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최전선서 연휴·주말 없이 4년… 선별진료소 운영 종료

구아모 기자 2024. 1. 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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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506곳 문 닫아

“올해 초 어머니가 뇌 수술을 받으셨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길까 싶어 한 번도 찾아뵙질 못했네요. 이제 여기 운영이 종료됐으니 자주 찾아뵙고 싶습니다.”

31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보건소 코로나 선별진료소. 흰색 검진복 차림에 마스크를 동여맨 최미경(58) 현장팀장은 진료소에 있던 마스크와 위생용품을 보건소로 옮기고 있었다. 진료소에는 최씨와 함께 푸른색 방호복을 입은 행정 직원 두 명, 의료진 두 명이 있었다. 이곳 진료소의 운영은 이날 오후 1시 종료됐다. 보건소 측은 운영 종료 직후 진료소에 쓰인 비품을 정리했고, 천막을 조만간 철거할 예정이다.

지난 2020년부터 4년 동안 운영돼 온 전국 코로나 선별진료소 506곳이 31일 운영을 종료했다. 사진은 코로나와 사투를 벌인 지난 4년의 기록들이다. ①2020년 3월 대구 동산병원 의료진이 페이스실드에 이마와 코가 짓물러 반창고를 붙인 모습. ②그해 6월 서울 강서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한 의료진이 에어컨 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③2021년 7월 고무장갑을 끼고 장시간 근무하다 부르튼 한 보건소 직원의 손. ④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보건소 선별진료소 직원들이 안내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있다. /오종찬·장련성·고운호 기자, 연합뉴스

중구보건소 선별진료소는 지난 2020년 1월 28일 문을 열었다. 연휴, 주말 없이 하루도 쉬지 않고 무료 유전자 증폭(PCR) 검사를 했다. 최씨가 선별진료소에 투입된 건 코로나 3차 대유행 직전이었던 지난 2021년 10월 중순이었다. 밀려드는 검진 업무로 바쁠 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매일 12시간씩 근무했다. 최씨는 “겨울엔 영하 10도 날씨에 진료소 비닐 텐트를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을 핫팩으로 버텼고 여름에는 찜질방 같은 하루하루를 견뎠다”며 “하루에 2000명씩 검진하던 시기에는 너무 힘들어 두 달만 일하고 그만두는 직원도 많았다”고 했다. 최씨는 “그래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이곳을 지키겠느냐는 마음으로 버텨왔다”며 “운영이 끝나게 돼 시원섭섭한 마음”이라고 했다.

전국 보건소와 병원 등이 2020년 1월 이후 운영해 온 코로나 선별진료소 506곳이 31일 운영을 종료했다. 정부는 지난달 중순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하며 “코로나 검사 수가 줄어들고 보건소 업무의 정상화 등을 고려한 조치”라고 했다. 그간 전국 선별진료소에서 실시한 PCR 검사는 총 1억3100만여 건이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약 5100만명)이 2~3번씩 검사를 받은 셈이다.

그래픽=이철원

송파구보건소 신홍익(52) 감염대응팀장은 재작년 1월 선별진료소 근무를 시작했다. 신씨는 “한여름 뙤약볕에 긴 대기 줄로 힘들어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검진을 조금이라도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애썼던 기억이 난다”며 “한때 코로나에 대한 공포감이 커서 검사를 여러 번 하거나 비말이 조금이라도 튀면 시민들끼리 서로 화를 내고 싸우기도 해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신씨는 “국민 모두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길 원하니 이곳이 문을 닫는다고 해도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안내·접수 업무를 담당한 김모(54)씨도 “코로나 유행 초기였던 2021년 여름에는 하루에 3000명 넘는 사람이 검진을 왔다”며 “화장실 한번 가기도 어려웠고, 식사 시간도 30분이 채 안 됐는데 이제 이곳을 떠난다니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서초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검진 안내 업무를 한 허철(43)씨는 “인근 카페 사장님은 매일 퇴근하고 1.5L 커피 원액 한 통씩을 마시라고 주셨고, 직원 수만큼 빵을 사서 보내주는 시민들도 있었는데 그 응원으로 버틴 4년이었다”고 했다. 허씨는 “내일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실감이 나질 않는다”며 “선별진료소 운영이 끝나는 것이지 코로나 자체가 종식된 것은 아니기에 시민분들도 계속 건강관리에 힘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코로나 초기부터 선별진료소에서 일했던 서울아산병원 임진솔(29) 간호사는 “혹시라도 내가 실수하면 코로나 방어 전선이 뚫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며 “‘코로나에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일조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조은정(48) 간호사는 “하루 수백 명의 확진자를 받아야 했던 코로나 확산기엔 어린아이를 가진 의료진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컸다”며 “하지만 의료인의 사명감 하나로 이겨냈다”고 했다.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은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무릎 수술을 앞두고 서울 관악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은 최미희(76)씨는 “오늘이 네 번째 검사인데 처음에는 이곳에 오는 게 겁도 나고 대기시간도 너무 길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하지만 직원분들은 몇 번을 와도 친절하고 빠르게 안내해 줬다”고 했다.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 앞을 지나던 대학생 김민준(24)씨도 “아직도 이곳이 운영 중인 줄 몰랐다”며 “2년 전쯤 선별진료소 의료진이 마스크를 오래 낀 탓에 코와 볼 쪽의 살이 짓물려 밴드를 붙여 놓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간 노력해 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했다.

선별진료소는 한때 전 국민에게 무료 PCR 검사를 해줬다. 지난 8월 정부가 코로나 감염병 등급을 2급에서 4급으로 낮추면서 고위험군인 60세 이상 고령자와 의료 기관 입원 예정 환자 등만 검사를 해왔다. 선별진료소가 문을 닫으면서 새해부터는 일반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먹는 치료제 대상군인 60세 이상 고령자, 12세 이상 기저 질환자, 면역 저하자는 무료로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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