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탄소중립 국제규범화와 한국: 철강 산업
◆글로벌 탈탄소 무역 규범, 쟁점과 현실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가 끓고 있다"있다고 경고하였고,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기후재앙이 인류의 일상과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그만큼 탄소중립에 대한 논쟁도 뜨겁지만, 대체로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가, 국제적으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가 최대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시급성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와 산업 등에서는 이에 대처하는 방식에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주요 산업 및 기업들이 거역할 수 없는 국제적 규범이 되고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탄소가 지구온난화의 핵심 요인인지에 대한 자연과학적 논쟁에서부터 시작하여, 탄소중립이 국제규범으로 성공적으로 정착할 지에 대한 의문까지 다양한 논쟁이 존재한다. 탄소중립에 대하여 가장 선도적이었던 유럽에서 최근 정책이 퇴보하는 움직임이 있고,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의 전망도 많이 엇갈림으로써 탄소중립의 규범화가 각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퇴보하거나 지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쨌든 한국에게는 피할 수 없는 규범이자 압력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다양한 찬반론이 존재한다. 성공적이지 않았다면, 정부와 국민의 인식 부족 때문인가, 산업구조적 현실 때문인가, 아니면 기업들의 압력 때문인가? 지금부터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국제규범에 적극적으로 순응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정부의 규제와 지원 정책이 중심이 되어야 할지, 기업의 자발적 순응과 시장원리에 따른 기술혁신과 거래가 더 중시되어야 할 것인가? 등이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논쟁들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는 이제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지않는 키워드가 되었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생소한 단어였다. 2020년 10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마치 마른 들에 불길 번지듯 기업들도 지자체도 너도나도 탄소중립을 공언하고 관련 계획을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국제적으로도 탄소중립을 선언한 국가는 120여개국이다.
탄소중립의 국제적 불길은 누가 지폈을까. 첫 시작은 유럽연합(EU)의 '핏 포 55'(Fit for 55) 법안 패키지였다.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55%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로 총 13개의 법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경제가 가장 긴장을 한 부분은 탄소국경조정(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었고 배출집약적이면서 수출중심적인 우리나라의 제조업 포트폴리오 상 비용의 증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탄소국경조정은 내년부터 시범시행을 하고 본격시행은 2026년부터다.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EU가 주도하던 기후 의제의 리더십을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는 정치적 유인이 커졌다. 바이든의 공약 중 하나는 기후와 관련한 무역규제를 도입하여 오염물질을 배출하며 제조된 상품의 수입에 제한을 두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대중국 무역적자를 해소함과 동시에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로 자국민의 환영을 받았고 바이든에게 임기 내 이 공약을 달성해야 할 유인은 더욱 커졌다.
이는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일부 달성이 되었으나 외국오염물질세(Foreign Pollution Fee) 도입을 골자로 미 상원에서는 법안이 발의되는 등 추가적인 조치가 예고되고 있다.
