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치 현금 결제하면 할인”... 한달 뒤 ‘운영 중단’ 문자, 업주는 잠적

한예나 기자 2024. 1. 2.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결제 피해’ 구제받을 길 없나

대전광역시 서구에 사는 백모(50)씨는 지난해 4월 집 근처 필라테스 학원에 회원 등록을 했다. 백씨는 ‘한 번에 수강료를 결제하면 할인 혜택이 크다’는 직원 말에 필라테스 수업 100회 이용권을 79만원에 결제했다. 그런데 한 달 뒤 학원은 ‘인테리어 보수 작업으로 운영을 중단한다’는 문자를 보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을 했다. 학원 대표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백씨는 “같은 피해를 입은 수강생 수십 명이 모여 고소까지 했지만, 돈을 돌려받기 어렵다는 말에 그냥 반쯤 포기한 상태”라며 “멀쩡히 운영하던 학원이 갑자기 문을 닫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최근 헬스장, 필라테스 학원 등에서 고객을 끌어모은 뒤 연간 회원비 등을 선결제하라고 요구하고는 돌연 폐업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며 소비자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헬스장 ‘먹튀(먹고 튀기)’라고 불린다. 특히 회원권 등록 때 ‘일시불’, ‘현금 결제’ 등을 하면 할인 폭이 크다며 업체 측에서 선결제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어도 한꺼번에 미리 결제한 금액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5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먹튀 피해

헬스장, 필라테스 학원 등의 ‘먹튀’ 피해는 점점 불어나는 추세다.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헬스장, 요가, 필라테스 이용자의 피해 구제 신청 건수는 2018년 1634건에서 2022년 3586건으로 최근 5년 새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사례 중 먹튀 피해 관련 신청 건수를 추린 것이다. 지난해에는 연초 이후 7월 말까지 신청 건수가 2733건에 달했다.

피해 금액도 매년 수십억원에 달하고 있다.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피해 금액은 155억원으로 집계됐다. 2018~2022년 연평균 피해액은 약 25억원에 이른다. 업계에선 소비자들이 피해 신고를 꺼리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비자원 집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 금액이 최소 10배 이상에 달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헬스장 등을 상대로 민사나 형사 소송을 걸 수는 있지만 일반 소비자들이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시일이 많이 소요되고, 소송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헬스장 대표가 파산을 신청한 경우에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는 더 어려울 수 있다.

소송보다 간편한 방법으로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기 위해선 폐업한 업주의 실제 거주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픽=양인성

◇”한꺼번에 현금 결제는 지양”

선결제 ‘먹튀’로 인한 피해자 구제가 쉽지 않은데 피해는 불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회에선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한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에는 체육시설이 3개월 이상 휴업이나 폐업할 경우 이 사실을 14일 전까지 이용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내용 등이 들어 있다. 또 전세보증보험처럼 3개월 이상의 이용료를 미리 받은 체육시설업자의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아직 법 개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4월 총선까지 법 개정이 되지 않으면 현재 국회에 계류된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실제 법 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로선 소비자가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특히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한꺼번에 현금으로 회원권 금액을 미리 결제하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금 대신 카드로 할부 결제를 했다면, 관련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할부항변권’을 활용할 수도 있다. 할부항변권은 20만원 이상, 3개월 이상 할부 거래에 대해 할부 계약이 해지되거나 물품 및 서비스가 계약 내용대로 이행되지 않은 경우 카드사에 잔여 할부금 납부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소비자가 이를 활용할 경우 갑자기 선결제 ‘먹튀’를 당했을 때 카드사에 연락해 할부금 납부를 거절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