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설날 이후에나 쓸 수 있는 말 ‘구랍’
2024년이 시작됐다. 새해 첫날을 흔히 ‘신정’이라 부른다. 다른 말로 ‘양력설’이라고도 한다. 현재 ‘신정’과 ‘양력설’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다. 표준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신정과 양력설, 또는 이에 대립하는 ‘구정’과 ‘음력설’ 등은 생각할 구석이 많은 말이다. 일본이 우리의 강토를 강점하면서 생겨난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쓰고 있으니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우리가 쓰지 않음으로써 먼 훗날 우리 국어사전에서 사라지게 해야 할 말들이다.
전통적으로 음력을 쓰던 우리나라에서 음력이 배척되고 본격적으로 양력이 사용된 때는 일제강점기다. 일제는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정책 중 하나로 양력을 강제 시행했다. 한 해를 시작하는 기점이 양력으로 바뀌면서 음력 1월1일인 우리 전통의 ‘설’도 양력 1월1일로 옮겨졌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신정(新正)’이고, 이에 대립해 음력 1월1일을 구정(舊正)이라 부르게 됐다. 신정은 ‘새롭다’는 좋은 의미를, 구정은 ‘오래되고 낡은’이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게 신정과 구정으로 갈리면서 양력설과 음력설이란 말도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 일제에 대한 반감 속에 음력을 지키려는 국민 감정은 꺾이지 않았고, 그 기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생활의 편의상 국경일 등은 양력으로 날짜를 정하지만, 설과 추석 등 우리 고유의 명절은 여전히 음력으로 쇠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요즘 젊은이들은 대개 양력으로 생일을 보내지만, 40·50대만 하더라도 대부분 음력으로 생일상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음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전통의 문화다.
이처럼 양력과 음력이 혼재하는 까닭으로 신년 초에 잘못 쓰기 쉬운 말이나 표현이 많은데, ‘구랍(舊臘)’도 그중 하나다. 구랍은 “지난해의 섣달”을 뜻하며, ‘섣달’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을 가리킨다. 즉 구랍은 설 이후에 앞 해의 음력 12월을 뜻할 때 쓰는 말이다. 따라서 올해는 2월10일 이후에 1월11일부터 2월9일까지를 가리킬 때 쓸 수 있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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