘째 예아(18·고2)가 차례로 나왔다. 마지막 ‘아들 방’, 예훈(17·고1)과 예한(15·중2)·예권(13·초6)·예명(12·초5)이 아들 넷은 우당탕 뛰어나왔다.

태어난 순서대로 1번에서 10번까지 제자리를 찾아 나란히 섰다. 어머니 이씨는 “다 함께 마트를 갔다가 호기심이 많은 여섯째 예명이를 잃을 뻔한 적이 있다”며 “이때부터 이동할 때나 자리에 모일 때는 오늘처럼 번호를 부른다”고 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지난달 30일 찾아간 경남 의령군 10남매의 집은 잠시도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김해의 기숙 외국어고를 다니는 셋째 예훈이가 방학이라 집에 와 모처럼 가족 전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10남매 가족에게 2023년 한 해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5월 막내 예빛이가 태어났지만, 형제들처럼 건강하지 못했다. 태어난 지 2주 만에 심장 수술을 받느라 8월이 돼서야 누나·형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올 상반기에도 심장 수술을 또 받아야 한다. 아버지 박씨는 “배 속 아기가 조금 특별하다는 걸 알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며 “태어나서 기뻤고, 아파서 마음 아팠고, 수술이 잘돼서 안도했고…. 지금 이렇게 같이 있으니 그저 좋다”고 말했다.

10남매 가족은 의령에서 이미 특별한 존재다. 전국에서 지역 소멸 위험성이 가장 높은 곳이어서 더욱 그렇다. 2022년 11월 산업연구원의 ‘K-지방 소멸 지수 개발과 정책 과제’를 보면, 전국 시·군·구 228곳 중 ‘소멸 위기’ 지역은 59곳. 이 중 의령군은 전남 신안군과 인천 옹진군, 경북 울릉군에 이어 넷째로 위험성이 높은 곳으로 꼽혔다. 여기에 청년(19~39세) 인구 비율이 지난해 11월 기준 전체 인구 2만5526명 중 9.33%(2381명)에 불과했다.

박씨는 이미 ‘출산 장려 전도사’가 됐다. 경남도 인구 정책 실무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각종 강연도 다닌다. 작년 10월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경남도민의 날’ 행사에선 ‘경남을 빛낸 100인’으로 선정돼 아이들과 함께 시구와 시타도 했다. 이날 선물로 등번호 1~10번(아이들), 00번(엄마), 99번(아빠)이 달린 가족 유니폼도 받았다.

2023년 12월 30일 경남 의령군 박성용·이계정 부부와 10남매가 포즈를 취했다./김동환 기자

박씨 부부는 서울 토박이다. 2년 연애 끝에 2002년 결혼했다. 직장을 다니며 2004년 맏딸 예서를, 2006년 둘째 예아를 낳았다. 둘째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를 가졌는데,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 누구 하나도 반겨주지 않았다. 박씨는 “대부분 ‘미쳤냐’는 반응이었고, 특히 어머니는 ‘서울에서 어떻게 셋을 키우려고 하느냐’며 걱정이 많으셨다”고 했다. 이런 부정적인 주변 시선이 박씨 부부가 의령행을 결심한 이유다. 그는 “아이 낳아 키우는 게 힘든 일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다”며 “마침 처가 부모님이 은퇴 후 의령에 귀촌해 계셨고, 아이들을 자유롭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부부는 서울의 집과 직장을 싹 정리하고 2007년 의령으로 내려갔다. 그때부터 내리 여덟을 낳았다. 아내 이씨는 “젊은 시절에는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둘 낳으면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 느끼게 됐다”며 “아이가 늘수록 행복도 커져간다”고 했다.

의령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당장 생계 문제가 닥쳤다. 식비만 월 200만~300만원이 들었다.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아내를 대신해 박씨가 혼자 책임져야 했다. 박씨는 “늦은 나이에 공공 기관에서 인턴도 하고, 학생들 과외도 하면서 버텼다”고 했다. 현재 박씨는 입시 학원을 운영 중이다. 아내 이씨는 어린이집 교사를 거쳐 원장이 됐지만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 지금은 예율이와 예빛이를 포함해 3명이 원생 전부다.

부부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고 말한다. 의령군에는 소아과가 없어 아이가 아프면 진주나 창원까지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야 한다. 한 명 아플 때마다 갈 수도 없어 5~6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간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선 “고아원 원장이냐”고 묻는다고 한다. 가족 여행 가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자가용인 9인승 승합차의 정원이 초과돼 국내 여행을 못 간 지 한참 됐다고 한다.

그래도 이 가족은 서로 책임을 나눠 지며 화목하게 생활한다. 아이들의 공부는 학원 원장인 아빠가 봐주고, 돌봄은 엄마와 첫째·둘째가 맡았다. 어머니 이씨는 “사춘기가 된 아이들이 자기 방도 없이 동생들과 뒤엉켜 지내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서로 챙겨주는 모습을 보면 흐믓하다”고 했다.

이웃의 응원도 힘이 됐다. 의령군의 지원은 파격적이다. 넷째 예한이 때부터 지급된 출산장려금은 여덟째 예후부터는 1000만~1300만원으로 늘었다. 그동안 취학 전까지 매월 30만원씩 영유아 지원금을 지급했는데, 올해부터는 취학 후 18살 때까지 매월 10만원씩을 더 준다. 함안군의 한 스님은 매년 20㎏짜리 쌀 5포대를 보내고, 인근 농협도 출산 때마다 상품권을 선물했다.

박성용(50)씨와 그의 자녀들로 구성된 밴드. 사진을 찍었을 무렵 엄마 이계정(48)씨는 이 집의 10번째 자녀 '예빛'을 임신하고 있었다./경남교육청

10남매 가족은 서로를 배려하며 행복을 찾는다. “아빠의 학창 시절 꿈을 이뤄주자”며 2019년 가족 밴드를 결성했다. 피아노와 플루트, 드럼, 첼로, 기타 등 악기 한 가지씩을 연주한다. 얼마 전까지 막내였던 9번 예율이는 ‘뽀로로 기타’를 멘다. 셋째 예훈이는 “노래하는 10남매 밴드는 지구상에서 우리 가족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가끔 마을 축제나 행사에서 초청 공연도 한다. 박씨는 “‘학창 시절 밴드를 했고, 음반을 내는 게 꿈이었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흔쾌히 동의해 줬다”며 “우리 밴드의 목표는 가족의 ‘긍정적인 의미’를 음악으로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삼성의 이병철 회장, 기부왕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회장 등 재벌들을 배출한 의령이지만, 인구 절벽 시대에 진짜 부자는 우리 가족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새해 소원 하나씩 말해보자.”

2023년 12월 31일 밤, 부부가 함께 누워있던 7~10번 ‘막내 라인’에 물었다. 이 라인 맏언니인 예령이가 “여동생 갖고 싶어요”라고 해서 부부가 깜짝 놀랐다. “여동생 예후 있잖아”라고 하니 “말 잘 듣는 여동생요”라고 해서 웃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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