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쇼’ ‘올레’ 만든 KT맨이 분식집 열었다… 남규택 전 사장 “식당 운영은 새로운 마케팅 도전, 작은 성공 이어갈 것”

윤진우 기자 2023. 12.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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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택 전 KT CS 사장, 1986년 KT 입사해 ‘한우물’
’아이폰=KT’ 공식 만든 마케팅 전문가
올해 1월 퇴임 후 튀김 전문 분식집 열어
“자영업은 정신 스트레스에 육체 피로 더해져”
최근 ‘가장 낮은 마케팅 이야기’ 책 출간
“현장에서 얻은 실무 마케팅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
남규택 전 KT CS 사장이 지난 10월 서울 송파구에 문을 연 분식집에서 튀김을 들고 웃고 있다./윤진우 기자

1984년 3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과정에 진학한 25살 청년은 부푼 꿈을 갖고 있었다. 공부를 계속하면 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1년 만에 본인이 공부보다 기업에서 돈을 버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앞으로 돈이 될 유망 산업을 찾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가 청년의 눈에 들어온 건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였다. 과거에는 행정고시 합격자가 체신부를 잘 가지 않았다. 우체국 관련 업무를 주로 다루는 만큼 힘이 있는 부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행시 출신 우수 인력들이 체신부를 찾기 시작했다. 청년은 체신부가 담당하는 통신 산업이 클 수 있다고 어렴풋이 알게 됐다. 1980년대 중반은 집집마다 유선전화가 들어오던 시기다. 그는 1986년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마치고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에 입사했다.

남규택(62) 전 KT CS 사장(본사 기준 부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1980년대 중반에 통신이라고 하면 ‘집에 있는 전화’가 전부였다”면서 “감히 무선이나 인터넷은 생각할 수 없던 시기였지만, 통신이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남 전 사장은 1986년 KT에 입사해 2023년 1월 퇴임할 때까지 37년을 ‘KT맨’으로 살았다. 지난 2월과 7월에는 KT 대표 후보자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현재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튀김과 떡볶이, 순대를 파는 분식집이다. 지난 10월 문을 연 분식집 메뉴판에는 ‘분식을 요리로, 가격은 분식으로’라는 표어가 적혀 있다.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분식집에서 남 전 사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KT에 입사한 배경과 담당했던 업무가 궁금하다.

“1986년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에 입사해 경영연구소에서 9년간 근무했다. 당시에는 주로 경영 관리와 경영 전략 분야 내부 컨설팅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1995년 개인휴대통신(PCService) 사업 추진단으로 옮겨 PCS 사업을 준비했다. 1997년 PCS 사업 주체인 KT프리텔 창립 멤버로 무선 사업에 발을 담궜다. 이때부터 마케팅과 경영 관리, 사업 조정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2017년부터 2년간 KT의 자회사인 KT CS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이후 KT그룹 희망나눔재단 이사장, KT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지난 1월 KT에서 퇴직했다. 2000년에 KTF에서 임원이 됐으니 37년 KT맨 인생의 절반을 임원으로 보냈다.”

KTF는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브랜드를 쇼(Show)로 정하고 전국 서비스를 통신 3사 중 가장 먼저 시작했다. /KT 제공

─KT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면서 ‘쇼’ ‘쿡’ ‘올레’ 등 빅브랜드 등장을 주도했다.

“유선 시장에서 KT는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만 1994년 1월 민영화 과정에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SK그룹에 넘겨줘 KT가 PCS 사업에서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쇼는 3G(3세대 이동통신)를 선점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브랜드다. 대표적 3G 서비스인 영상 통화를 강조하기 위해 ‘보여준다’는 의미의 쇼라고 한거다.

쿡은 분산된 유선 브랜드를 통합하는 역할을 했다. 유선을 쓰는 환경이 집 안이라는 사실을 감안해 집과 관련이 높은 쿡(요리)이라는 브랜드명을 정했다. 올레는 KT 무선 브랜드인 쇼와 유선 브랜드인 쿡을 아우르는 상품 브랜드다. KT가 여전히 공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과감한 작명에 나섰다. 올레의 영어 스펠링(olleh)는 헬로(hello)를 역순으로 배열한 신조어다. 쿡과 올레는 성공과 함께 큰 관심을 끈 측면도 있지만, 마케팅적으로 3개월 사이에 빅브랜드 2개를 내놓은 전무후무한 시도로 기록될 것이다.”

