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90> 패밀리맨]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

김규나 2024. 1. 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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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밀리맨’. 사진 IMDB

잭은 월스트리트의 성공한 투자 전문 기업가다. 돈이라면 충분히 벌고 있고 원하는 상대와 데이트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가장 큰 흥분과 만족을 주는 것은 도전과 성취다. 그에게 산다는 건 일하는 것이고 일이 곧 인생의 전부다. 다시 말해 잭에겐 1년 365일이 즐거운 크리스마스다. 그의 삶은 더 바랄 것 없이 완벽하다.

김규나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저녁 늦게까지 회의가 있던 크리스마스이브, 잭은 케이트의 연락이 있었다는 비서의 보고를 받는다. 13년 전 그들은 헤어졌다. 대학을 졸업한 그들의 미래는 활주로처럼 펼쳐졌으며 사랑도 불꽃처럼 피어난 시절이었다. 케이트는 ‘진짜 멋진 인생은 우리가 함께하는 것’이라며 붙잡았지만, 잭은 런던으로 떠났다.

사랑과 성공, 둘 중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었다. 사랑은 기다려주리라 믿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영국과 미국이라는 물리적 거리와 시차를 극복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미련과 원망은 남았을까. 매일 아침, 잭이 힘차게 부르는 노래는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흔들린다네’다.

케이트는 과거의 사람, 잭은 전화하지 않는다. 그래도 직원들이 가족의 품으로 총총 귀가한 밤, 잭은 모처럼 감상에 젖어 크리스마스에 마실 술을 사러 상점에 들른다. 그곳에서 총으로 위협하는 청년과 맞닥뜨리지만, 잭은 용기와 기지로 위기를 넘긴다.

집에 돌아온 잭은 털썩, 침대에 눕는다. 그를 겨눈 총이 불을 뿜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뛰어난 투자 전문가답게 협상하고 청년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죽음의 문턱, 두렵지 않았을 리 없다. 마음과 몸을 움켜쥐고 있던 긴장이 풀리면서 잭은 단잠에 빠진다.

다음 날 아침, 잭은 평소와 다른 공기, 다른 기분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다. 옆에 잠들어 있는 여자와 쿵쿵거리며 침대에 기어오르는 아이들. 여긴 어디지? 내가 왜 여기 있어? 잭은 놀라 뛰쳐나간다. 뉴욕 외곽의 주택가인 듯한데 그가 아끼는 페라리는 없다. 잭은 낡은 차를 타고 시내로 달려간다. 내가 펜트하우스의 주인이야, 내가 사장이야, 큰소리쳤지만 경비원들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한다.

잭은 나쁜 일을 하며 살지 않았다. 지난밤 청년을 다독인 것도 착한 일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재앙이 닥쳤을까. 그가 가진 모든 것, 눈부신 것들, 높이 쌓아 올린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게 하룻밤 꿈이었을까. 그때 상점에서 만난 청년이 잭의 페라리를 몰고 나타난다. “당신, 더 바랄 게 없는 인생이랬지? 정말 그래? 한번 살아 봐” 말하고는 떠나버린다.

잭은 길을 더듬어 낯선 집으로 돌아간다. 대체 어디를 다녀왔느냐고, 화를 내는 여자는 분명 케이트다. 돌아와서 다행이라며 그녀는 잭을 끌어안는다. 13년 전, 또 다른 잭은 런던을 포기하고 케이트를 선택한 모양이다. 월가의 눈부신 삶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장인의 타이어 사업을 물려받아 소박한 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잭이 아니고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아무리 말해도 케이트는 또 시작이냐는 듯 웃기만 한다. “진짜 우리 아빠는 어디 갔어요?” 잭을 의심하는 건 어린 딸뿐이다. 그래도 잭은 아이 덕에 어정쩡한 남편, 어설픈 아빠 역할을 해낸다. 자동차 타이어 소매점 사장 역할은 식은 죽 먹기다. 그래도 낯선 삶, 반발심과 저항감을 떨쳐내긴 힘들다.

가족과 백화점에 갔다가 고급 슈트를 입어본 잭은 본래의 자신을 되찾은 듯한 기분을 맛본다. “나는 지금보다 천 배는 더 잘나갈 사람”이라고 소리쳐본다. 그런데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고급 아파트, 높은 연봉, 최고급 자동차, 수백만원짜리 양복? 잭이 바라는 게 단지 물질적 풍요였을까.

잭은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일하는 걸 즐겼다. 잘하는 일을 찾아 도전하고 능력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한 결과 얻어낸 최고의 삶을 사랑했다. 그런데 성취감과 보상이 크진 않지만, 가족을 책임지며 복닥거리는 일상, 정신이 하나도 없는 육아와 아내의 잔소리 속에도 생소한 행복이 자리하고 있었다.

완전한 삶은 아니다. 잘 정돈된 삶도 아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전 삶에서 그랬듯 최선의 길을 찾고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실력이 있다면 환경을 탓하지 않고 어디서든 능력을 펼칠 수 있다. 잭은 월스트리트에서 다시 재능을 인정받을 자신도 있었다.

‘왕년에 내가!’ 하며 과거에 연연하는 대신 잭은 새로운 삶을 배워가고 있었다. 자신을 믿는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잭은 이전 삶이 그랬듯 지금 여기, 현재의 삶도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 순간, 펜트하우스의 조용한 침대에서 눈을 뜬다. 케이트는? 내 아이들은? 잭은 변두리 집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룻밤 꿈이었다. 그런데 어느 쪽이 꿈일까? 화려한 월스트리트의 독신 사장? 가족을 책임지며 주택 대출금을 평생 갚아야 하는 타이어 세일즈맨? 누구나 자신의 현재를 애틋해하면서도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한다. 케이트와 함께하는 인생은 어땠을까, 잭도 의문 한 조각을 가슴에 품고 살았는지 모른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보내겠다며 설레는 얼굴로 퇴근하는 직원들을 보며 대체 어떤 행복일까, 궁금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잭은 완벽하다고 믿었던 인생을 돌아보았다. 케이트는 왜 연락했을까? 잭은 그녀가 남긴 번호를 찾아 전화한다.

돈보다는 사랑, 성공보단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영화다. 그러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 자기를 우선 성장시키고 자기 세계를 완성하라. 그러고 나면 아름답고 성숙한 사랑도 얻을 거라고 속삭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어떤 섭리로 ‘지금의 나’로 태어나 어떤 인연으로 ‘현재의 인생’을 살아가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래도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또 한 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새해에도 소중한 사람들과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그런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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