EU도 미국도 진정한 의도야 어찌되었든 기후와 무역을 연계한 조치를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 와중에 파리협정과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IPCC 보고서는 이러한 행보에 대해 든든한 과학적·외교적 근거가 되었고 지난 몇 년간 탄소중립 선언은 세계적인 메가 트렌드가 되었다. 중국도, 인도도 탄소중립 자체를 외면할 수 없고 속도의 차이를 둘뿐 탄소중립이라는 방향성에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원대한 목표, 더딘 발걸음: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
한국도 2021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통과시킴으로써 2050 탄소중립을 법제화하였고, 올해 초에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이 과정에서 진보정권으로부터 보수정권으로 대권이 넘어갔지만 기후변화 대응의 필요성은 존중되었고 국제사회를 향하여 선언한 약속은 번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실행계획을 설계하는 과정에서의 논쟁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당장 비용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었다. 산업계는 탄소중립이 미국과 유럽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옹호하는 패러다임이며 비교적 산업화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의 설비수명을 고려했을 때 자산의 손해와 비용 증가폭은 미국과 유럽 대비 훨씬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더 주목을 받으면서 산업부문의 2030 배출량 감축목표는 2년 전에 발표한 2030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대비 14.5%에서 11.4%로 완화되었다. 2026년부터 시작하는 4기 배출권거래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산업계에서는 무상할당량의 삭감에 필사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이며, 산업부 역시 EU CBAM 시행에 대하여 우리나라 산업의 비용부담을 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각종 자구책을 탐색 중에 있다. 국가 탄소중립 목표는 변하지 않았지만 중단기적 제도와 정책은 그 목표에 역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지만,이미 글로벌 패러다임이 되어버린 탄소중립의 흐름을 외면할수록 더욱 경쟁에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매우 높다. 이미 RE100 등을 통해 국가의 규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글로벌 고객사들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여 제품을 생산하라는 압박이 밀어닥치고 있으며, 이는 매출에 더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패러다임의 선봉장에 자처한 애플, 구글 등에 주로 납품하는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우에는 이러한 압박을 외면할 경우 잃게 될 매출이 20~50%에 육박할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조달을 게을리 할수록 이들 기업은 수출시장이 좁아지는 위협에 처하게 된다. 이미 다가온 수출경쟁력의 침식 앞에서 탄소중립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전략적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탄소중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거나 국내 규제 도입을 통해 이행 유인을 줘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강 산업과 기업의 현실, 글로벌 압력과 제한적 자원
전세계에 상품을 공급하는 한국 산업 구조의 특성상 글로벌 탄소중립에 대한 압박은 1차적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가해진다. 특히 철강은 자동차, 선박, 건설, 기계 등 주요 인프라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재화에 광범위하게 쓰이는데다 철광석에서 순수한 철성분을 환원하기 위해 석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세계 산업 배출량의 1위 위치에 있다. 한국의 철강산업은 세계 6위의 생산규모와 3위의 수출규모를 자랑한다. 생산의 약 40%가 수출용이고 글로벌 시장에의 노출도가 매우 높아서 국제 무역 규범과 동향을 외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포스코는 많은 국제이니셔티브와 글로벌 NGO들로부터 탈탄소 압박을 받고 있다. 배출량 규모가 높은 탓도 있지만 비교적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했을 때 국제규범이나 시장논리에 대한 수용력이 높아서 새로운 질서로의 편입을 독려할 만한 '플레이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본력과 기술력이 뒷받침된 기업이라 탈탄소에 대한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포스코는 점증하는 세계시장의 요구에 대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는 일찍이 2050년 탄소중립 완성 목표를 선언하였고 50년간 이어온 고로의 역사를 점진적으로 종료 시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포스코는 하이렉스(HyREX)라는 고유의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개발에 도입하였고 2033년 상업화 가동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현재는 포항에 수소환원제철설비 준공을 위해 부지확보에 필요한 인허가 절차를 밟는 중이다.
다만 문제는 포스코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고 해도 유럽이나 미국 철강사들에 비해서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SSAB, ArcelorMittal과 같은 철강사는 2026년 수소환원제철의 상업화를 예정하고 있고 이미 파일럿도 무사히 완료했다. 포스코에 비해서는 7~8년 앞서있는 수준이다.
그린철강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이 시점에 7~8년의 격차는 경쟁력을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격차다. 이미 볼보는 2021년 하이브릿(HYBRIT)이라는 회사와 저탄소철강 구매를 했으며 이케아의 모기업인 잉카그룹은 H2그린스틸(H2GreenSteel)이라는 기업과 2026년부터 저탄소 철강을 조달받기로 계약을 체결하였다. 맥켄지컨설팅은 증가하는 저탄소 철강에 대한 수요의 추세로 미루어 볼 때 2030년 유럽에서는 저탄소 철강의 수요보다 공급이 모자라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 분석한 한 바 있다.
