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업계 톱, ‘갑질’도 업계 톱…이런 상사랑 같이 일 할 수 있나요?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3. 12. 3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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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06]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명품이 고공행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성장 속도가 다소 둔화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국내 유통업체 사이에서는 명품 업체를 잘 모시는 것이 숙제다. 이달 신세계 강남점이 국내 백화점으로선 최초로 연매출 3조원을 돌파하고, 에비뉴엘 잠실점이 국내 단일 명품관으로선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넘어선 것은 모두 명품의 힘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앤드리아(왼쪽)는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로 취직한다. [사진 제공=퍼스트 런]
오늘 소개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는 명품산업을 가장 매력적으로 표현해낸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패션업은 사치를 조장할 뿐이라며 경멸하던 여성 앤드리아가 세계적 패션 잡지 ‘런웨이’에 취직하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좌절, 성장 등을 담았다. 애초 패션엔 별 관심이 없었던 앤드리아가 샤넬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게 되는 데서 명품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 변화가 느껴진다. 작품 내용을 살펴봄과 동시에 ‘악마가 입는다’는 프라다는 어떤 브랜드인지 훑어보자.
‘런웨이’ 편집장으로 나오는 미란다는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삼았다. [사진 제공=퍼스트 런]
모두가 선망하는 직장에 뽑힌 신입 “여기밖에 뽑아준 곳이 없어서요”
주인공 앤드리아(앤 해서웨이)는 기자가 되고 싶은 20대 여성이다. 그녀는 최고의 패션 매거진 ‘런웨이’의 최종 면접을 보게 된다. 이 면접은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둘째 비서를 뽑기 위한 면접이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자리를 한 번쯤은 꿈꿔봤다는 설정이다. 패션업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미란다가 어떻게 일하는지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앤드리아는 그 자리에 들어가고 싶은 여성이 100만명은 된다는 이야기 반복적으로 듣는다.
애초 앤드리아는 수수한 옷차림을 즐겼다. 명품산업은 사치를 조장하는 산업이라고 여겼다. [사진 제공=퍼스트 런]
그런데 정작 앤드리아는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앤드리아는 기자가 되고 싶어 뉴욕에 왔지만, 이력서를 낸 여러 매체 중 받아준 곳이라곤 ‘런웨이’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비서 직군은 애초 자기 꿈인 기자와는 거리가 있다. 앤드리아는 ‘런웨이’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를뿐더러, 미란다가 누구인지 들어본 적조차 없다. 심지어 미란다가 “여기 왜 왔느냐”고 묻자 앤드리아는 “기자가 되고 싶어 뉴욕 여기저기에 지원서를 냈지만 연락이 온 게 솔직히 여기뿐이었다”고 대답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한 무례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다.
까칠한 성격의 미란다는 비서를 자주 바꾼다. 새로 채용된 비서는 모두 실제 이름과 상관없이 ‘에밀리’로 불린다. 이름을 외우기조차 귀찮다는 것이다. [사진 제공=퍼스트 런]
다들 그녀의 채용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가운데, 미란다는 의외로 앤드리아를 합격시킨다. 자기랑 일하고 싶어 간이라도 내줄 듯 달려드는 사람들만 보던 미란다에겐 외려 당당하게 무지를 드러내는 앤드리아가 신선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얼렁뚱땅 세계 최고 패션 매거진에 입사한 앤드리아는 의외로 일을 잘 해낸다. 미란다 편집장은 요즘의 감수성으로 봤을 때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여러 차례 신고당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녀는 입만 열면 폭언을 하는 데다가, 주말 저녁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걸고, 개인 심부름을 시키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특히, 자기 쌍둥이 딸을 위해 아직 출간되지도 않은 ‘해리포터’ 신간을 4시간 안에 가져오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앤드리아는 이 모든 주문을 묵묵히 감당한다. ‘1년은 버텨야 원하는 직장으로 갈 수 있다’는 오기로 버틴 것이다.

‘런웨이’에 적응하고 싶어진 그녀는 명품으로 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과연 신입사원인 그에게 이런 돈이 어디서 났을까. 영화에선 편집자 중 한 명이 미리 빼둔 옷을 그녀에게 건네며 도와준다. [사진 제공=퍼스트 런]
캐주얼 브랜드를 즐기던 앤드리아는 어느 순간부터 샤넬로 몸을 휘감고 천생 패션업계 사람 같은 면모를 보인다. 패션업계에 적응할 만하니깐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는데, 바로 남자친구와 그의 주변 친구들이 점점 워커홀릭이 돼가는 그녀를 못 견디는 것이다. 과연 앤드리아가 커리어와 인간관계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디즈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자친구(왼쪽)는 앤드리아가 일 중독자처럼 변해가는 것에 불만을 표현한다. [사진 제공=퍼스트 런]
미란다의 모델인 안나 윈투어 ‘패션계의 교황’
영화에서 미란다는 미국 패션잡지 보그 편집장인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삼았다. 원작 소설가가 안나 윈투어의 비서로 일한 경력을 살려서 집필했다고 한다. 영국 출신인 안나 윈투어는 패션계의 교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톰 포드, 마크 제이콥스 같은 디자이너가 톱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도 윈투어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윈투어의 발언에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 등 4대 패션위크 순서가 바뀐 일도 있다. 윈투어는 원래 이 영화의 제작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시사회에는 프라다를 입고 참석했다 알려졌다. 영화에서 묘사된 미란다 캐릭터를 꽤 좋아했다고 한다.