─KT가 아이폰을 단독으로 도입하면서 ‘아이폰=KT’라는 공식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폰 도입의 95%는 이석채 전 KT 회장님의 공이다. 애플과 협상이 힘들었는데 뚝심과 혜안으로 밀고 나갔다. 당시 나는 광고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임원으로 ‘아이폰하면 KT’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하자는 생각으로 광고를 만들었다. 단순히 아이폰은 KT가 원조라는 걸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 위해 영화계 거장이 아이폰으로만 촬영한 단편 영화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박찬욱 감독께 부탁, 직접 대본을 쓰고 메가폰을 잡은 ‘파란만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 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공상을 받으면서 ‘아이폰=KT’라는 공식에 힘을 실어줬다.”

─올해 초 퇴임 후 KT 대표 후보자로 지원하기도 했다.

“35년 넘게 KT그룹에서 근무한 KT맨으로 최근 KT가 쇼윙 오프(Showing Off ·보여주기식) 문화에 젖어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 게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KT에 절실한 화두인 ‘디지털, 고객, 국민 기업’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좌고우면하지 않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대표 후보로 지원했다.”

2014년 11월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아이폰6 국내 개통식에서 당시 남규택 KT 부사장(오른쪽)이 1호 개통자와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KT 제공

─KT 대표가 되지 못했지만, 대표가 됐다면 직원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먼저 했을 것 같은가.

“KT 후배들에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하고 싶다.(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직접 만져보는 실험과 연구로 얻은 객관적 사실을 통해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으라는 것). 단적인 예로 보여주기식 업무협약(MOU)만 잔뜩 맺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다. 실제 성과를 내는 게 더 중요하다. KT 후배들은 제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지난 10월 분식집을 열었다.

“20대부터 미식 탐험에 관심이 많았다. 직장인이 된 후 전국에 있는 맛집 정보를 수집하는 데 공을 들였다. 출장을 가면 꼭 근처 맛집을 찾아 들렸다. 은퇴 후 식당 운영을 꿈꿨고 우연히 튀김의 숨은 고수를 만나 튀김 전문 식당을 10월 개업하게 됐다. 제대로 된 튀김을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 분식의 선두 자리에 올려놓겠다는 꿈이 있다. 고급 일식집 튀김이 비싼 이유는 좋은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분식집 튀김은 한번 튀겨놓고, 손님이 오면 또 튀겨서 내놓기 때문에 색이 어둡고 딱딱하다. 반면 우리 튀김은 주문과 동시에 바로 튀기기 때문에 튀김옷이 얇고 바삭하다. ‘일반 분식집에서 먹을 수 있는 퀄리티가 아니다’ ‘이 가격에 팔면 남는 거 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튀김 하나는 정말 자신 있다.”

남규택 전 KT CS 사장의 분식집 튀김은 튀김옷이 얇고 갓 튀겨내 바삭하다. 고급 일식집에서나 볼 수 있는 퀄리티의 튀김을 저렴한 가격에 맛 볼 수 있다./윤진우 기자

─대기업 임원과 자영업 중에 뭐가 더 힘든가.

“대기업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고, 자영업은 스트레스에 육체적 피로가 추가된 느낌이다. 분명히 어느 정도 힘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노동 강도가 예상을 훨씬 넘어설 정도다. 특히나 준비할 게 너무나 많다. 작은 식당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게 못해도 100개는 넘는 것 같다. 가령 결제 단말기 전원 케이블 하나만 고장이 나도 장사에 문제가 생긴다. 이런 크고 작은 것들을 혼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점검해야 한다. 이 정도로 자영업이 힘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기업 임원이 힘들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최근 마케팅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했다.

“KT 입사 초기 경영연구소에서 내부 경영 컨설팅을 9년간 했는데, 지원 부서에 있는 걸로는 업무에 대한 만족감이 크지 않았다. 사업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PCS 사업추진단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다. 그때부터 마케팅이 시작됐다. 당시 국내에서 마케팅은 신생 학문에 가까웠다. 뭔가 사업을 ‘포장’ 또는 ‘과장’하는 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었다. ‘서비스를 진실하게 전달해야지 저렇게 포장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20년 넘게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마케팅에 관한 책은 너무나도 많다. 오랜 고민 끝에 기존 책에서는 깊게 다루지 못한 현장에서의 실무적인 마케팅 역량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려서 들여다본 책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은.

“KT에서 근무하면서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써서 브랜드를 만들고 띄우는 다양한 작업을 해봤다.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즐겁게 재밌게 일했다. 지금 시작한 분식집은 새로운 마케팅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돈으로 큰 결과를 내는 것에서 내 주머니에 있는 작은 돈으로 작은 성공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남규택 전 KT CS 사장이 최근 출간한 '가장 낮은 마케팅 이야기' 표지. /파이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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