저탄소 철강 수요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점쳐진다. 2020년 발족한 스틸제로(SteelZero)라는 이니셔티브는 2030년까지 철강구매의 50%를 저탄소 철강으로 조달하고 2050년까지는 철강 구매 전량을 넷제로 철강으로 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있다. 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기업은 오스테드, 볼보, 머스크 등 36개 기업이며 글로벌 철강 생산 트렌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모적으로나 브랜드이미지 측면으로나 존재감이 있는 기업들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철강 탈탄소는 세계 다른 어떤 나라들과 비교해볼 때도 매우 도전적인 과제이다. 우선 그린 수소를 조달하기 위한 재생에너지가 보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이고, 호주나 중동과 비교했을 때 재생전력의 생산비용도 훨씬 높다. 따라서 가장 최적의 조달방안은 수입이다. 그러나 수소는 운송을 위한 저장 기술이 아직 매우 비용이 높아서 생산비용만큼 수송비용이 소요된다. 따라서 수소환원제철의 비용은 재생에너지 전력이 풍부한 북유럽보다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고로의 설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최신설비이다. 즉 가용한 수명은 많이 남아있고 효율도 우수하여 폐쇄로 인한 기회비용이 매우 크다. 미국과 유럽의 고로들은 이미 100년이 넘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굉장히 노후화되어 이미 전환의 유인이 충분하고 기회비용도 높지 않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불충분하다. 아직 탄소중립의 우선순위는 당장의 표 몰이를 할 수 있는 다른 의제에 밀리기 일쑤고 국민들의 위기의식도 높지 않아 국가예산을 대거 투입하기 위한 정책적 환경이 미성숙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기대할 수 있는 지원도 많지 않고 진보와 보수 정권을 거치면서 기후정책기조도 일관성이 낮은 편이다.
포스코가 자체 추산한 수소환원제철 설비에 드는 투자비용은 68.5조원이며 사단법인 넥스트에서 추산한 조강 1톤당 생산단가는 약 64%정도 증가한다. 게다가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한 침수피해로 생산량 10%가 줄어들고, 고로 기반의 근로자들이 대부분인 노사환경에서 포스코가 속도를 내기란 매우 도전적인 상황임은 확실하다.
◆글로벌 탄소중립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정책 제언
이제껏 질 좋은 상품을 싸게 만드는 생산자가 돈을 버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질 좋은 상품을 깨끗하게 만드는 생산자가 돈을 버는 시대가 되었다. 현상은 외면할 수 있어도 트렌드는 거부하기 힘들다. 탄소중립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넥스트 노멀(next normal)이 되었다. 늦게 동참하면 할수록 글로벌 시장에서의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지게 되어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기술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소비자의 선호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서 추격자 전략은 예전만큼 통하지 않는다.
일견 위기인 듯 보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시장을 선점하여 포지션을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게다가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은 이미 세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이고 글로벌 경제가 탈탄소 전환이 되어감에 따라 가장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산업구조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빠르게 대비하고 우리의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독보적 우위를 노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불과 2, 3년전만 하더라도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도입 목표는 2040년을 넘어섰다. 그러나 지금 포스코의 목표는 2033년까지 단축되었고, 더 가속화하려는 움직임도 관측된다. 대한민국 경제는 부존자원없이 황무지에서 시작하였지만 성장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기술력으로 세계 13위 규모로 성장한 기적의 역사가 있다. 탄소중립에 있어서도 다르리란 법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일관되고 집중된 정책 지원이다. 오염자부담원칙에 의거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이를 탄소중립에 필요한 기술 개발, 설비 투자, 지역 전환에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8년째 운영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는 실제로 총할당량과 무상할당의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 오염자부담원칙이 제대로 작용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배출권 가격이 너무 낮아 기업에게도 배출량 감축의 유인을 주지 못한다.
우선적으로 배출권거래제를 합리화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탈탄소 전환을 하고자 하는 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독일과 네덜란드의 경우, 아직 상업화 속도가 나지 않는 탈탄소 기술의 조기상용화를 위해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Carbon Contract for Difference)를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검토해볼 만하다.
그린보호무역주의로 확산 중인 기후변화 대응 의제는 정파적인 논리로 선택하거나 회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초당적인 고민과 협력이 필요한 의제다. 우리도 국내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도모하기 위한 신성장동력 투자로 탄소중립을 바라보아야한다. 탄소중립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일관되고 확실한 지원 정책의 확대로 재빠르게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207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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