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무너진 2023년, 밝아올 새해는 복구와 회복의 시간 되길..."

서현정 2023. 12. 30.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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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재난 피해자들의 2024년 소망]
강릉산불 피해자 "아빠는 할 수 있어요,
새해엔 잃어버린 일상 반드시 되찾을 것"
오송 참사 유족 "억울한 죽음 없어져야,
고통은 반으로 나누고 위로는 곱절로"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시작이 된 미호천교 재가설 공사 현장. 참사 사흘이 지난 7월 18일 오송읍 궁평지하차도 건너편 미호강 둑이 무너져 내려 있다. 뉴스1
"올해는 저한테 없는 시간이었어요. 2024년은 웃을 수 있고, 회복할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송 참사 유족 지상희씨

2023년은 누군가에게 악몽의 1년이다. 올해도 산불과 집중호우, 사고 등 각종 재난이 우리의 일상에 생채기를 냈다. 수많은 시민이 사랑하는 이를 잃고 삶의 터전을 등졌다. 한 해의 끝자락에 4월 일어난 '강릉 산불'과 7월 발생한 '오송 참사' 피해자들을 만났다. 돌연한 화마와 수마는 이들을 지금도 눈물과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속에 허우적거리게 한다. 그래도 버텨내겠다고 다짐한다. 연말이면 늘 되뇌는, "안전 대한민국"을 소망하면서 말이다.


40년 가꾼 보금자리, 순식간에 잿더미로

산불이 발생하기 약 2년 전인 2021년 5월 지도 앱에 기록된 최호영씨의 민박집(위 사진)과 28일 촬영한 현재 모습. 민박집이 있던 자리엔 벌목된 나무와 땅주인이 경작한 흔적만 남아 있다. 네이버 거리뷰·강릉=윤서영 인턴기자

28일 오후 강원 강릉시 경포호 인근에 사는 최호영(75)씨는 옷깃을 여민 채 벽에 걸린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컨테이너로 만든 24㎡, 7평 남짓한 임시주택 안엔 부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최씨와 아내 김명옥(75)씨에게 남은 전부다. 봄의 악몽은 울창한 숲 아래 부부가 40년 넘게 일군 자택과 120㎡ 규모 부부의 민박집을 앗아갔다.

4월 11일 산불이 덮쳤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불안했는데, 아침 일찍 장을 보고 왔더니 집이 불에 타고 있었다. 몸에 두른 옷가지와 신발만 건졌다. 40년 동안 '무사고' 택시기사로 받았던 표창장 여럿도, 두 아들의 유년시절을 담은 사진첩도, 세간살이도 전부 잿더미가 됐다.

4월 산불로 운영하던 민박집을 잃은 최호영·김명옥씨 부부가 생활하고 있는 강원 강릉시 안현동 임시주택. 강릉=윤서영 인턴기자

노부부는 임시주택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달에 전기세만 14만 원 정도 나온다. 원래 내던 비용(3만 원)의 5배 가까이 된다. 무상지원도 이달 끝나 내년부터는 자비로 절반을 부담해야 한다. 김씨는 "이따금 웃풍이 들어 얼굴이 시릴 정도"라며 "부엌이 붙어 있어 냄새가 온 집에 밸까 봐 제대로 해 먹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강릉 산불로 274가구, 551명의 이재민이 생겼다. 부부처럼 강릉시가 마련한 임시주택을 임대받은 이재민은 117가구. 82가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2년 한시로 전세계약을 맺었다. 몸을 누일 공간을 가까스로 얻었지만, 새 보금자리를 다시 짓기엔 역부족이다. 최씨는 "건강 문제로 택시기사를 그만둔 데다, 민박집도 사라져 벌이가 없는 상황"이라며 "1억3,000만 원까지 무이자 대출이 나오지만 갚을 방법이 없어 임시주택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낙담했다.

4월 산불로 운영하던 펜션 세 채를 잃은 최양훈씨가 공사 중인 펜션을 바라보고 있다. 강릉=윤서영 인턴기자

최양훈(48)씨는 청춘을 다 바쳐 8년 전 세운 펜션 3채와 딸린 집을 화마에 빼앗겼다. 집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갚아야 할 대출금은 그대로다. 한 해 3억 원가량을 벌어 빚을 충당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펜션을 복구하려 해도 대출에 또 대출을 받아야 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피해액만 한 채당 10억 원. 재난지원금과 성금으로 받은 2억 원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건축비는 그새 2배 넘게 뛰었다. 최씨는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수마에 빼앗긴 혈육, 멈추지 않는 눈물

29일 충북 충주시의 한 카페에서 오송참사 유족 지상희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서현정 기자

7월 15일엔 물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이 있다. 충북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 피해자들이다. 29일 충북 충주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지상희(51)씨는 하늘나라로 간 오빠 승훈(53)씨 생각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지씨는 "15년 전 부모님을 여의고 의지하면서 살던 오빠는 내게 부모였다"고 말했다. 혈육을 떠나보낸 슬픔은 그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란 질병을 안겼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 오빠가 떠오를 때면 눈물을 삼킨다.

살아남았다고 충격을 극복한 건 아니다. 생존자 김모(41)씨는 지하차도에 갇혔던 절망의 기억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날 오전 8시 30분쯤 비는 많이 내렸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길이었다. 갑자기 지하차도에 물이 차올라 시동이 꺼졌다. 물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분. 천장까지 순식간이었다. 철제구조물에 의지해 간신히 빠져나왔으나 남겨진 사람들의 살려달라는 절규는 쉬이 잊히지 않는다. 매일 신경안정제 약을 달고 살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잠에서 깨는 이유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4월 강릉 산불로 운영하던 민박집을 잃은 최호영(왼쪽)·김명옥씨 부부가 28일 생활하고 있는 강릉시 안현동 임시주택 앞에서 산불이 났던 곳을 바라보고 있다. 강릉=윤서영 인턴기자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다. 이들은 새해를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는 시간으로 정했다. 최호영씨 부부는 임시주택 옆에 세탁기와 조리용 가스통, 식탁을 준비했다. 아내 김씨는 "아이들이 오면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게 식탁도 만들고 부엌도 만들었다"며 살림살이를 계속 어루만졌다.

최양훈씨 역시 펜션 보수를 시작했다. 조만간 한국전력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할 예정이다. "집이 불에 타 없어진 날, 큰아들이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이겨낼 수 있다고요." 지씨는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 어떤 국민도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오송 참사 생존자 김씨도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다른 생존자 15명과의 '연대'가 출발점이다. 그는 8월 생존자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다달이 한 번씩 2, 3시간 정도 만나 근황을 묻고 안부를 전한다. 고통은 반으로 나누고 위로는 곱절로 얻으며,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아직 미완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우리 사회가 안전해지려면 사고가 난 원인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재발을 막을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2024년을 복구와 회복의 해로 만들고 싶습니다."

강릉·청주=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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