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2024] MZ 청년들의 빛나는 도전 ②해녀·농부·네일리스트

김민지 기자 2024. 1. 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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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감·자아실현·자기주도적 삶이 '중요' 가치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선 청년들의 삶과 포부

[편집자주] 직업의 귀천이 사라졌다. 기성세대 직업으로만 여겼던 직종들이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통통 튀는 개성만큼이나 물질적인 풍족보다는 성취감, 자아실현, 자기 주도적 삶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MZ세대, 그들은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직업군에서 활동하며, 직업의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고 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2024년 <뉴스1>은 이처럼 다양한 직종에서 빛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나 직업을 선택한 이유와 포부를 들어봤다.

기성세대와 MZ세대의 직업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다양한 직종에서 빛을 내고 있는 청년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관악구 소속 4년차 환경공무관 노다니엘(34), 거제 해운호 3년차 해녀 신호진(37), 경기 안성 14년차 농부 한태웅(20), 부산 영락공원 7년차 장례지도사 성예린(27), 8년차 네일리스트 권민우(34), 3년차 도배사 이지윤(32). 2024.1.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기성세대와 MZ세대의 직업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다양한 직종에서 빛을 내고 있는 청년들. 왼쪽부터 관악구 소속 4년차 환경공무관 노다니엘(34), 거제 해운호 3년차 해녀 신호진(37), 8년차 네일리스트 권민우(34), 3년차 도배사 이지윤(32), 경기 안성 14년차 농부 한태웅(20), 부산 영락공원 7년차 장례지도사 성예린(27). 2024.1.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경남 거제시 구조라항에서 나잠업을 하고 있는 3년차 해운호 막내 해녀 신호진씨. ⓒ News1 김민지 기자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나를 품어주는 바다로, 제2의 인생으로 풍덩" (3년차 거제 해운호 해녀 신호진)

IT 업계에서 10년 동안 몸을 담근 해녀 신호진(37)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을 오래 하고 싶은데, 내가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안정적인 직장과 새로운 도전 사이의 치열한 갈등 끝에 그는 새로운 모험을 택했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고 물속에서 자유를 느낀다는 그녀에게 나잠업(해녀)은 안성맞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물을 좋아했어요. 바다가 나를 품어주는 느낌, 그 편안함이 좋았죠"

해녀가 되기 위해 준비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외지인인 그가 땅 끝 거제도까지 내려가 정착하기란 쉽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년 동안 많은 준비를 했어요. 해녀 학교 등록을 했고, 이곳을 통해 해녀의 삶을 경험했죠. 그곳에서 지금의 해운호 선주 분을 만나게 되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는 준비 과정보다 선배 해녀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해운호에는 40년 이상의 해녀 어른 6분이 계세요. 경력에서 보이듯이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평소 싹싹하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 그는 선배 해녀들의 마음을 녹여갔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편한 사이"라며 "쉬는 날에는 같이 카페도 가고 해녀 이모들과 어울리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마음으로 해녀라는 직업에 뛰어들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매스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만 보고 ‘해녀는 바다에서 힐링하면서 돈을 벌 수 있구나!’하고 왔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녀 일을 시작하고 두 달 만에 16킬로가 빠졌다"고 말했다. 평균 다섯 시간 이상을 물속을 다니며 해산물을 채취하는 그는 "겨울에는 동창(추위에 몸의 일부가 얼어서 생기는 피부 손상)이 와서 물속에 들어갈 때마다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호진씨가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 News1 김민지 기자

젊은 세대의 유입을 기다린다는 그는 "거제도에도 젊은 해녀들이 많아졌어요.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찾고 젊은 해녀들이 많이 유입될 수 있도록 서로 소통하고 있죠. SNS(@team_haewoon)를 하는 이유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으면 해서에요. 해녀가 어떤 식으로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현업을 하고 있는 선배로서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현 정책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는 그는 "해녀들은 위험한 일이 생길 때 보장받을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요즘은 그래도 거제시 나잠어업인 잠수장비 지원 사업이나 청년 어촌 정착 지원 사업이 있어서 작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구가 소멸하는 도시에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많은 공기관에서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개선해 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농부의 꿈을 키워온 청년 농부 한태웅씨. ⓒ News1 김민지 기자

"꾸준함이 답. 주변의 편견에도 나는 오로지 직진" (14년차 농부 한태웅)

청년 농부 한태웅(23)씨의 취미는 농기계 검색이다. 또래 친구들이 스마트폰, 게임, 패션 등에 관심이 많을 때 그는 신상 농기계를 살펴보는 게 가장 즐겁다. "자동차에도 브랜드가 있듯이 농기계에도 브랜드가 있다"며 "쉬는 날이면 농기계 검색도 해보고 후기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농사에 도움이 될지 공부한다"고 했다.