미란다의 실제 모델 안나 윈투어(가운데). 뱅헤어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다. [사진 제공=미로비젼]
‘악마가 입었던’ 프라다는 어떤 브랜드
프라다는 이탈리아 브랜드로 1913년 마리오 프라다가 설립했다. 프라다그룹 안에는 프라다 외에 보다 젊은 층을 겨냥하는 미우미우와 구두 브랜드 처치스 등이 있다. 한국에선 2007년 LG전자와 컬래버레이션으로 프라다폰을 선보이기도 했다. 2011년 홍콩증시에 상장했으며 최근 시가총액은 18조~19조원 사이를 오간다.
프라다의 대표적 상품인 갤러리아 백 [사진 제공=프라다]
2014년엔 매출과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모두 감소하면서 ‘악마도 프라다를 안 입는다’는 조롱이 나오기도 했다. 프라다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중시하는데, 당시 시진핑 정부가 부패 척결을 추진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값비싼 명품을 선물하거나 뇌물로 바치던 관행이 자취를 감추면서 프라다를 비롯한 다수 명품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LG전자와 프라다가 협업해 출시한 프라다폰. [사진 제공=프라다]
최근에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2022년에 한화로 6조원을 벌어들이며 사상 최대 실적을 찍은 데 이어 올해도 3분기까지 전년 동기 대비 12% 신장했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세계적 명품 붐에 프라다도 올라탄 영향이 가장 크고, 2020년 프라다에 합류한 전 캘빈 클라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라프 시몬스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검색량과 판매량, 소셜 미디어 언급량 등으로 인기 패션 브랜드를 꼽는 쇼핑앱 리스트가 3분기 발표한 패션 브랜드 순위에서 미우미우가 1위, 프라다가 3위에 오르며 같은 그룹의 두 브랜드가 상위권에 자리하게 됐다.

프라다는 한국 시장도 중시한다. 점점 커지는 한국 소비자의 구매력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1인당 명품 소비액이 미국, 중국보다 높았다. 프라다는 한국을 상품 판매처로서 주목할 뿐 아니라, K팝, K무비 등과 각종 컬래버레이션을 펼칠 거점으로 눈여겨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태리와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 사나, NCT 멤버 재현 등이 프라다 앰배서더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 콘텐츠와 스타의 높은 인지도를 브랜드 홍보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임윤아는 미우미우 2023 봄/여름 컬렉션의 글로벌 캠페인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미우미우]
지난 9월엔 프라다 모드라는 글로벌 행사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리기도 했다. 2018년 시작된 프라다 모드는 동시대 문화를 중심으로 프라다 회원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행사다. 서울 행사에선 김지운, 연상호, 정다희 등 유명 영화감독이 자기 공간을 꾸미며 많은 방문객을 받았다. 지난해 프라다코리아의 매출은 4900억여원으로 전년 대비 16% 늘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0억원에서 300억여원으로 세 배 넘게 올랐다.
평판에 지레 겁먹으면 소중한 경험을 놓칠 수도 있다
어떤 영화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데서 제 역할을 찾지만, 어떤 영화는 동경할 만한 세상을 그려내는 데 의미를 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후자다. 뉴욕에서의 삶, 그리고 패션산업 종사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게 한다. 그것이 설사 판타지이고, 현실 왜곡이어도 가치가 없진 않다. 팍팍한 현실에 지친 관객에겐 ‘어딘가 저런 세상도 있을 것’이라는 환상도 필요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감독 데이비드 프랭클은 ‘섹스 앤 더 시티’의 에피소드 여섯 편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화는 인생에 있어서 그저 한 번 부딪쳐 보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힌다. 다들 앤드리아가 미란다를 못 견뎌낼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비서 일을 수행한다. 원래 자기 적성일 것이라고 생각도 해본 적이 없지만, 막상 해보니 감당할 만했다. 악마라는 미란다의 성격도 본인과는 그럭저럭 잘 맞았다. 앤드리아가 미란다의 악명에 지레 겁먹어 뒷걸음질쳤다면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발 담가보는,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포스터. [사진 제공=퍼스트 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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