평생 농사를 지어온 할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는 자연스럽게 농부를 꿈꿨다. 할아버지 몰래 경운기로 밭도 갈고, 모내기도 심어보면서 자랐다는 그는 "잘 갈아진 밭을 볼 때면 희열을 느낀다"며 "오죽하면 생일선물로 닭을 사달라고 한 적도 있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농업일을 해온 그는 지금 3만여 평의 밭을 돌보는 파수꾼이다. 임대로 짓고 있는 소작이지만, 10년 내에 자기 이름으로 된 밭을 갖는 게 미래의 목표다.

직접 농사지은 쌀을 동네 이웃이나 소외계층한테 나눔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직접 배달을 하다 보니 쌀을 받고 좋아하는 어르신들 모습을 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며 수줍게 웃었다.

청년 농부 태웅씨는 매일 아침 23마리의 소들을 돌본다. 그가 축사를 청소하고 있다. ⓒ News1 김민지 기자

이런 그도 사춘기 시절 주변의 편견이 가장 힘들었다. ‘젊은 사람이 왜 농사를 짓냐’는 말은 인생의 절반 이상 들어왔다.

"주변 어른들은 ‘저러다 말겠지’, ‘쟤가 농사해 봤자 얼마나 하겠어’라고 해요. ‘텔레비전 나오려고 농사짓는 애’라는 말이 가장 힘들었죠"

그럴 때마다 그는 꾸준히 직진하겠다는 일념으로 버텨왔다. "지금은 동네에서 농사를 제일 많이 짓는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모내기, 벼 베기 등을 맡겨줄 정도"라며 자부심을 보였다.

섣불리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 대해 그는 귀농에 대한 환상을 지적하며 "처음 오는 사람들은 인맥도 없고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빚만 떠안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했다. 이어 "직업에 대한 공부를 충분히 하고 준비가 되었을 때 농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울 당산역 인근에서 네일을 운영하고 있는 8년차 네일리스트 권민우씨. ⓒ News1 김민지 기자

“네일아트, 금남의 영역이 아닌 모두의 영역으로” (8년차 네일리스트 권민우)

8년차 네일리스트 권민우(34)씨는 일러스트를 전공하던 대학생 시절 우연히 수강한 네일아트 수업에서 재능을 발견했다. 그림 그리는 일이 익숙했기에 브러쉬를 사용하거나 구도를 잡는 게 능숙했다는 그는 “학교 생활에서 네일아트를 할 때 가장 즐거웠다"며 "칭찬을 받으니 자신감이 붙었고 ‘네일리스트 일을 해보지 않을래?’라는 교수님의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의 네일숍 한 벽면에는 그가 네일아트 경연대회에 참가하며 출품했던 알록달록한 디자인들이 전시돼 있다. 수상까지 하며 치열하게 꿈에 도전한 그는 어느덧 본인 이름을 건 네일숍의 원장이 됐다.

네일리스트 민우씨가 본인이 운영하는 네일숍에서 매니큐어를 고르고 있다. ⓒ News1 김민지 기자

남자 네일리스트를 업으로 삼으며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고객들이 남자라는 이유로 불편해했다”며 성별로 인해 바지 사장이라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혼자 일할 때면 손님들이 들어올 때 ‘잘못 들어왔네’하면서 나간 적도 많아요. 예약 문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남자 목소리가 들리니 ‘잘못 걸었다’고 끊는 전화도 많았고요. 이럴 때면 기회를 놓치는 거니 많이 아쉽죠”

속상함도 잠시, 평소 힘든 일들은 흘려보내며 지내온 그는 자신만의 극복 방법을 찾아갔다. “제 목소리가 낮은 편인데, 텐션을 올려서 전화를 받아요. 또 대화를 하면서 편하게 해드리려 노력을 많이 해요. 지금은 단골도 많이 늘고, 숍도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어서 감사하죠”

기억에 남는 단골도 생겼다. “초반에 일을 시작할 때부터 8년 동안 꾸준히 와주신 할머니가 계세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실수도 종종 했는데 늘 와주셔서 감사했죠. 지금은 ‘그때 내가 손톱 많이 대줘서 이렇게 잘 됐지?’라고 농담도 주고받아요”라며 웃음 지었다.

남성 네일리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남성이 소수인 점이 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건 서비스업에 맞는 마인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술적인 부분은 하다 보면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고객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많이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의 소박한 목표로는 “단골들도 많이 생겼고 숍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면서 “지금의 고객들이 앞으로도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잘 꾸려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kim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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